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안철수, 제2의 문국현 될까
“국민의당 사건, 또 하나의 ‘문국현 죽이기”
  • 정찬대 기자
  • 16.06.18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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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당이 ‘김수민 리베이트’ 의혹 사건으로 만신창이가 됐다. 4·13총선에서 38석을 얻으며 16년 만에 3당 체제를 연 국민의당은 줄줄이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있고, 야권의 또 다른 유력주자 안철수 공동대표는 청렴성을 의심받고 있다. ‘윗선’을 향한 검찰의 칼끝은 어느새 비례대표 공천 의혹으로 향하면서 당을 옥죄고 있다. 타깃은 설정됐다. 당 핵심이자 안 대표 최측근인 박선숙 의원은 고발됐고, 안 대표 역시 적잖은 상처를 입으면서 차기 대권에 먹구름이 낀 상태다. ‘김수민 사건’을 두고 2008년 18대 총선 이후 불거진 창조한국당 비례공천 파동을 연상하는 이도 적지 않다. 문국현 대표는 해당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의원직을 상실했다. 물론 창조한국당도 19대 총선 이후 정당법에 따라 해산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편집자 주>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사진=안 대표 페이스북)

 

지지율은 급락했고, 구상은 구겨졌다. 호남 신당의 새로운 구심점으로 떠오른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는 ‘김수민 리베이트’ 의혹 사건으로 총선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어수룩한 모습은 순진함으로 인식됐고, 숫된 표정은 진실함으로 비춰졌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기존과 다를 바 없는 정치인으로 인식되면서 순수성은 퇴색됐고, 그간의 강점이던 청렴성 역시 의심받고 있다. 호기롭게 출범한 신생 정당의 진정성은 힘을 잃었고, 야권의 또 다른 유력주자 안철수 대표의 ‘새 정치’도 빛이 바랬다.

 

자당 박준영 의원 공천헌금 수수의혹에 이어 또 다시 ‘김수민 사건’이 발생하면서 당 이미지 추락과 함께 새 정치를 표방해온 안 대표 대권가도에도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안 대표는 사건이 불거진 다음날인 10일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들께 걱정을 끼쳐드린 점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야당에만 잔혹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면서도 “검찰 수사에 적극 협력하겠다”고 몸을 낮췄다.

 

국민의당은 이상돈 최고위원을 단장으로 진상조사단을 구성했다. 외부인의 참여 없이 박주선, 김경진, 김삼화 의원 등 율사 출신 당내 인사로 꾸려졌다. 이 때문에 정치권 안팎에선 진상 파악이 아닌 검찰 수사에 대비한 법률대응팀이란 지적도 나온다.

 

‘김수민 리베이트’ 의혹이 김수민 개인의 문제가 아닌 당 지도부와 연관된 비례공천 파동으로 번질 경우 점진적으로 당 와해까지도 불러올 수 있을 만큼 사안이 적지 않다. 검찰 수사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야권 일각에서 ‘제2의 창조한국당 사태’로 변질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국현과 창조한국당 ‘공천헌금’ 사태

 

2009년 10월 창조한국당 문국현 전 대표가 ‘공천헌금’ 사건으로 실형을 받고 의원직을 상실했다. 비례대표 후보에게 6억 원의 당채를 시중이자보다 낮게 발행해 경제적 이득을 얻은 혐의가 인정된 것이다. 하지만 대법 판결에도 불구하고 당시 사건은 여러 논란을 낳았다. 선관위가 인정한 당채 발행인데다, 비영리법인의 당채 이율이 재산상 이익으로 인정될 수 있느냐 등의 문제가 쟁점거리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를 인정했다.

 

문국현 부재 뒤 창조한국당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됐다. 하지만 당의 얼굴이자 상장인 문 전 대표의 의원직 상실은 창조한국당이 내리막길을 걷게 된 결정된 계기가 된다. 이후 어렵사리 지도부가 꾸려졌지만 2012년 19대 총선에서 창조한국당은 0.4% 득표에 그쳐 원내진입에 실패했고, 정당법에 따라 해산됐다.

 

문 전 대표는 유한킴벌리 사장을 지낸 전문경영인(CEO) 출신 인사다. 청렴성을 무기로 기존 정치권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고, 2007년 대선에서 ‘사람 중심의 진짜 경제’를 표방하며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투표 전날까지 15% 이상의 지지율을 기록했지만, 선거 당일 득표율은 5.8%p를 얻는데 그쳤다. 제3후보의 한계는 또 한 번 확인됐고, 문국현의 정치 실험도 그렇게 좌절됐다.

 

‘안철수 신드롬’과 2012년 대선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안철수 신드롬’이 우리 사회를 강타했다. 무상급식 논란 이후 주민투표를 추진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주민투표율 미달로 사퇴하자, 2011년 10월 재보선에 나선 박원순 현 서울시장에게 후보직을 양보함으로써 ‘아름다운 양보’를 낳는 등 숱한 화제를 뿌렸다.

 

안철수는 한국 정치사에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며 새로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이후 그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제3후보 한계를 뛰어넘는 요체로 발전했다. ‘안철수 신드롬’에도 불구하고 그는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후보와 단일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또 한 번 양보해 이목을 끌었다. 그리고 대선 이듬해인 2013년 4월 재보선을 통해 제도권 정치로 들어왔다. 하지만 맞지 않는 옷을 두른 것처럼 ‘정치인 안철수’란 타이틀은 어색해보였다.

 

2014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독자신당을 준비하던 안철수 대표는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전격적인 통합을 선언함으로써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했다. 그리고 성공한 기업인에서 유능한 정치인으로 조금씩 발전하기 시작했다. ‘정치인’이란 옷을 온전히 입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계파갈등이 문제였다. 걸핏하면 지도부 흔들기가 이어졌고, 야당 대표의 숙명이 그러하듯 비주류의 ‘부박한 행태’는 계속됐다. 결국 6·4지방선거와 7·30재보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20대 총선을 앞두고 독자노선을 선언, 새로운 정치조직을 만듦으로써 3당 체제의 문을 연 지금의 국민의당이 탄생했다.

 

이회창과 손잡은 文…호남과 손잡은 安

 

2008년 8월 자유선진당과 창조한국당이 18대 국회 공동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합의했다. 진보진영으로 분류된 문국현 대표와 보수진영 핵심인 이회창 총재가 의기투합한 것이다. 양당은 이후 ‘선진과 창조의 모임’으로 활동하며 원내 목소리를 키웠다.

 

하지만 문 전 대표에 실망한 상당수 지지자들이 등을 돌리면서 창조한국당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이한정 의원의 비례대표직을 승계한 유원일 의원도 정체성이 다름을 이유로 ‘선진과 창조 모임’에 가입하지 않으면서 내부적 혼란을 겪었다.

 

2014년 3월 새정치연합과 민주당 합당과정에서 안철수 대표 측은 통합신당 정강정책에서 6·15남북공동선언과 10·4남북정상선언은 물론 4·19혁명과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었다. 금태섭 당시 새정치연합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민주당 강령을 보면 5·18, 4·19를 비롯한 여러 사건이 나열돼 있는데, 회고적으로 특정 사건을 나열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불필요한 논란이 있어 넣지 말자는 게 기본 입장”이라고 밝혔다.

 

새정치연합은 안 대표에 대한 역사인식 논란을 불러오면서 적잖은 비판을 받았다. 특히 야권의 핵심 텃밭이자 진보색이 짙은 호남에서의 반발이 상당했다. 여기에 지난 1월 국민의당 한상진 창당준비위원장은 이승만 전 대통령을 ‘국부’라고 칭해 또 한 번 진보진영의 분통을 샀다.

 

정체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안 대표는 호남 포섭작전에 돌입했다. 천정배 의원과 공동 지도부를 꾸리고, 박지원 원내대표를 영입했다. 정동영 의원까지 가세해 호남에서의 몸집을 키웠다.

 

국민의당은 호남지역구 28석 가운데 총 23석을 석권하며 ‘호남당’이 됐다. 이념적으로 맞지 않을 것처럼 보였던 안철수와 호남이 20대 총선을 계기로 손을 맞잡은 것이다. 안철수는 호남이란 든든한 뒷배가, 호남은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매서운 심판이 필요했다. 결과적으로 필요에 의해 양측이 결속한 셈이다. 국민의당이 ‘사상누각’이란 지적은 이러한 배경에 기인한다.

 

제3후보의 한계와 가능성

 

과거에도 제3의 후보들은 새로운 정치를 구현할 인물로 떠오르면서 높은 인기와 지지율을 기록하곤 했다. 그러나 막상 대선에 출마하고 ‘뚜껑’을 열어보면 정책이나 리더십 부재 등이 거론되면서 ‘거품’이 빠지기 시작했다. 앞서 언급한 문국현 대표가 그랬고, 2007년 대선을 앞두고 고건 전 총리가 그랬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등에 업은 무소속 정몽준 의원은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을 따라잡았고, 급기야 민주당내 후단협(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이 구성되면서 노 후보를 압박했다. 2017년 대선에서는 ‘친박(친박근혜) 후보’ 반기문 유엔(UN) 사무총장의 등판이 유력하게 점쳐지면서 야권을 긴장시키고 있다.

 

안 대표의 거품이 빠졌다는 지적도 많다. 전만 못하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오죽하면 ‘간철수’라는 비아냥까지 들릴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대표는 여전히 야권의 유력주자임이 틀림없다. 지지율은 떨어졌지만 반기문 사무총장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에 이어 3위를 차지한다.

 

과거 창조한국당에 참여한바 있는 국민의당 핵심 인사는 <커버리지>와 통화에서 “안 대표를 보면 문 전 대표가 떠오른다”고 했다. 성공한 기업인 출신, 새로운 정치 발현의 가능성, 제3후보의 한계 등이 그렇다. 안 대표가 문 전 대표를 멘토로 삼았다는 점도 재미있는 사실이다.

 

이 관계자는 “문 전 대표가 전문경영인 출신으로 실적위주의 정치인이라면, 안 대표는 오너 출신으로 책임위주의 정치인이란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고 했다. 이어 “정치적 감각이나 아이덴티티는 문 전 대표가 낫지만, 안 대표는 책임지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리더로서의 자격을 갖춘 부분이 있다”고 비교했다.

 

그는 ‘김수민 리베이트’ 의혹과 창조한국당 ‘비례공천 파동’에 대해 “양당 모두 시스템적으로 미비한 상태였다. 중구난방이고 혼란스런 상태에서 그런 일이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창조한국당 사태는 금전적 이득을 취한 것이 판결의 주였다면, 국민의당은 김수민 비례의원으로부터 당이 금품을 수수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성격적으로 완전히 다른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관계자는 국민의당 사건을 또 하나의 ‘문국현 죽이기’라고 했다. 양상은 다르지만 패턴은 비슷하다는 지적이다. 그는 “검찰이 안 대표에게 사법적 책임을 물을 순 없지만, 이번 사건으로 도덕적 책임은 피할 수 없게 됐다”며 “결과적으로 안 대표와 국민의당이 상당한 부담감을 안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문국현 대표의 정치 실험도 이런 식으로 끝났다”고 전했다.

 

커버리지 정찬대 기자(press@coverag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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