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생활
[답사] 큰 스승이 머무르던 작은 암자, 송광사 불일암
 
  • 이강
  • 16.02.23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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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봄이 늦게 오고 겨울이 일찍 오는 곳에서 머물렀었다. 스님은 누가 물으면 겨울을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라고 서슴없이 대답하셨는데, 그 이유는 춥기 때문이라 하셨다. 겨울을 좋아하던 스님은 한 겨울에 졸음에 빠질라 치면, 꽁꽁 언 개울물로 나가 얼음장에 귀를 대고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를 듣곤 하였다.
 
“내 오두막 둘레는 요즘 하얀 눈이 자가 넘게 쌓여 있고, 청량한 공기 속에 들리는 소리라고는 처마 끝에 달아 놓은 풍경이 이따금 지나가는 바람과 더불어 이야기하는 소리뿐이다. 몇 걸음 걸어 개울가에 이르면 두껍게 얼어붙은 얼음장 밑으로 개울물 흐르는 소리가 내 뼛속에까지 스며든다. 나는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이 개울물 소리가 참 좋다. 그래서 하루에도 몇 차례씩 나가서 귀를 기울인다.”
 
겨울은 우리 모두를 뿌리로 돌아가게 하는 계절, 시끄럽고 소란스럽던 날들을 잠재우고 침묵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계절이다. 그동안 걸쳤던 얼마쯤의 허영과 허세와 위선의 탈을 벗어 버리고, 자신의 분수와 속얼굴을 들여다보는, 그런 계절이기도 하다. 스님이 산중에 머무르며 적은 글귀를 시인 류시화가 엮은 ‘봄여름가을겨울(법정 지음, 류시화 엮음)’중 일부다.
 
스님은 겨울의 산중 생활을 충만한 홀로 있음의 기회로 여겼다고 적고 있다.

 

△조계산 송광사 초입.(사진=이강)

 

깊은 숲에 작은 오솔길을 따라

 
길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하나의 선물이자 은혜이다. 속세의 짐을 모두 놓아두고 길을 나선다. 그 숲속 어드메쯤에 자리한 작은 암자에 큰 스님이 머물렀다고 했다. 아둔한 대중들에게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자유로움’을 설파하던 선승, 법정. 스님이 떠난 후에도 그 숲에는 봄여름가을겨울로 이어지는 계절의 순환이 어김없이 계속 되고, 이제 다시 차디 찬 바람이 정신을 깨우는 겨울이 찾아든다. 법정 스님 만나러 가는 길이다. 내내 그리웠던 길을 따르니 마음 안에 고요함이 깃든다.
 
불일암은 전남 순천에 자리한 조계산 송광사의 산내 암자로 송광사 뒤편 산자락에 깊숙이 들어 앉아 있다. 순천이란 이름자의 천자는 ‘하늘 천’ 자를 쓴다. 대개의 지명에서 ‘내 천’ 자를 쓰는 것과 그 의미의 차이가 분명하다. ‘순할 순’에 ‘하늘 천’. 본디 하늘 아래 순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그 땅의 자연은 때 묻지 아니하고 그 터의 사람들 역시 순하디 순하다고 했다. 그러한 까닭일까. 대중의 존망을 받던 큰 스님은 이곳 순천땅 송광사의 깊은 숲 작은 암자에 오래도록 머물렀었다. 스님의 일거수 일투족을 내내 궁금해 하던 이들이 한동안 스님이 계시던 곳을 찾으려 애쓴 일화도 아직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법정 스님이 머물렀던 작은 암자 불일암.(사진=이강)

스님이 머무르던 작은 암자가 바로 ‘불일암’이다. 암자는 고려시대의 승려인 자정국사가 처음 지었다고 전하여 온다. 때문에 처음의 이름자는 자정암이었다. 이후 몇 차례의 머무름과 떠남을 반복하며 여러 차례 중수를 거듭하다가 한국전쟁을 지나면서는 아무도 머무르지 않는 암자로 퇴락한다. 한동안 비어있던 이 작은 암자를 법정 스님이 손수 가꾸며 머무르기 시작한 때가 1974년 즈음이다. 스님은 이 작은 암자에 손수 채마밭을 가꾸고 머무르며 불일암이라 하였는데, 불일(佛日)이란 ‘부처의 빛’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스님은 세랍 43세 때인 1975년부터 1992년까지 17년 동안 홀로 이곳에서 지내며 수행과 책읽기, 집필 작업에 몰두하였다. 1976년 ‘무소유’를 집필한 곳도 바로 이 작은 암자이다.
 
송광사 매표소를 지나니 소복하게 눈이 내린 산길은 두 갈래로 나뉘어진다. 오른 편으로 청양각를 건너면 송광사로 오를 수 있고, 왼편으로 작은 오르막길이 불일암으로 오르는 무소유길의 들머리다. 한 등산객이 계곡에 걸쳐 있는 청량각에서 잠시 호흡을 가늠하고 불일암 으로 오르는 무소유길로 걸음을 옮긴다.
 
텅 빈 충만, 마음을 비우는 무소유길
 
무소유길은 옛길을 따라 다송원과 탑전까지 이동한 다음에 편백나무, 대나무으로 우거진 숲길을 거쳐 오르는 길이다. 대략 850여미터로 성인의 걸음으로 30여분을 오르면 불임암이 나타난다. 잔설이 남아있는 계곡을 따라 얼마쯤을 오르니 편백나무 숲 사이로 무소유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길섶 군데군데에 스님이 남기신 글귀가 걸음을 멈추게 한다.
 
‘무소유란 아무 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넘치는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불일암에 가까워질 수록 길폭이 좁아진다.(사진=이강)

 

길은 마치 스님이 남기신 법문이나 글귀처럼 걷는 사이사이 사색의 행간으로 존재한다. 숲길을 따르면 키가 큰 편백나무숲가 하늘을 받치고 있고, 대나무숲은 푸르고 당당하다. 마치 봄여름가을겨울의 사계를 마주하는 듯하다. 볕이 드는 자리에는 햇살 머금은 생명이 가득하고 작은 응달에는 또 지난 계절의 그리움이 쌓여있다. 생명의 윤회가 온전히 숲에 머무른다. 다시 몇 개의 그루터기를 지나자 작은 다리를 건너니 쭉쭉 곧게 뻗은 대나무 숲이 이어진다. 길은 점점 폭이 줄어들고 허리를 숙이게 만든다. 본래 무소유길은 작은 길이며 발걸음이 많지 않던 길이다. 숲으로 들어설 때, 홀로 조용히 발밑을 살피라는 것처럼 길 폭은 점점 좁아지고 발걸음은 점점 조심스러워진다. 스님은 생전에 이 숲을 찾는 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다소 불편해 하며, 그저 홀로 고요히 길을 걸었다.

 
댓잎을 스치는 바람소리를 따라가자 어둑어둑한 조릿대길 끝에 고즈넉한 암자가 홀연 모습을 드러낸다. 산중 작은 볕 아래 불일암은 편안히 앉아있다. 이제 묵언으로 수행의 시공으로 든다. 옷깃을 여미고 발걸음을 고요히 하며 경거망동하지 않는다. 경내에는 스님이 손수 일구셨던 채마밭에 잔설이 쌓여 있고, 오른 편과 윗 편 작은 언덕에 요사채 2동이 자리하고 있다. 생전에 스님은 오이며 더덕, 토마토 등을 손수 가꾸었다고 한다. 채마밭 옆 요사채에는 스님의 소박한 살림살이들이 여전하다. 응달 한 켠의 작은 장독 두어개에도 소담하고 정갈하였던 스님의 마음이 고여 있다. 중앙계단을 따라 불일암 본채에 올라선다. 계단에 올라서 맨 먼저 마주하는 것은 마치 웃는 듯한 옹이가 박힌 후박나무 한 그루다. 이 나무 아래 법정스님이 잠들어 계신다. 나무 아래 작은 화단에 스님의 다비식 이후 그 일부를 산골해 놓았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내려놓음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용서이고, 이해이고, 자비이다’는 스님의 말씀이 귓가를 맴돈다. 암자에는 스님이 볕을 즐기기 위해 나무로 손수 만든 ‘빠삐용’ 의자와 방명록 등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불일암 오른 편 북동쪽에 자리한 자정국사 부도를 둘러본 후 천천히 산 아래 송광사로 내려선다. 무소유길은 불일암에서 산중을 내려 송광사까지 이어진다. 불일암으로 오르는 무소유길은 텅 빈 충만으로 가득해 지는 길이다. 마음을 내려놓고 돌아오는 길, 깊은 산숲에 겨울볕이 따스하다.
 
 

원문: 뉴스토마토

 

이강 여행작가 /뉴스토마토 여행문화전문위원

ghang@han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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