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호남 싹쓸이’ 舊민주계, 안철수 ‘팽’ 시키나
‘힘 실린’ 구민주계…“당-대권 분리” 압박
  • 정유담 기자
  • 16.04.26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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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당 ‘호남 싹쓸이’는 한국 정치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큼 의미가 깊다. 새누리당 참패와 더불어민주당의 1당 등극, 그리고 국민의당 ‘녹색 돌풍’은 제20대 총선을 함축하는 핵심 키워드가 됐다. 16년 만에 찾아온 여소야대(與小野大), 3당체제를 포함한 다당(多黨) 구도의 확립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새로운 정치지형의 성공 여부에 대해선 여전히 퀘스천 마크다. 당장 신생 정당의 당권·주도권 싸움이 목전인데다, 호남을 위시한 구민주계와 안철수 공동대표 간 샅바싸움도 현실로 다가왔다. 천정배 박지원 정동영 등 토호 세력은 호남을 무기로 벌써부터 ‘정치 초짜’ 안철수를 압박하고 있다. ‘호남 싹쓸이’가 안 대표에게 되레 독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편집자 주>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사진=안철수 대표 트위터)

 

‘8월 전당대회’를 두고 국민의당이 설왕설래다. 친안(친안철수)파는 물리적인 어려움 때문에 현 임시 지도체제를 당분간 유지할 것을 주장하고 있는 반면, 비안(비안철수)파는 새 지도부를 통해 당을 정상궤도에 올려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구민주계가 중심이 된 비안파는 한발 나아가 당권과 대권을 분리해야 한다는 당헌·당규를 들어 안철수 공동대표의 이선 후퇴까지 요구하고 있다. 당 전면에 나서려는 호남 구민주계의 ‘안철수 고사작전’이 전당대회를 계기로 본격화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당권 관련 양측의 신경전은 지난 18일 총선 후 첫 최고위원회의에서부터 드러났다. 호남 민심의 대변자를 자처한 천정배 공동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통령 후보를 꿈꾸는 분과 당 지도부는 분리돼야 한다. 4개월짜리 당 지도부를 뽑아서 사퇴하고 새로 뽑고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안철수 대표를 정조준했다.

 

광주가 지역구인 장병완 정책위의장도 “임시 지도체제론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다. 하루빨리 전당대회를 열어 당의 모습을 제대로 갖추는 게 국민에 대한 예의”라고 거들었다.

안 대표는 당분간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대표직 연임 가능성에 대해 “아무 고민 안 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대선 1년 전에는 당 대표와 대선 후보 둘 다 할 수 없다는 정신을 그대로 지키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해 당분간 당권을 놓지 않겠다는 뜻을 에둘러 표시했다.

안철수계 핵심인 이상돈 비례대표 당선인은 ‘안철수 지도체제 유지’에 총대를 멨다. 그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헌이 규정하고 있는 창당 6개월 내(8월2일 전) 전당대회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국민들은 국민의당 하면 안철수 대표를 떠올린다”며 “당분간은 이 같은 효과를 그대로 유지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옹호했다. 이 당선자 발언은 당권투쟁이 본격화될 경우 안 대표의 당 장악력도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 인식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만만찮은 ‘호남 입김’…安 거듭 압박

 

국민의당은 호남 의원들의 입김이 상당한 데다, 당내 정치적 스펙트럼이 넓어 화학적 결합이 쉽지 않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본지와 통화에서 “이상돈 당선인을 포함해 중도 보수 입장을 취하고 있는 안 대표 측과 천정배·정동영 등 진보적 성향을 지닌 호남 구민주계 간 이념적 스펙트럼이 넓다”며 “앞으로 갈등이 본격화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당내 핵심 관계자도 기자와 통화에서 “총선 이후 호남 의원들의 입김이 만만치 않은 상태”라며 “안철수계가 구민주계에 밀려 주도권을 뺏길 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 ‘토사구팽 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냐’는 물음에 “안철수라는 확실한 대선후보가 있는 상태에서 토사구팽이란 표현은 그렇다”며 “다만, 호남이 ‘안철수 색’을 빼려는 시도는 분명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4·13총선에서 수권정당인 더민주에 대한 호남 심판은 매섭고 시렸다. 전남과 전북을 합쳐 고작 세 석을 얻은 게 전부다. 야권의 심장부인 광주에선 전패했다. 호남은 더민주를 매몰차게 거부했고, 무능 야당에 대한 반대급부는 국민의당이 모두 챙겼다. 호남지역 28석 가운데 무려 23석을 차지했다. 다만, 그 외 지역은 수도권 2석이 전부다. 호남 지분이 상대적으로 비대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총선 이후 구민주계 인사들이 본격적인 당권 경쟁에 나설 수 있는 것도 호남이란 뒷배가 있기에 가능하다.

호남을 석패한 지역구 의원들은 국민의당이 안철수 대표로 상징되는 것에 거부감을 표시하고 있다. 당 관계자가 “‘안철수 색’을 뺄 것”이라 한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다. 당장은 아니지만 당내 적잖은 헤게모니 싸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구민주계가 당권을 쥐고자 하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숨어 있다. 바로 내년 대선을 앞둔 정지작업이다. 대권이 아니라면 당권을 차지하는 길밖에 없다. 천정배 공동대표가 “호남당이면 어떠냐”고 말한 것도 이를 방증한다.

지난 총선과 마찬가지로 안 대표는 독자노선을 고수 중이다. 4·13총선의 대약진도 야권연대를 거부했기에 가능했다고 믿는다. 하지만 구민주계 생각은 다르다. 선거를 앞둔 이합집산이 몸에 밴 이들은 지금까지 그래왔듯 더불어민주당과의 연대를 꿈꾼다. 일대일 구도가 절실한 대선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당 핵심 인사는 본지와 통화에서 “천정배 대표의 안철수 견제는 야권통합을 이루기 위한 사전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독자노선을 취하는 안 대표에 제동을 걸기 위해서도 반드시 당권은 ‘야권통합론자’가 쥐어야 한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또 “안철수라는 유력 대권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대권에 나설 수 있는 사람은 없다”며 “그렇다면 구민주계 인사들이 전체적인 판을 만들어가는 역할에 주력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려 들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안철수는 국민의당 간판스타로 대선에 내세울 얼굴마담”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반영하듯 정동영 당선자는 지난 15일 “정권교체를 위해 다른 야당과 가치 연합을 실현하겠다”며 차기 대선에서 야권 연대를 강하게 시사했다.

 

안철수, 박지원에 손 내민 이유는?

안 대표도 구민주계의 이 같은 반란을 모르는 바 아니다. 최근 박지원 의원과 만나 원내대표직을 권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호남정치의 좌장(座長) 격인 박 의원을 포섭해 당권 경쟁에 따른 분란을 최소화하겠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박 의원은 당 대표로 뜻을 굳힌 상태다. 그는 안 대표 제안에 대해 “18, 19대 국회에서 두 번이나 원내대표를 했기 때문에 20대에서 또 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느냐, 그러니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것이 좋겠다”고 거부의사를 밝혔다.

안 대표 측이 내세울 만한 ‘대표 카드’는 그리 많지 않다. 안 대표와 함께 유일하게 수도권에서 생환한 김성식(서울 관악갑) 당선자와 이상돈 비례대표 당선자 정도가 전부다. 그런데 김 전 의원은 “당직에 뜻이 없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이 당선자도 정치 신인이란 점에서 원내 3당을 이끌기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국민의당 내부에선 ‘전당대회 연기론’이 힘을 받고 있다. 당 관계자도 “연기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또 다른 관계자는 “총선승리의 여세를 몰아 8월 전당대회를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며 “아직까지 확정된 바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여전히 공방 중이란 얘기다.

안 대표 측은 ‘전당대회 연기’를 넘어 당헌 수정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 3월1일까지 전당대회를 열도록 하고, 대선후보의 경우 기존 1년에서 6개월 전 당무 사퇴로 규정을 완화한다는 방침이다. 안 대표에게 확실히 힘을 싣겠다는 계산이다.

 

이에 대해 구민주계 관계자는 “이렇게까지 힘이 실린 상태에서 더 이상 뭘 얼마나 더 힘을 실어주냐”며 “지역위원장 임명, 대의원 선정, 당원 모집 등의 현실적 어려움 때문에 전당대회를 늦출 순 있겠지만, 이런 식으로 당헌을 바꾸는 것은 과도하다”고 말했다.

 

커버리지 정유담 기자(media@coverage.kr)

 

<기사 속 기사>

 

[국민의당 계파분석] 안철수-호남민주계 양분
‘신진 친안파’ 다수…호남에 ‘당 중진’ 대거 포진

 

제20대 총선에서 38명의 당선자를 낸 국민의당은 안철수 공동대표를 중심으로 한 친안(친안철수)파와 전체 의석에서 가장 큰 파이를 차지한 호남지역구 당선자로 구분된다. 주목할 점은 안 대표가 당내 유력 대권후보인 가운데 당 중진 상당수가 호남에 포진돼 있다는 것이다. 당 운영을 둘러싸고 양측의 역할론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안철수계로 꼽히는 지역구 인사는 김성식 전 의원이 있다. 또 비례대표 당선자 가운데 지난 대선 때부터 함께한 박선숙, 이태규는 물론 삼고초려로 영입한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도 대표적 ‘안철수 사람’이다. 이외에도 신용현, 오세정, 채이배, 김수민, 김삼화, 김중로, 장정숙, 이동섭, 최도자 등 비례대표 당선자 대다수가 안철수계로 분류된다.

안 대표와 각을 세울 수 있는 대표적 호남지역구 인사는 천정배, 박지원, 정동영 당선인이 있다. 계파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지만 개인의 역량과 중량감이 상당하다는 점에서 향후 안 대표와 경쟁관계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천정배계는 박주현 당선자가 유일하다. 하지만 호남 민심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다. 여기에 김한길계로 분류되는 권은희 당선자도 천정배 대표와 친분이 두텁다. 당내 김한길계는 주승용, 김관영 당선인 등이 있다.

구민주계 좌장격인 박지원계는 박준영, 윤영일, 최경환 당선자 등이다. 이 가운데 박준영 당선인은 공천비리 의혹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독자파로 활동하고 있는 정동영 전 의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북 좌장 역할을 맡고 있는 정 전 의원은 조배숙 당선자와 가깝다.

호남지역구 인사 가운데 안 대표가 직접 영입한 김경진, 김광수, 김종회, 손금주, 송기석, 이용주, 이용호, 정인화 등도 친안철수계로 분류된다. 재선의 황주홍 의원도 안 대표와 가까운 인물이다. 다만, 호남이란 틀 안에서 언제든 구민주계와 유기적 결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들이 마지막까지 안 대표 측에 설지는 의문이다.

 

실제 안철수계로 분류된 장병완 정책위의장은 “현 임시 지도체제로는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다. 하루빨리 전당대회를 열어 당의 모습을 제대로 갖추는 게 국민에 대한 예의”라며 안 대표 측과 각을 세우고 있다.

 

-정유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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