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다 나만 미쳤다고 해”...외로운 노인, 태극기를 들다
전체주의와 파쇼적 대중선동, 그리고 반공 이데올로기 ①
  • 정찬대 기자
  • 18.07.09 09:57
  • facebook twitter 카카오스토리 구글플러스
  • 글자크기
  • 글자크게
  • 글자작게
  • |
  • print
  • |
  • list
  • |
  • copy
태극기 집회는 무엇으로 이뤄져 있을까? 태극기 집회의 ‘성분’은 무엇으며, 어떤 신념으로 조직됐을까. 그들을 ‘극우 노인’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태극기 집회에 대한 안일한 인식의 단순함이다.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서 그 의미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본 글은 필자가 쓴 <‘변형된 전체주의’ 태극기 집회 - 민주사회를 위협하는 파쇼적 대중선동>이라는 제목의 소논문을 요약한 것이다. 태극기 집회 구성원들의 참여 동기, 그들이 가진 신념, 태극기 집회가 보여주는 특성과 사회적 의미에 대해 취재한 글을 두 편에 나눠 싣는다. <편집자> 


2017년 봄, 대한민국은 ‘촛불’과 ‘태극기’의 아우성 속에 있었다. 광장은 ‘혁명’과 ‘파쇼’가 함께 존재했고, 대중은 ‘선전’과 ‘선동’으로 갈리었다. 태극기 집회는 개인의 이익보다 집단의 이익을 강조하는 전체주의 폭민의 전형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개인이 집회의 주체로 인식되는 촛불집회와는 근본적인 차이점이다.  

태극기 집회 참가자의 상당수는 노년층으로 구분된다. 사회 약자와 빈곤층의 참여 비율도 높게 나타나고 있다. 박정희 신화에 빠져 있는 사람들, 전쟁을 겪은 노인 세대는 ‘애국’이라는 이름의 교조주의적 독단론에 쉽게 매몰됐다. 

보수집회 참자들을 그저 용돈이나 벌기 위해 동원된 관제데모꾼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태극기 집회에 대한 안일한 인식의 단순함이다. 그들의 정치적 신념은 거의 맹목적일만큼 강고하다. 또한 극우 반공에 대한 집착은 편집 수준으로 완고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부패한 보수정권의 홍위병을 자처하도록 했을까. 어떻게 선동되고, 어떻게 조직됐으며, 또 어떻게 맹신하게 됐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프레시안(최형락)


민주사회를 위협하는 존재 

제1차 촛불집회의 시작은 2016년 10월 29일 광화문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일주일 뒤인 11월 6일 맞불 집회 성격의 ‘미스바 구국기도회’가 서울역 광장에서 열렸다. 실제 ‘맞불 집회’로 불리던 보수집회는 얼마 뒤 ‘태극기 (애국)집회’로 명명됐다. 개신교 극우주의자들의 기도회로 시작된 집회는 보수단체들이 결합하면서 규모가 커졌다. 그리고 박근혜 전 대통령 해임이 결정된 2017년 3월 집회는 절정을 이룬다.  

보수집회를 특정 짓는 핵심어는 극우와 반공이다. 여기에 합리적 이성이 개입할 여지는 없다. 한나 아렌트는 과거 전체주의 운동에 대해 “매우 광신적”이라고 평했다.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 역시 이러한 측면에서 합리적 사고와 이성이 결여됐다. 지금도 이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 전 “계엄령을 선포했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반공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몇몇쯤 희생되어도 괜찮다는 것이 이들의 기본 인식이다. 수백만 명의 민간인을 학살한 이승만은 적화통일을 막은 국부(國父)이며, 개인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말살한 박정희는 가난을 딛고 산업화를 일군 영도자로 칭송되고 있다. 

이들에게 촛불혁명은 ‘김일성 장학생들’에 의한 정권 찬탈의 쿠데타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실제 집회 현장에서 마주한 많은 이들은 “문재인이 북한의 사주를 받은 빨갱이다. 김일성 장학생들이 국가기관을 모두 장악한 상태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불법 감금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에게는 이것이 마치 신념처럼 굳어있었다. 어떤 설득과 대화도 통하지 않았다. 

‘위대한’ 보수주의자로 불리는 칼 포퍼는 “열린사회는 전체주의와 대립되는 개인의 자유가 인정되는 사회이며, 여기서 개인의 자유는 다수의견과 다른 자신의 견해를 당당히 주장하고 펼칠 수 있는 사회”라고 규정했다. 다만, 포퍼는 그러기 위한 전제로 ‘비판적 논증’이 가능해야 한다고 믿었다. 전체주의는 논증이 필요 없다. 이미 맹목적이며 하나의 신념처럼 굳어있기 때문이다. 태극기 집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소외된 개인, 그리고 계급 배반 

“진보정책? 지들만 배불리고 있다. 절대 서민들에게 혜택 안 간다. 북한은 지주 것 뺏어서 토지든 재산이든 나눠줬다. 그런 북한이 지금 어떻게 됐나. 무상분배? 꿀단지 속에 꿀이 계속 있는 거 아니다. 나중에 다 망하는 것이다. 재벌해체까지 말하는데, 그러면 우리는 난민 된다. 젊은 사람들이 배고픈 시절 못 겪어봐서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이다. 이 나라 정말 큰일이다”(62세 여성 최모씨)

2016년 12월 겨울부터 매주 빠짐없이 태극기 집회에 나오고 있다는 한 여성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극빈층이다. 쪽방에서 생활하며 굶기도 일쑤라고 했다. 시위 도중 부러진 앞 이는 치료할 돈이 없이 그대로 방치했다. 그런 그에게 ‘왜 진보정당을 지지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재벌을 옹호하는 보수정당보다 서민정책을 내놓는 진보정당이 더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이유에서다. 그는 “그렇게 하면 국가 망한다. 젊은 사람들이 다 속고 있는데, 자기들 배만 불리지 절대 혜택 같은 거 없다”고 말했다. 전형적인 계급배반 현상(빈곤층이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현상)의 모습이었다. 그는 지난 6.13지방선거에서도 보수 후보를 찍었다고 했다. 

또 다른 참가자를 만났다. 그는 충남 서천에서 매주 토요일 오후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대한문을 찾았다. 벌써 2년째 이어온 열성이다. 78세 고령에 지칠 법도 하지만 “나라를 생각하면 집에만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생활보호 대상자인 그는 공과금이 밀려 가스가 중단됐다고 했다. 핸드폰 역시 정지된 상태였다. 6월 25일 한국전쟁 기념식 대한문 집회를 마치고 집에 가기 위해 1호선 열차를 타러 간다며 불편한 다리를 이끌었다. 그는 “젊은 사람이 문재인 하는 짓거리를 잘 봐야 한다”며 마지막까지 당부를 잊지 않았다. 

ⓒ프레시안(최형락)


‘외로운’ 노인, ‘태극기 집회’를 찾다 

태극기 집회에 참여하는 이들은 대부분 노년층이다. 한국전쟁의 참상을 겪었고, 지독하게 가난한 시절을 직접 체화했다. 1970년대 산업 자본주의의 역군이지만 적잖은 이들이 경제적·심리적 대비 없이 노년을 맞았다. 매년 노인 고독사가 증가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런 그들에게 태극기 집회는 매주 동무들과 만나는 모임과도 같다. 

서울 서대문구에 거주하는 김영익(가명·83)씨는 그런 점에서 태극기 집회가 특별하다. 그는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더 자주 대한문을 찾는다고 했다. “바람도 쐬고, 얘기도 하고, 사람들 만나니깐 서로 참여하는 것이다. 집에 있으면 답답하니까”라고 집회 참석 이유를 밝혔다. 

그는 “오가다 친구들도 만나고, 자주 보는 사람들과 얘기도 나눈다. 그냥 놀러오는 기분으로 심심하지 않고 좋다”고 말했다. 다만, 그 역시도 전쟁 세대인 까닭에 “미국 때문에 우리가 산 것을 알아야 한다. 다른 건 몰라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건 꼭 기억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가족 내 갈등과 단절  

태극기 집회는 세대 간 갈등은 물론 가족 내 갈등도 야기하고 있다. 최호영(가명·대학생·24)씨는 이른바 세월호 세대다. 책가방에는 노란 리본이 달려있다. 그런 그에게 박정희와 새마을운동 뱃지를 옷깃에 단 아버지는 도통 이해하기 어렵다. 아버지 최진철(가명)씨는 1954년생으로 1976년 유신헌법 반대투쟁을 하다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을 받았다. 젊은 시절 이른바 좌파였고, 박정희 독재정권에 대한 불만도 가득했다. 하지만 이후 삶에 치이면서 생활 정치와 멀어졌다. 그러던 2016년 12월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면서 보수로 완전히 돌아섰다. 나라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것이 이유였다.  

“나도 유신헌법 반대하며 데모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게 아니더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오랫동안 집권했지만, 김일성은 더 장기 집권했고, 정권 세습까지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 나라를 먹여 살린 분이다. 그런데 그런 분 딸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이 됐다. 그 분은 돈을 먹고 할 사람이 아니다. 친구들, 가족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했는데 나만 다 미쳤다고 한다. 세월호 사건도 그냥 해상 사고였다. 그걸 왜 국가가 책임져야 하나. 아들한테도 얘기했는데, 따지기만 하고 제대로 대화가 안 된다. 노인들이 괜히 떠드는 게 아니다. 젊은 사람들이 뭘 알고 얘기했으면 좋겠다”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에 거주하는 김은주(가명·77)씨는 국정교과서 문제로 24살 대학생 손녀와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어차피 대화가 안 통할 것을 안 그는 더 이상 정치나 이념문제로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그는 전교조가 젊은 학생들을 모두 세뇌시켰다고 믿고 있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을 지지했다던 그의 아들(50세)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처럼 태극기 집회에 참석하는 노년층과 비교적 진보적 성향을 지닌 자녀와의 이념 차는 가족 내 갈등으로 비화되며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김씨는 “좌파들이 가족까지 파괴시키고 있다”며 모든 책임을 진보정권 탓으로 돌렸다. 그는 매주 토요일 오후 태극기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집을 나선다. 가방에는 태극기와 성조기가 가지런히 포개져 있다.  

가짜뉴스, 그리고 선전 선동 

“선관위 강성노조 장악 불법대선으로 문재인 당선” “대한민국 국가 부채 사실상 2000조 육박 문 정권 1년 사이 뭐했기에 국가 채무 550조 늘었나” “문재인 남한 정보 USB에 담아 통째 넘겨” “문재인 외삼촌 북한 고위직 문재인 조종” 

태극기 집회 참석자들 사이에서 공유되고 있는 이른바 ‘가짜 뉴스’다. 특히 지난 5월 ‘판문점 선언’ 때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경제개발계획이 담긴 저장장치(USB)를 북에 건넨 것을 두고 온갖 낭설이 터져 나왔다. 서울 대한문 인근에서 만난 태극기 집회 참석자들은 “군사 정보를 넘겼다” “고액의 은행 정보가 담겨 있다”며 가짜 뉴스를 공유했다. 문제는 이렇게 공유된 메시지를 액면 그대로 믿는다는데 있다. 

6.25전쟁 기념식 태극기 집회에 참석한 한 여성(경기 과천·44)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선 나도 잠깐 오해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진실을 안다. 이런 사실을 알면 다른 사람들도 모두 집회에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언론이 좌파에 모두 장악돼 왜곡된 뉴스만 보도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비교적 젊은층에 속한 그녀에게는 노년층이 보인 ‘나라 걱정’보다 북한과 진보에 대한 혐오가 더욱 짙게 느껴졌다. 그는 판문점 선언과 관련 ‘북한과 마냥 대립할 수 없지 않느냐’는 물음에 “자유 민주주의하고 공산주의하고 어떻게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느냐”며 “그냥 이대로 지내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통일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내비친 것이다. 집회에 참여한 어르신들이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수용할 경우 북한과 충분히 함께할 수 있다고 한 것과는 대조를 보였다.

그는 또 광주5.18민주항쟁에 대해서도 ‘북한군 침투설’을 그대로 믿고 있었다. 그는 “북한이 다 그런 거다. 증거도 다 나오지 않았느냐”며 “지만원 박사가 사진까지 분석해 밝혀낸 사실”이라고 말했다. 지만원은 지난 2016년 7월 ‘5.18 북한특수군 침투’ 주장과 관련한 항소심에서 패소판결을 받은 바 있다. 이에 대해선 “김일성 장학생에 의해 사법부도 장악됐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증거가 다 있다. 조금만 알아보면 이 분(태극기 집회 어르신)들 말이 다 맞다”고 강변했다.

전체주의 운동은 지만원과 같은 극우보수 이념을 전달하는 메시아가 등장한다. ‘극우 논객’으로 알려진 조갑제, 정규재, 변희재 등은 이승만과 박정희를 신격화한 대표적인 인물로 이러한 운동이 대중선동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제공했다. 한나 아렌트는 저서 <전체주의의 기원>(한길사, 2006)에서 이 같은 현상을 “폭민과 엘리트의 일시적 동맹”이라고 꼬집었다. 또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이들의 동참은 전체주의 운동의 맹목적인 충성과 전체주의 정권에 대한 대중성을 담보한다고 말했다.  

커버리지 정찬대 기자(press@coverage.kr)

  

*본 글은 <프레시안>에 함께 게재되었습니다.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