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생활
[답사] 바다도시 부산, 12월에 떠나는 낭만여행
 
  • 이강
  • 15.12.10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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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이 갓 지나고 부산의 바닷가에서 한동안 지냈었다. 그때 청춘의 바다에서 나는 잠들지 못하고 아침 해가 뜰 때까지 기다렸다. 어느 해 겨울날. 바람만이 지키는 밤바다에서 나는 앞으로 살아가는 것이 궁금했다. 어둑한 백사장에는 사람 두엇이 겨우 얼굴을 맞대고 겨우 앉을 수 있을 작은 텐트가 바람에 흔들리며 깊은 밤을 지키고 있었다. 나는 텐트를 지키고 앉아 있던 그림자에 말했다.
 
“바람이 언제 잦아질까요. 저 파도가 언제 백사장 끝까지 밀어올까요?”
 
바람의 때와 물때를 묻자, 그림자가 말했다.
 
“바람은 언제고 불 테고, 파도는 밤새 바다를 밀어낼 거야. 바람과 파도를 두려워하는 건. 인생을 더 산 늙은이들의 몫이야. 젊은이는 아직 멀었어”

 

△바다도시 부산으로의 여행(사진=이강)

 

12월의 여행은 바람의 방향을 선택하는 것으로 결정되어진다. 동설을 동반한 북풍이 거세지기 전에 햇살의 잔영이 머무르는 남녘의 바다도시 부산의 훈풍을 맞으러 간다. 부산은 아무래도 햇살의 겨울을 나기에 좋은 도시다. 훈풍이 부는 그 겨울의 바다는 명경하여 여름의 하늘색을 그대로 머금고 있는 듯하다. 12월의 바다를 마주하면 거울에 비추는 내 얼굴을 바라보는 것처럼 성찰이 깊어진다. 한참 동안 시린 바다를 마주하는 순간마다 고백이 깃드는 이유다. 끝내 뱉어내지 못했던 말의 포말이 하얀 바다로 흩어진다.

 
12월에 바다를 마주하는 것이란
 
바다에서 파도를 기다리는 건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가만히 파도소리를 듣지만 얼마나 큰 파도가 밀려올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파도가 밀려와도 아이들은 요동하는 법이 없다. 언제나 바다 위 끝에서 파도를 기다리는 건 겁 없는 아이들이다. 부서지는 포말은 아이들의 웃음처럼 생그럽다. 큰 파도를 겁내지 않는 것도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바다를 두려워하지 않고 파도와 함께 춤을 추며 환호한다. 아이들은 맨발이 되는 것을 겁내지 않는다. 아이들은 온전히 바다에서 파도와 하나가 되어 논다. 노니는 아이들의 모습이 천연하여 걱정이 없다.

 

△부산 바다를 즐기는 여행객들(사진=이강)

바다를 바라보는 이들은 청춘남녀이다. 바닷가 모래사장을 거닐며 파도의 소리에 마음을 던지는 이들은 이제 사랑을 찾기 시작한 연인들이다. 큰 파도를 마음에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들도 젊은 청춘들이다. 청춘들은 바다를 두려워하지 않고 파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귓가를 간지럽히는 파도 소리에도 가슴이 설레며 심장의 박동이 뛰는 이들은 늘 이제 사랑을 시작한 청춘들이다.
 
해를 기다리는 이들은 이제는 다 커버린 어른들이다. 다 큰 어른들은 파도를 기다리지 않으며 파도와 한 걸음 멀리 있다. 어른들이 바다를 찾는 이유는 지는 해를 보기 위함이다. 짙은 놀이 잠긴 바다에서 오래도록 그 빛이 떠난 자리를 지키는 이들은 파도에 떠내려간 시간을 기억하는 어른들이다. 바다에서 노니는 아이들이 떠나고 사랑을 좇아 젊은이 모두 떠난 뒤에도 오래도록 바다를 떠나지 못하는 이들은 모두 다 커버린 어른들이다. 바다와 그 어떤 기약도 하지 못하는 어른들은 그 바다에서 파도가 잔잔해지기를 기다리며 다시 뜨는 해를 기다린다.
 
부산 영도 태종대 돌아 감천마을까지
 
부산역에 내리니 가장 눈에 띄는 것이 구릉으로 둘러싸인 도시의 풍경이다. 바다를 앞에 두고 낮은 구릉의 산들이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지형인데, 전쟁통에 바다의 바람을 피해 산 위에 올라 선 것이 집터가 된 셈이다. 전쟁의 난리통에도 햇살에 얼굴을 씻기우면 하루를 견딜 만했고, 가슴을 쓰담는 훈풍 한 자락이면 타향살이의 설움을 달랠 수가 있었다.

 

△태종대의 풍경(사진=이강)

 

바람의 방향을 따라 영도다리를 건너 옛 시절의 바다풍경이 여전한 태종대에 올라설 심사다. 벌써 오래전 영도의 바닷가에 금순이가 굳세게도 살았는데, 그게 모두 따스함 바닷바람 때문이었을 것이다. 훈풍이 부는 도시는 전쟁통에 갈피를 잃은 피난의 터로는 최적의 정처였으며, 사람들의 눈매가 매웁지가 않아 유쾌하고 자유로웠다.
 
영도 태종대로 길을 잡는다. 나이가 지긋한 어른들에게 부산 영도와, 영도 태종대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도 꼭 다녀온 것처럼 귀에 익숙하다. 태종대라는 이름은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이 삼국 통일을 이룬 후, 전국을 돌아보다가 이곳의 빼어난 해안 절경에 심취해 활쏘기를 즐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태종대는 영도의 남동쪽 끝에 위치하는 낮은 구릉으로 신선이 살았다하여 신선대(神仙臺)라고도 불리운다. 해안 절벽의 지형에 숲이 울창하고, 독특한 모양의 암석들이 푸르른 바다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입구에 오르니 순환관광열차인 다누비 열차를 기다리는 행렬이 길게 이어져 있다. 태종대를 둘러보는 방법은 한 시간여의 산책길을 따라 탁 트인 남해의 경관을 즐기는 방법과 이 열차를 이용하여 4.3㎞의 순환도로를 한 바퀴 둘러보는 방법이 있다. 열차를 이용하면 태종사와 영도등대, 전망대 등의 정류장에서 승하차하며 구석구석의 명소들을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어, 감천마을과 국제시장 등을 돌아본 전후로 일출과 일몰 코스로 여정을 잡는 것이 좋다. 조금 오르니 커다란 태종바위의 모습이 눈에 띈다. 한때 ‘자살바위’로 유명했던 신선암이 깎아지른 절벽 위에 우뚝 솟아있다. 한동안 삶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이들이 이 바위에 올라 몸을 던지기도 하였다.

 

△바다도시 부산의 야경(사진=이강)

 

태종사를 잠시 둘러보고 등대가 보이는 전망대 정류장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전망대에 서니 발 아래로 영도등대가 보이고, 오륙도가 손에 잡힐 듯이 가깝다. 맑은 날이면 먼 바다에 한 점으로 떠오른 일본 쓰시마섬(對馬島)을 조망할 수도 있다. 영도등대가 섬 남동부의 가파른 해안절벽 위에 서 있고 부근에 신선대바위·망부석이 있다. 태종대를 돌아본 후, 태종 무열왕의 팔준마가 물을 마셨다는 연못의 전설을 지닌 해변의 절경 감지자갈마당을 둘러보거나 지하 600m에서 끌어올린 식염온천인 태종대 온천에서 여행의 피로를 풀 수도 있다. 태종대에서 내려서 부산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남포동 골목과 감천동 마을로 길을 잡는다. 현재 남포동 골목에서는 크리스마스 축제가 열리고 있고, 감천마을은 따스한 겨울풍경을 그려내는 야경으로 아름다워 겨울여행의 낭만을 즐길 수 있다.

 

 

원문: 뉴스토마토

 

이강 여행작가 /뉴스토마토 여행문화전문위원

gh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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