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생활
“시로 읽는 역사의 매력을 전하고 싶다”
[박성현의 ‘만인보’로 읽는 한국사]
  • 김나볏 기자
  • 16.01.19 10:26
  • facebook twitter 카카오스토리 구글플러스
  • 글자크기
  • 글자크게
  • 글자작게
  • |
  • print
  • |
  • list
  • |
  • copy

병신년(丙申年) 새해를 맞아 박성현의 '만인보로 읽는 한국사' 연재를 시작합니다. 이 연재는 박성현 고은재단 아카이브 책임연구원의 기고로 진행됩니다. 박성현 연구원은 최근까지 프랑스에서 고은 시인의 시세계를 연구하고 전파하다 한국에 이제 막 돌아온 ‘고은 전문가’입니다. 1989년 연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한 뒤, 1997년 모스크바 대학에서 미학박사를 받았으며, 이후 프랑스로 건너가 지난해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고은, 한국의 시와 역사: 만인보의 세계>라는 주제의 논문으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했습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되는 이 글을 통해 고은 시인의 연작시 '만인보'에 담겨 있는 민중의 모습과 함께 근현대 한국사를 좀더 세밀하게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첫 회를 맞아 연재 글과 연재자 인터뷰를 함께 소개합니다. <편집자>

 

 

<만인보>는 한국의 대표적 시인으로 꼽히는 고은의 인물 연작시다. 고은 시인이 1986년부터 집필했으며 전체 30권에 총 4001편의 시가 수록돼 있어 ‘시로 쓴 역사서’로도 통한다. 만인보는 ‘만인의 삶에 대한 시적 기록’이라는 뜻인데 제목 그대로 여러 사람의 행적을 담고 있다.

 

시에는 5600여명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 인물들은 시인이 실제로 만난 인물, 사회·역사적 인물, 불교적 체험으로 만난 초월적 인물 등이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온갖 인간 군상을 총망라하되 이들의 이야기를 실명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시로 쓴 사회사, 민족사, 인물지로 불리는 이 작품은 1986년 창작과비평사를 통해 1~3권이 출간된 이후 2010년 4월9일 총 30권을 25년 만에 완간했다. 이 작품으로 고은 시인은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돼 왔다. 만인보는 현재 영어, 불어, 스페인어, 스웨덴어, 러시아어, 터키어, 폴란드어, 체코어 번역본이 간행되었고, 현재 일본어, 독일어, 중국어 번역이 진행 중이다.

 

△고은 시인의 안성 자택에 남아있는 책상. 고은 시인은 <만인보>를 이곳에서 집필했다.(사진=고은재단)

 

병신년 새해를 맞아 ‘박성현의 만인보로 읽는 한국사’ 연재를 시작한다. 문학과 역사를 잇는 만인보 시들을 풀어 읽음으로써 독자들에게 작품 자체의 문학적 가치는 물론, 한국사를 새롭게 발견할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아울러 시를 잃어버린 ‘산문’의 시대에 역사를 시로 읽는 새로운 미적 체험을 제공하고자 한다.

 

 

이 연재는 박성현 고은재단 아카이브 책임연구원의 기고로 진행된다. 박성현은 최근까지 프랑스에서 고은 시인의 시세계를 연구하고 전파하다 한국에 이제 막 돌아온 ‘고은 전문가’다. 1989년 연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한 뒤, 1997년 모스크바 대학에서 미학박사를 받았으며, 이후 프랑스로 건너가 지난해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고은, 한국의 시와 역사: 만인보의 세계>라는 주제의 논문으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되는 이 글을 통해 고은 시인의 연작시 만인보에 담겨 있는 민중의 모습과 함께 근현대 한국사를 좀더 세밀하게 들여다 볼 수 있다.

 

“시로 읽는 역사의 묘미를 전하고 싶다”는 박성현씨에게 고은 시인을 연구하게 된 계기와 고은의 시 세계, 그리고 이번 만인보 연재에 대한 각오를 들어봤다.

 

△박성현 고은재단 아카이브 책임연구원.(사진=김나볏 기자)

Q)문학을 통한 역사 읽기를 시도하고 있다. 두 분야를 연계해 공부하게 된 계기는? 또 고은 시인을 연구하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A)전공분야는 쉽게 풀어 설명하자면 ‘문학을 통한 역사학’이다. 역사와 문학의 교차지점, 만나는 지점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역사학 안에 속해 있지만 문학을 통해 역사를 하는 방법론인데 서구사회에서는 많이 알려져 있는 방식이다. 프랑스에서 만인보를 주제로 잡아 박사 논문을 썼는데 작품 자체가 문학이면서 역사를 다루고 있다. 흥미롭게도 보통의 서사시처럼 커다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하나의 이야기를 끌어가면서 하나의 역사, 사건을 그려내는 게 아니라 개별 인간들의 삶을 이야기한다. 결국 개별적인 삶이 어우러지면서 한 민족 전체 역사를 그려내고 있다. 일상사, 미시사적인 관점과도 연관되는 기술방식이다.

 

또 한 가지는 시로 역사를 그려낸다는 점이다. 보통은 소설에서 역사를 다루는데 이 경우는 시에서 역사를 다룬다는 점에서 새롭게 발굴해낼 잠재적인 보물들이 많이 있다고 느꼈다. 작품을 하나씩 읽을 때마다 만인보는 무궁무진한 세계라는 생각이 든다. 건져낼 보배가 많아 앞으로도 굉장히 많은 연구를 해야 한다.

 

Q)만인보의 문학적 특징은 무엇인가? 문체나 시어의 특징은?

 

A)고은 시인이 의식적으로 전라도, 함경도의 지방 사투리, 북한어 등을 시에 녹여냈다. 고은 시인은 겨레말큰사전을 편찬하고 있을 정도로 우리말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다. 모국어에 대한 사랑이 시에서도 드러난다고 보면 된다.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없는 어휘들이 만인보에 나오는데 독자에게는 어휘를 풍부하게 하는 역할도 한다. 나같은 경우에는 연구할 때 아예 사전을 열어놓고 시작한다.

 

또 만인보에는 의성어가 많이 나온다. 불역하면서 괴로움을 느꼈다. 불어에는 그만큼의 의성어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거지 내외가 해질녘에 걸어가는데 해가 뉘엿뉘엿 진다’고 할 때 이미지가 그려지지 않나. 해가 둥글게 넘어가고 있는데 이 부부가 천천히 소박하게 걸어가고 있는 거다. 이걸 불어로 표현할 수가 없더라. 민중 개개인을 그릴 때는 비속어나 감칠맛 나는 말들이 나오기도 하는데 이것 역시 번역하기가 참 힘들었다. 이럴 때는 그대로 한글 발음을 써주고 설명을 써주는 식으로 글을 썼다. 한글 발음이라도 따라 읽으면서 의성어의 묘미를 느끼게 하고자 했다.

 

만인보는 민속학적인 서지로도 자료로서 굉장히 의미가 있다. 인류학적으로 연구해낼 자료들이 많다. 마을 이름에도 갈뫼, 개사리 등 토속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말들, 지금 찾아보기 힘든 이름들이 나온다. 그 시대 역사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지명들이다.

 

인칭의 문제 역시 중요하다. 고은 선생이 항상 문제 제기하는 것 중 하나는 근대적 자아의 문제다. 근대적 자아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하는데 그게 시에서는 인칭의 문제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광주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하는데 자기 목소리로 얘기하는지 아니면 다른 3자들의 이야기를 해주는 것인지에 따라 효과가 달라진다. 문학의 인칭에도 철학적인 고민과 고뇌, 성찰을 녹여냈다는 점이 놀랍다.

 

Q)이번 연재를 통해 독자들과 무엇을 소통하고 나누고 싶은지?

 

A)우선 만인보를 많이 알리고 싶다. 고은 시인에 대해 ‘국민시인’이라는 표현도 쓰는데, 사실 그렇게 말하는 데 비해 막상 시를 읽은 사람은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다. 예술작품을 감상하고 즐기는 미적 향수의 측면에 이번 연재의 1차적인 의미가 있다.

 

또 만인보 자체가 갖고 있는 가치를 알리는 것 외에 역사책으로 읽는 역사가 아니라 시로 읽는 역사의 매력, 묘미를 전하고 싶다. 한국사를 새로운 방식으로 성찰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박성현 약력

-현 고은재단 아카이브 책임연구원
-2015년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 역사학 박사(History and Civilizations), 논문 제목: 『고은, 한국의 시와 역사: 만인보의 세계』
-2004~2005년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소 선임연구원
-2002~2003년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지역연구사업단 전임연구원
-1997~2004 경희대, 인하대 철학과 등 강사
-1997년 모스크바 국립대학(MSU Lomonosov) 철학 박사(미학 전공), 논문 제목: 『서양과 동양의 미적 의식에서 비극적인 것: 고대 그리스의 비극과 고대 한국의 문화·역사적 기원을 자료로 한 대조의 시도』
-1989년 연세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김나볏 기자

원문: 뉴스토마토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