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쪼개지는 새누리…정계개편 신호탄 되나
‘어게인 2007’, 열우당 사태와 닮아가는 새누리
  • 정유담 기자
  • 16.05.21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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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이 쪼개질 위기에 처했다. 계파 갈등 해소를 부르짖던 이들은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와 혁신위원회(혁신위)가 무산된 뒤 미증유의 혼돈 속에 빠졌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친박의 본색 앞에 비박은 “당 주인이 누구냐”며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심리적 분당’ 사태를 맞고 있는 새누리당에 대해 정치권 안팎에선 여당 발 정계개편이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편집자 주>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이 친박계의 전국위 보이콧을 강하게 비판하며 혁신위원장 사퇴를 선언했다.

 

총선 참패 후 새누리당 계파 갈등이 드디어 폭발했다. 사실상 ‘루비콘 강’을 건넌 친박(친박근혜)과 비박(비박근혜)은 계파 간 내전이 격화되면서 분당 수순을 밟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당직자들 사이에선 ‘심리적 분당’ 상태라며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

 

지난 17일 새누리당은 전국위원회 등을 열어 비대위 인선안 의결은 물론 혁신위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의 당헌·당규를 개정할 예정이었다. 당 혁신안이 새 지도부로부터 거부될 수 있다는 지적에 따른 강구책이다. 실제 당권 도전에 나선 ‘진박(진실한 친박)’ 이정현 의원은 “혁신안을 선별적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친박계의 집단 보이콧으로 이날 예정된 상임전국위원회와 전국위원회는 결렬됐다.

 

앞서 정진석 원내대표는 ‘친박 사당화’라는 비판을 의식한 듯 김용태 의원을 혁신위원장에 내정하는 등 비박 달래기에 나섰다. 친박계는 집단 성명을 발표하고 비대위 구성안에 반발하는 한편 회의 불참을 요구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등 조직적으로 회의를 무산시켰다.

 

일부 참석자들은 “이러니까 총선에서 패하지, 정신 좀 차려라” “친박과 비박이 싸우다 쪽박 차게 생겼다”며 강한 분노감을 표시했다. 상임전국위 회의를 주재한 비박계 정두언 의원은 회의장을 박차고 나오며 “이건 정당이 아니라 패거리 집단이다. 동네 양아치들도 이런 식으론 안 할 것”이라는 독설을 내뱉었다.

 

긴급 기자회견을 가진 김용태 의원은 “새누리당에서 정당 민주주의는 죽었다. 국민에게 용서를 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잃었다”며 혁신위원장을 전격 사퇴했다. 친박을 ‘악(惡)’으로 규정한 그는 “국민에게 무릎을 꿇을지언정 그들(친박계)에게 무릎 꿇을 순 없다”며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겠다”고 친박계와의 전면전을 선언했다.

 

친박 본색 “그냥 나가라!”…비박계 ‘부글부글’

 

전국위 등의 보이콧으로 당내 권력이 비박계로 넘어가는 것을 차단한 친박계는 당 분열을 초래했다는 질타와 함께 ‘친박 패권주의’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러한 기류를 의식한 듯 친박계는 “정진석 원내대표가 자초한 일”이라며 “당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을 방관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항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친박계 내부에선 비박과 함께할 수 없다며 ‘결별설’이 나오는 등 벌써부터 분당 시나리오가 가시화되고 있다. 친박 핵심인 김태흠 의원은 “분당 상황이 올 수도 있다”며 “‘절이 싫으면 스님이 떠난다’는 옛말처럼 정당은 이념과 생각, 목표와 방향이 같은 사람들끼리 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나가라’는 엄포다.

 

이를 접한 비박은 “친박이야말로 청산 대상”이라며 반격에 나섰다. 비박계 정병국 의원은 “친박이 참으로 오만하다. 그렇기 때문에 청산의 대상, 혁신의 대상이 되는 것”이라고 질책했다. 또 하태경 의원도 “친박은 대통령 팔아서 정치하는 매박(賣朴)”이라며 “자기들이야말로 청산 대상”이라고 날을 세웠다. 정두언 의원은 “이런 패거리 집단에 있어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탈당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다.

 

새누리 분당 초읽기…열우당 사태 ‘데자뷰’

 

새누리당이 20일 원내지도부·중진연석회의를 통해 비대위와 혁신위를 일원화하는 이른바 ‘혁신형 비대위’를 구성하는 방안에 공감대를 이루는 등 사태 봉합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계파 갈등은 좀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당내에선 이미 분당 시기만을 보고 있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온다. 정두언 의원은 재보선이 치러지는 “내년 4월이 기점”이라고 여당 발 정계개편을 예고했다.

 

새누리당이 분당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정치권 안팎에선 2007년 열린우리당 분당 사태와 흡사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열린우리당과 새누리당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의 개인기로 탄생한 당이다. 참여정부가 들어선 2003년 열린우리당이 만들어졌고, 2004년 탄핵 역풍을 딪고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노사모는 열린우리당 내 친노로 확장됐다. 하지만 정권 말기인 2007년 친노와 비노 간 갈등이 격화되면서 대규모 탈당 사태가 이어졌고, 17대 국회의 상징인 열린우리당은 참여정부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열린우리당 분당 사태 당시 비주류에 의해 노무현 전 대통령 탈당 요구가 이어졌듯, 현재 비박계 일각에선 박 대통령 탈당설이 언급되고 있다. 실제 김용태 의원은 혁신위원장에 인선된 뒤 박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 내홍과 맞물려 출범하는 정의화 국회의장의 싱크탱크 ‘새한국비전’도 한층 더 정치권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비박계 인사들의 일부 유입이 가능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당내 소장파 맏형격인 정병국 의원은 ‘새한국비전’에 대해 “아직 정치세력화를 말할 단계는 아니지만, 마땅한 대안세력이 없다면 직접 그 세력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즉, 새누리당을 대신할 정치결사체로 발전할 수 있다는 의미다.

 

국민의당도 여권 내 합리적 보수가 합류할 경우 받아들이겠다며 문호를 열어뒀다. 안철수 공동대표는 일부 탈당파들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등 외연확장에 나선 상태다. 안으로는 분당, 밖으로는 구애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한편, 지난 18일 박근혜 대통령은 규제개혁점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참초제근(斬草除根)’을 언급, “풀을 베고 뿌리를 제거하지 않으면 싹은 옛것이 다시 돋아난다”고 말했다. 전날 새누리당이 전국위 파행 등으로 분당 위기론까지 거론되는 등 심각한 내홍에 휩싸인 상황에서 나온 박 대통령 발언은 당 분위기와 묘하게 오버랩 되면서 불필요한 해석을 낳고 있다.

 

커버리지 정유담 기자(media@coverag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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