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생활
[답사] 놀멍 쉴멍 섬 제주로 봄 올레 올레
 
  • 이강
  • 16.08.29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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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제주의 골목 집집의 살림살이를 기웃거리고, 파도와의 인연을 따라 해안선을 빙 돌아 서더니 어느 새 그 앞 바다의 작은 섬에 사는 이들의 오래된 사연까지 따라 돈다. 수년전까지 제주로 떠나는 봄여행은 행락이거나 관광 일색이었다. 비슷한 등산복 차림의 행락객들이 대형버스를 타고 매번 똑같은 코스로 제주를 휙 돌아보고, 파인애플이나 밀감 한 박스쯤을 손에 쥐고 육지로 돌아왔다. 노니는 행락 일색의 관광문화를 걷기의 문화로 바꾸어 놓은 것이 바로 제주 올레다. 올레길이 열리면서 비로소 사람들은 그 섬의 집집에도 사람이 살고, 돌담 이 빙 둘러선 골목마다 작은 텃밭들인 낮은 집들이 자리하고, 바람 잦은 앞바다에 늙은 해녀가 물질을 하며 휘이휘이 쉬이쉬이 휘파람을 부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휘이휘이 쉬이 쉬이 제주에 봄 온다.
 
유채꽃이 흐드러진 제주 올레길 풍경. 사진/이강
 
제주 올레는 사람의 길이며 삶과 가까운 길이다. ‘올레’라는 제주 방언을 입에 가만히 올리면 마치 사람의 인연이 다가서는 듯하여 기쁘고, 자연스레 손짓하여 말을 거는 것만 같아서 편안하여 진다. 몇몇 사람 사이에서 시작된 제주 올레는 사람과 삶, 사람과 자연, 큰 섬과 작은 섬 사이를 이어주는 길토래비가 되었다. 쉬이쉬이 휘파람 소리를 들으며 올레길 10코스, 10-1코스 구간을 걷고 모슬포항에서 섬 가파도로 바다를 넘는다. 봅빛 청보리가 일렁이는 키 작은 섬 가파도를 지나 한반도 최남단 섬 마라도까지 둘러보는 걷기 여행이다.
  
서귀포 송악산 아래 유채가 만발하는 봄
 
섬 제주를 마음먹고 걷기 시작한 때가 2007년이다. 제주올레라는 이름으로 첫 걸음을 내딛고 제1코스가 길을 연 것이 시작이다. 올레란 제주 방언으로 좁다란 골목길을 말한다. 통상 큰 길에서 집의 대문까지 이어지는 좁은 길을 말하는데, 일종의 마실길이다. 올레길은 지난 해까지 총 21개의 코스가 만들어졌다. 끊기거나 잊혀진 길은 다시 잇고 생채기가 심한 길은 돌 하나하나를 나르는 손품으로 원형에 가깝게 단장하였다. 총 연장 약 422km 올레길의 각 코스는 대략 15km로 나뉜다, 놀멍 쉴멍 하며 걷는 성인의 걸음으로 평균 소요시간은 5~6시간 정도로 해안선을 따라 골목길, 산길, 들길, 해안길, 오름 등으로 이어져 있다. 또 물길 건너 제주 주변의 작은 섬을 도는 코스도 개발되었다. 올레길 10코스와 10-1코스라 불리는 가파도 올레가 대표적이다.
 
제주 올레길. 사진/이강
 
제주와 서귀포의 경계를 따라 이어진 올레길 10코스는 이른 봄부터 올레꾼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코스다. 화순 금모래 해변을 출발점으로 산방연대, 사계포구, 사계 화석발견지, 송악산, 섯알 오름 추모비, 알뜨르 비행장, 하모해수욕장을 거쳐 모슬포항에 이르는 15km의 코스로 봄올레꾼들이 손꼽는 길 중 하나이다. 해안선을 따라 유채가 피어난 길을 걷는 올레꾼들의 모습에는 이미 생기가 넘친다. 올레를 걷는 이들을 올레꾼이라고들 하는데, 한번 올레에 재미를 붙인 이들은 해마다 제주의 산과 오름, 바다와 골목을 걷고 또 걷는다. 올레꾼들의 특징 중 하나는 홀로 걷거나, 둘 셋의 무리를 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리 지어 떠나던 예전의 관광문화와 다른 개별성의 문화이다. 이 개별 여행자들은 집집이 골목을 기웃거리며 제주의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삶과 자연이 길로 어우러지고 소통되어 살아난다. 개별여행자들은 길을 걸으며 자연 안에 하나의 개별적 객체로써 자연과 호흡하고 숨을 나눈다. 올레 10코스의 절정은 제주 최남단 땅 끝에 솟아 오른 송악산이다. 송악산 아래 선착장에서 마라도를 둘러볼 수 있는 유람선이 오가는데, 사람들은 유람선에 곧바로 승선하지 않고 송악산에 오른다. 바로 눈앞에 펼쳐진 웅대한 오름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등산로를 따라 걸으니 멀리 송악산 남쪽의 해안절벽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정상에 오르면 조망감이 좋아 동쪽으로 산방산과 한라산, 서쪽으로는 모슬포항과 알뜨르 비행장터가 한눈에 들어온다. 바다 저 편에 가파도가 손에 잡힐 듯하다.
 
청보리가 일렁이는 가파도 너머 마라도까지
 
송악산에서 내려온 올레꾼들과 관광객들이 모슬포항에서 가파도행 배를 기다린다. 모슬포항에서 36톤급 작은 여객선이 성수기를 제외하고 하루 세 번 가파도를 오간다. 모슬포항에서 가파도 상동선착장까지는 뱃길로 5.5㎞ 거리. 대략 20분쯤이 소요된다. 예전의 가파도는 국토 최남단 마라도 가는 길에 잠깐 들르는 섬이었으나, 올레길이 생긴 이후 사시사철 수많은 여행객이 가파도를 찾는다. 섬 가파도는 키가 작은 섬이다. 우리나라의 유인도 중 해발고도가 가장 낮은 섬으로 20m에 불과하다. 때문에 가파도를 멀리서 바라보면 얇은 종잇장처럼 떠있다. 모슬포항을 출발한 여객선이 가파도 상동포구에 닻을 내리자 올레꾼들이 무리를 지어 올레길을 따른다. 포구에서 출발하여 냇골챙이, 가파초등학교, 게엄주리코지, 큰 옹짓물을 지나 가파포구에 이르는 대략 5km 남짓의 코스로, 여유롭게 2시간이면 한 바퀴를 돌아볼 수 있다. 가파도의 매력은 봄부터 연록을 물들이는 청보리밭이다. 총 60만㎡(약 18만 평)의 보리밭이 섬 여기저기에 펼쳐져 있다. 그중 가장 경관이 좋은 곳은 개엄주리코지 뒤편. 하늘 높이 풍력발전기의 거대한 풍차가 돌아가고, 가파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작은 골목골목까지 올레길들이 이어진다. 마을의 집들은 모두 하동 쪽에 모여 있다. 언덕이나 산이 없기 때문에 늘 엎드려 사는 품이다. 집들은 해안선을 따라 마장담이 이어져 있는데, 자잘한 맷돌로 겹담을 쌓은 후 상부에 외담을 얹은 돌담이다. 서로 바람막이가 되어주고 어깨를 나누어 모진 바다바람을 이겨내는 삶의 지혜이다. 섬 남쪽 끝에 이르자 멀리 마라도가 바다 한가운데 바라다 보인다. 마라도는 모슬포항에서 남쪽으로 11㎞, 가파도에서 5.5㎞ 거리에 있다. 대략 송악산, 가파도, 마라도를 꼭지점으로 한 해안선과 앞바다를 아울러 마라해양(馬羅海洋)이라 일컫는데, 국토 최남단의 청정바다인 마라해양은 깨끗하고 맑은 자연환경을 대표한다. 때문에 가파도 올레길 코스를 잡으며 해마다 국토 최남단 마라도를 찾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마라도. 사진/이강
 
마라도 살레덕 선착장에 내린 올레꾼들은 섬 가장자리를 따라 이어진 길을 따라 넓게 펼쳐진 섬의 경관을 만끽하며 섬을 한 바퀴 돈다. 해안선 길이는 총 4.2㎞, 대략 1시간 반 정도가 소요된다. 마라도는 섬 전체가 남북으로 긴 타원형으로 해안은 오랜 해풍의 영향으로 기암절벽을 이루고 있다. 백년초 등 난대성 해양 동식물이 풍부하고 경관이 아름다워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선착장에서 오른편으로 섬을 꼭 반 바퀴를 돌면 국토 최남단을 알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바로 뒤쪽에 자리한 마라도 등대는 1915년에 설치된 등대로 그림 같은 풍광을 뽐낸다. 배를 타고 마라도로 들어가는 시간은 40분 정도 소요되며, 보통 다음 배가 오기까지 한 시간 반 정도 체류하며 마라도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제주에 누구보다 사랑했던 사진작가 김영갑은 사진을 찍다 마음이 답답하면 이곳 마라도에서 며칠씩 묵으며 바람으로 묵을 때를 씻었다고 했다. 해풍에 묵은 때가 따스한 볕이 마음을 감싸안는다. 멀리 태평양의 너른 바다를 바라보니, 맑은 봄바람에 마음이 씻겨지는 느낌이다.

 

원문: 뉴스토마토

 

이강 여행작가 /뉴스토마토 여행문화전문위원

ghang@han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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