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칼럼] 부끄러운 줄 알자!
 
  • 김기성 기자
  • 16.08.19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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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굴비 하나씩을 먹었으니 1인당 26000원이네. 괜찮네. 잠시만. 맥주 2병을 마셨으니 1병당 5000원이 추가되네. 한도 넘었네. 어떻게 살라는 거야?”
 
최근 한 기업과의 점심 자리에서 나온 대화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화제다. 가는 곳마다 김영란법을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기자들을 대해야 하는 기업 홍보들은 죽을 맛이라며 혀를 찬다. 일부 기자들도 이에 동의하며 세상이 야박해졌다고 투덜댄다.
 
오랜 기간 국회 담당 정치부 기자로 일하다, 재계 담당으로 발령이 났다. 생소한 출입처보다 더 생소했던 것은 문화로 일컬어지는 관행이었다. 간단한 주먹밥이라도 아침을 챙겨주고, 점심에는 선약이 없는 한 기업 홍보담당(통상 당번제로 운용된다)과 근처 비싼 식당에서 배를 채운다. 나른한 오후가 되면 간식도 배달된다. 저녁에는 다른 기업 홍보담당과 식사를 한다. 당연히 술잔이 오가고, 2·3차로 이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주말에는 다시 기업 담당자와 골프를 한다. 운동을 마치면 트렁크에 과일상자 하나가 실리고, 게임비로 돌았던 돈이 지갑에 실려 있다. 그러고서는 회사에서 으스댄다. 새벽까지 술 마시며 일하고, 주말도 반납한 채 출입처를 관리한다며, 그 공을 잊지 말아줄 것을 은연 중 내비친다. 설과 추석 명절에는 아파트 경비실 한편에 기업들이 보내온 선물들이 가득하다. 혹여 승진 등 인사이동이라도 있으면 축하 난을 처리하지 못해 골머리를 썩는다.
 
내 얘기다. 그리고 대부분의 이 나라 고참급 기자 얘기다. 군사독재에 맞서 펜을 구부리지 않던 선배들조차 현실과 타협했다. 정확히는 야합이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공생을 한다. 이 정도 되면 김영란법의 필요성이 명확하다. 불의에 맞서며 정의롭게 제 길을 걷는 기자는 없다. 아니 드물다. 하물며 영화조차 기자라는 존재를 권력과 돈과 타협하는 기생충으로 그린다. 그리고 그 영화는 대중과 오늘날의 현실로 공유된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세월호 참사 앞에서 우리는 비겁했고, 돈 앞에서 우리는 조아렸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노회한 말 앞에 기자정신은 자리를 둘 공간이 없다. 오히려 네가 세상을 모른다는 핀잔만 떨어진다. 재계로 출입처를 변경했을 당시 느꼈던 사육의 감정은 이내 친목이란 이질적 단어로 변질됐다. 그렇게 적응할 수밖에 없는 문화, 그리고 적응되어져 가는 나를 보면서 기자는 사라졌다. 정치권력에 대해서는 모두가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면서도 시장권력 앞에서는 꼬리를 내린다. 돈의 힘이다. 그렇게 펜은 돈 앞에 무릎을 꿇었다.
 
연간 법인카드로 결제한 접대비만 10조원(2015년 기준), 하루로 따지면 270억원이 접대라는 명목으로 사용되는 나라. OECD 가입 34개 국가 중 부패지수가 27위로 최하위권인 나라. 인맥이 없으면 돈과 선물을 통해서라도 이권을 챙기지 않으면 바보가 되는 나라. 제 돈으로는 가족들과 삼겹살 외식도 제대로 못하면서 기업들 돈으로, 국민 세금으로 참치와 한우와 굴비를 즐기는 나라. 대한민국이다.
 
불연 듯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일갈이 떠오른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부끄러움을 모르고 펜을 들고, 갖은 혜택을 누린 채 마치 그 펜이 국민으로부터 위임된 권력이나 되는 것처럼 세상을 재단하는 언론 현실 앞에 신뢰는 없다. 신뢰를 잃은 언론은 더 이상 언론이 아니다. 비판과 자성의 대상은 우리다.

  

원문: 뉴스토마토 

 

김기성 기자

뉴스토마토 탐사보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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