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생활
[답사] 봄볕 깃드는 예산 수덕사에 오르다
 
  • 이강
  • 16.02.23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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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이 절집에 머물렀다던 고 최인호 선생의 책 몇 권을 들고 떠난다. 이미 떠나간 선생이 걸었을 길을 따라 가는 여정이다. 어쩌면 늘 안고 가는 숙제, ‘길 없는 길’에 대한 답을 얻는 길이 될 지도 모른다. 한동안 무위의 나날을 보내던 때에, 선생 역시 앞서간 선지자의 걸음을 따라 이 길을 걸었다고 했다. 생전의 선생은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매일 한 줌의 맑은 바람이나, 한 잔의 맑은 정화수를 전하고’자 했다. ‘일 없음이 오히려 나의 할 일(無事猶成事)’이라던 선승의 화두를 들고, 선생이 처음 수덕사를 찾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길을 돌아 본래의 천연한 나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인가? 무게가 꽤나 되는 네 권의 책을 부득불 배낭에 꾸려 넣게 된 이유다. 길 없는 길의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길 없는 길’은 총 네 권의 책으로 묶여진 대하소설이다. 첫 길의 시작은 모신문사의 연재 글을 통해서였다. 선생의 걸음은 제 1권, ‘길 없는 길’을 시작으로, 2권 ‘불타는 집’, 3권 ‘생각의 화살’, 4권 ‘하늘가의 방랑객’으로 다시 돌아온다. 길 없는 길을 돌아 하늘가의 방랑을 마치고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인연과 순환의 여정이다. 해방둥이였던 선생이 그의 나이 45세가 되던 해에 수덕사를 향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수덕사 주변 풍경.(사진=이강)

길 없는 길, 그 걸음을 따라서
 
길 없는 길을 작정하고, 일 없는 일의 의미를 찾아 나선 것이라면, 제 길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선생은 책머리말을 통해 한동안 아무런 할 일 없이 ‘무위의 나날’을 보내던 때였다고 적고 있다. 도시를 정처로 삼은 삶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날의 부피를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바쁜 일상의 현대인에게 무위로움은 다소 적막하다. 허망한 욕망, 쉽게 손에서 놓지 못하는 이유는 무얼까. 손에 잡히지 않는 꿈은 마음의 질량보다 부피가 큰 것이어서 늘 버겁기하다. 아무래도 할 일이 없는 나날을 맞닥뜨린 선생은 선사 경허의 ‘법어집’를 접하게 되면서 홀연히 도시를 벗어날 길채비를 하였다고 적고 있다.
 
수덕사에 이르니 여느 사하촌과 다름없이 산행객들이 지나는 길목마다 잡화상과 기념품 가게, 음식점들이 줄지어 서 있다. 선생이 찾은 때가 바람이 시작되는 가을이었는데, 지금은 입춘이 지났으니 바람이 봄을 부르는 때로 접어들었다. 당시 선생은 수덕사가 어디에 있는지 짐작할 수 없었고, 무작정으로 차를 몰아 캄캄한 저녁이 되어서야 절 아랫마을에 도착해 맛없는 국밥 한 그릇으로 요기를 하고 절에 올랐다고 적고 있다.
 
나의 길이 따로 있다면, 그 길이 어디에 있는 것인가? 제 1권 ‘길 없는 길’은 차마 어쩌지 못하는 무위한 날을 맞닥트린 주인공의 허망과 좌절을 그려내고 있다. 생전에 선생은 일 년여를 수덕사에 칩거하며 소설을 완성했다고 전해지는데, 그게 벌써 28년 전의 일이다. 소설의 형식을 빌리면, 선생은 만추의 어느 가을 오후 수덕사를 찾아 하룻밤을 묵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무위한 나날의 막연함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 과연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 때문이었다. 길은 도대체 있기는 한 것인가? 마땅한 길토래비도 없는 삶의 여정에서 우리는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긴 한가?

 

 

 

△수덕사 경내 전경.(사진=이강)

 

산문 밖의 주차장에 차를 놓아두고 ‘덕숭산덕숭총림수덕사’란 한글 현판이 걸린 덕숭선문을 오른다. 바람 자락이 떠나지 않은 산사의 그늘에는 봄이 채 이르지 못하고 있다. 선문을 지나 일주문으로 천천히 오르니, 그제야 아침볕이 산허리를 넘어 길을 비춘다. 선생은 ‘일 없음이 오히려 나의 할 일’이란 경허 스님의 선시를 마음에 품고, 경허 선사의 볕과 그림자를 좇아 산사에 올랐었다. 선문에 드니 오른 편으로 수덕사선미술관과 수덕여관이 차례로 나타난다. 왼편으로 원담 스님의 부도와 부도전이 그늘에 자리하고, 해탈교를 건너자 국내 최초의 불교미술관인 수덕사선미술관이 양명하다. 잠시 수덕여관의 마루턱에 앉았다가 일주문으로 오른다. 긴 연휴 동안의 산사는 고요하고 적막하다. 산행을 즐기는 산행객들과 오직 불심만으로 산길을 오르는 늙은 어머니들의 굳어진 걸음이 길을 오갈 뿐이다. 어머니들의 걸음을 따라 ‘동방제일선원’이라 쓰여진 일주문을 들어선다. 최인호 선생이 정신적 목마름을 해갈하기 위해 치열하게 매달렸던 길을 들어서는 순간이다.

 
덕숭산 자락 아래 수평적 공간미
 
‘세속과 청산 그 어데가 옳은가, 봄볕 있는 곳에 꽃 피지 않은 곳이 없구나.’ 선사의 글귀를 떠올리며, 금강문과 천왕문을 차례로 올라 황하정루 누각에 서서 수덕사 경내를 올려본다. 산사의 풍경은 수평적 공간미와 과하지 않은 절제미로 편안하고 고요하다. 계단을 오르니 덕숭산 자락 아래 드넓게 펼쳐진 수덕사의 경내가 펼쳐진다. 대웅전 뒤편을 병풍처럼 둘러선 덕숭산은 호서(湖西)의 금강산이라고도 불리는데, 여러 가지 형상을 지닌 기암들이 절묘한 산경을 그려내는 명산이다. 산자락에는 수덕사를 중심으로 정혜사, 견성암, 만공탑, 여승당, 보덕사 등이 산숲 언저리에 마치맞게 자리하고 있다. 경내를 살펴보니 대웅전을 중심으로 금강보탑과 삼층석탑이 일직선으로 나란하고, 백련당과 청련당, 법종각과 법고각 역시 대칭의 미를 이루고 있다. 좌우의 전각들이 산자락 아래 고승의 장삼자락처럼 펼쳐져 있는 품이다. 마당 한편에 선 커다란 나무 아래로 산행객들이 봄볕이 드는 산사의 한가로운 정취를 만끽하는 모습이다.

 

 

 

△수덕사 대웅전.(사진=이강)

 

 

대웅전과 앞마당의 금강보탑과 삼층석탑, 기도효험이 잘 알려져 많은 불자들이 찾는다는 관음전과 관음암까지 둘러본다. 수덕사 대웅전은 국보 제49호로 지정되어 있다. 1308년으로 건립 연대가 확실해 우리나라 고건축의 기준이 되는 건축물로 고려시대 건물 중 특이하게 백제식 곡선을 보이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다. 빛이 바랜 후 단청을 새로 올리지 않은 대웅전의 아름다움은 단순하면서도 간결한 절제미로 불교미학의 정수라 알려져 있다. 덕숭산 자락의 산세와 어우러진 맞배지붕, 화려하지 않은 기와의 배열 역시 시각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수평적인 공간감의 완성이다. 다소 지루할 수 있는데, 이와 대비를 이루는 것은 대웅전 앞마당의 금강보탐과 삼층석탑의 배치다. 두 탑은 단조로운 공간에 솟구치는 기백을 불어넣는다. 삼층 석탑은 신라 문무왕 5년에 건립되어 원효대사가 중수하였다고 전해진다. 통일신라의 양식을 지닌 고려 초기 석탑이다. 수덕사는 차분하고 진중하여 가볍지 않은데, 이 또한 진중하면서도 간결한 건축미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덕숭산 정상으로 향하는 1080계단을 오르니 일체의 머무름도, 일체의 걸림도 없었던 선사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하다.

 

 
멀리 주위 풍경을 관망하는 이들의 모습이 평화롭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산사를 찾은 이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은 수덕사의 여여로움 때문이다. 봄의 바람이 산을 깨우니, 겨우내 얼어있던 마음이 녹아내리는 느낌이다. 산사의 절제된 풍광, 한 움큼씩 손에 잡히는 봄볕으로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다. 무위의 나날, 다시 길 없는 길을 돌아 봄이 깃들기 시작한 산사를 내려산다.

 

원문: 뉴스토마토

 

이강 여행작가 /뉴스토마토 여행문화전문위원

ghang@han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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