문화 · 생활
[답사] 눈이 그려낸 인왕산의 진경, 인왕설경산수
 
  • 이강
  • 16.01.07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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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그려낸 인왕의 설경산수가 그리워 새벽 눈발을 확인하고 집을 나선다. 햇귀가 차오르는 때에 이르러 인왕의 산정에 오르는 여정은 가슴이 벅차오르고 뜨거워지는 일이다. 멀찍이 독립문 방향의 한양성곽 구간이나 서촌의 수송동 계곡 쯤에서 바라본 인왕산의 형상은 눈 덮인 산등성이에 올라앉은 백호라 해도 시비 삼을 일이 없다. 호랑이가 엎드린 형상의 인왕산은 커다란 화강의 바위산이어서 그 기백이 마치 먹이사냥을 나선 암사자의 몸 근육처럼 단단하다. 인왕산 자락길과 한양 성곽길을 따라 오르니 눈 덮인 인왕산의 절경을 즐기려는 산행객들이 가파른 산자락길을 따라 줄을 지어 오른다. 바위산에 쌓인 서설이 산의 윤곽을 선명하게 드러난다. 눈이 시린 설경으로 펼쳐진 서울 도심의 풍경은 또 다른 진경이다.

 

△눈이 내린 서촌의 설경(사진=이강)

 

경복궁의 서편에 자리한 인왕산은 조선 600년의 역사를 태동케 한 역사의 산으로 백악산, 남산, 안산과 더불어 서울을 대표하는 진산 중 하나이다. 서울의 시가지에 가까이 인접해 있어 수도권 산행객들이 설경 트레킹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인데, 서울의 현재적 도심을 전망할 수 있어 가벼운 등산코스로도 제격이다. 세종마을이라 불리는 서촌의 골목 골목을 기웃거리고, 수성동계곡을 기점으로 인왕의 정상에 올라서는 코스다.

 
눈 덮인 서촌의 설경과 수성동 계곡
 
인왕산으로 오르는 코스는 경복궁 오른편의 사직단과 왼편의 옥인동 방향으로 오르는 길로 가도 좋고 서대문 홍제동 방향을 들머리로 길잡음을 해도 무방하다. 어느 쪽으로 오르든 인왕산 자락길과 한양성곽길로 이어진다. 눈이 내린 서촌의 설경을 둘러보고, 수성동 계곡 기점으로 삼을 셈이니, 경복궁 왼편으로 길을 잡는다. 경복궁역을 기점으로 자하문로를 따라 옥인길로 접어들어 골목길을 끝까지 오르면 수성동 계곡 초입에 이를 수 있다. 빽빽하게 들어선 연립주택골목을 통과해 막다른 길에 이르면 마을버스 종로 9번 종점이 나타나고, 바로 앞으로 인왕산을 배경으로 수성동 계곡이 눈앞에 펼쳐진다.

 

△겸재 정선이 즐겨찾던 수성동 계곡(사진=이강)

 

수성동 계곡은 인왕재색도로 잘 알려진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이 그린 그림의 실제 배경지이다. 예부터 인왕산 아래 숲이 울창하고 계곡의 물이 깨끗하여 많은 시인묵객들이 머무르며 그 아름다움을 예찬했던 장소로 알려진 곳이다. 본래 옥인동 시범아파트가 인왕산을 가리고 있었으나, 복원을 거쳐 이제는 사시사철 아름답던 절경의 명성을 되찾았다. 조선시대에 수성동(水聲洞)으로 불렸던 이곳은 겸재 정선이 북악산과 인왕산의 경승 8경을 그려 담은 ‘장동팔경첩’ 화폭 중 하나인 수성동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겸재 정선(1676∼1759)은 북악산 자락(현 청운중·고교)에서 태어나 인왕산을 마주보며 살았다. 때문에 겸재는 이곳 수성동 계곡과 인왕산 등을 자주 찾았고, 북악산 서쪽 기슭에 올라 인왕산을 화폭에 자주 담았다. 그 중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국보 216호인 ‘인왕제색도(국보 216호)’이다.

 
우뚝우뚝 솟은 바위덩어리, 막 피어오르는 물안개, 물에 흠뻑 젖은 소나무들, 바위를 타고 콸콸 쏟아져내리는 계곡은 겸재의 진경산수를 대표하는 것들이다. 눈이 쌓인 계곡길을 걸어 오르니, 바로 앞으로 눈 덮인 인왕산의 절경이 가히 한 폭의 산수화를 그려낸다. 인왕산을 배경으로 하여 계곡과 돌다리, 정자 등 정선의 그림과 똑같은 풍경을 그대로 마주할 수 있어 감회가 새롭다. 수성동계곡의 설경을 감상하고 천천히 왼편 오르막으로 인왕산 자락길을 오른다. 소나무 숲이 울창한 인왕산자연공원으로 비교적 자연생태가 잘 보전되어 있는 곳이다. 자락길은 다시 인왕산 한양석곽길와 이어진다. 공원이 끝나는 지점에 인왕산 성곽길 출입초소가 나타나는데, 가파른 계단길을 따라 오르면 인왕산 범바위까지 성곽길이 이어지고 멀리 인왕산의 웅장한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새하얀 눈이 그려낸 인왕산의 위용
 
눈 덮인 인왕산의 설경은 장엄하고도 아름답다. 멀리 부처바위와 범바위가 보이고 발 아래로 인왕산 성곽의 외경이 길게 뻗쳐져 장관을 이룬다. 인왕산을 호랑이가 몸을 웅크린 채 엎드려 있는 모습이다. 높이 338m의 인왕산은 산세의 기세가 웅장한데, 산봉우리마다 거대한 넙적바위가 바위째 박혀 있고, 기차바위·치마바위·삿갓바위·매바위· 범바위 등 크고 작은 기암들이 울뚝불뚝 솟아 있어 그 힘찬 기운이 그대로 느껴진다. 옛 사람들은 인왕산에 오르면 ‘나라 살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손금 보듯 훤하다고 여겼다. 그 호랑이의 잔등을 타고 오르면 어느 곳에서든 서울 장안이 내려다보이니 저잣거리 사람들은 너도나도 인왕산에 올랐다고 전해진다.

 

△호랑이가 엎드린 형상의 인왕산(사진=이강)

 

인왕산은 대한민국 서울을 대표하는 진산 중 하나로, 조선 600년의 역사를 태동케 한 역사의 산이다. 태조는 한양을 도읍으로 정하고 내사산을 빙 둘러 한양성곽을 세운다. 이 때 백악산을 주산(主山)으로 하여, 목멱산을 남산, 낙산과 인왕산을 좌우 용호(龍虎)로 삼아 궁궐을 지었다. 현재의 종로구 옥인동, 누상동, 사직동, 서대문구 현저동, 홍제동에 걸쳐 있는 서편의 산줄기이다. 때문에 인왕산은 본래 서산이라 불렸다. 서산이 인왕산이라 불리기 시작한 것은 세종 때부터다. 인왕이란 불법을 수호하는 금강신(金剛神)의 이름으로, 세종은 조선왕조를 수호하려는 뜻을 담아 이름을 바꾸고 인왕산으로 숭앙하였다. 이후 일제강점기에는 인왕의 표기를 인왕산(仁旺)이라 하였으나, 1993년 민간인의 출입구역이었던 인왕산을 개방하면서 1995년에 이르러 본래 지명인 인왕산(仁王)으로 환원되었다.

 
범바위 기점으로 가파른 산을 오르다 보면 거대한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암산의 위용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한양도성 인왕산 성곽길은 매우 가파른 구간이다. 범바위에서부터 매바위까지 이어지는 성곽길은 계단의 경사가 상당해 쉬엄쉬엄 올라야하는 코스다. 또 매바위를 거쳐 인왕산 정상까지 오르는 구간 역시 암반 코스와 경사진 계단, 로프구간이 거듭 이어진다. 때문에 초보자의 경우, 매 구간 안전에 유의하고 동반자와 함께 산행을 하여야 한다. 특히 암반 구간이 많은 편이어서 겨울철 산행은 미끄럼을 방지할 수 있는 등산화와 안전장구가 필수다. 다행히 산행코스가 비교적 잘 정비되어 있어, 무리하지만 않는다면 정상까지 거뜬하게 오를 수 있다. 눈 쌓인 성곽을 따라 정상에 올라서니, 한 무리의 등산객들이 산행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인왕산의 묘미는 최고의 전망감이다. 사방으로 탁 트인 주위를 둘러보니 능선을 따라 백악산과 멀리 남산, 낙산이 한 눈에 조망되고, 장엄한 한양성곽의 위용이 하얀 눈으로 인해 더욱 선명하다. 발 아래 펼쳐진 서울 도심의 모습도 새하얀 눈으로 윤곽이 뚜렷하여 새롭게 조망된다. 잠시 바라보다 기차바위를 거쳐 부암동 방향으로 내려서는 길을 택해 윤동주시인의 언덕을 지나 윤동주문학관으로 내려선다.

 

원문: 뉴스토마토

 

이강 여행작가 /뉴스토마토 여행문화전문위원

gh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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