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공이산
[칼럼] ‘3김 정치’ 이후 정당개혁 방향
3김의 정치병폐 ‘가산주의’ 탈피와 ‘선거전문가 정당’의 실질화
  • 우공이산
  • 15.06.19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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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역주의 타파’, ‘낡은 정치 청산’을 기치로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지만, 여전히 그는 ‘친노 수장’이란 그늘아래 있다. 서거 6주기가 지났지만, ‘계파’에 갇힌 채 ‘망각의 강’ 레테(Lethe)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그토록 염원했던 정당·정치 개혁의 바람 역시, 30년 전 시작된 ‘3김(金) 정치’라는 거대한 태풍의 영향권 안에 맴돌고 있다. ‘패거리 정치’의 추태를 비판한 노 전 대통령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새정치민주연합 최대 계파인 ‘친노계’의 영수(領袖)를 맡고 있다.

 

얼마 전 새정치연합은 친노 대 비노의 극단적 대결 끝에 혁신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당내 긴장감이 팽배한 상황에서 혁신위는 친노와 호남, 그리고 486으로 대변되는 ‘3김 정치’의 잔재인 △계파주의 △지역주의 △가산(家産)주의(patrimonialism)를 청산하고 당을 개혁해야 하는 중대 과제를 떠안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좌)과 김영삼 전 대통령 모습.

‘양김’의 분열과 정치의 퇴보

 

1980년대 ‘3김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 뒤 3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들의 정치 행태는 다양한 형태로 답습되고 있다.

 

김영삼-김대중은 1983년 서울·워싱턴 선언과 85년 2·12총선 승리의 성과를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87년 대선에서 분열했다. 그리고 결국 패배했다. 양김을 분열시키고, 지역주의를 동원한 전두환 정권의 정치적 계산에 넘어간 것이다. 양김의 분열은 크게 대한민국을 지역감정으로 분열시키는 결과를 가져왔고, 안으로는 민주화운동세력의 내부 균열을 불러왔다.

 

87년 대선과 88년 총선의 중대한 역사적 평가는 하나의 대오를 이뤄 투쟁해온 민주화운동 진영이 영남-호남, 김영삼-김대중 세력으로 분열됐음을 분명하게 말해준다. 이로 인해 민주개혁세력이 영남을 필두로 대선과 총선을 통해 주도권을 획득할 기회까지 잃었다. 한국사회의 질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기회를 상실케 했다는 점에서 김영삼-김대중 적전분열(敵前分裂)은 반민특위 해산과 비교해도 지나침이 없다.

 

87년 대선에서 만약 ‘김영삼-김대중-재야’의 연합민주세력이 집권했다면 해방 후 그리고 4월 혁명 뒤 이루지 못하고 유예된 민주주의 개혁과 남북관계 개선에 상당한 진전이 있었을 것이란 부질없는 미련을 가져본다.

 

연합민주세력 분열 뒤 김영삼, 김종필은 영남지역 기반이 흔들리자 1990년 집권여당인 민정당과 합당(3당 합당)함으로써 군사정권과 결탁했다. 그리고 김대중은 97년 내각제추진 ‘DJP연합’을 결성함으로써 정치적 야합을 선택했다.

 

‘3김’이 이끈 87년 체제는 권위적 통치, 보스정치, 금권정치, 줄서기 정치 등의 후진적 정치 문화를 형성했다. 아울러 민주개혁세력의 약화로 냉전의식의 토양이 될 정치지형이 유지됐고, 기득권 세력에게 유리한 지역 분열구도 또한 확고해졌다.

 

△(사진출처=김영삼민주센터)

‘3김 정치’가 한국정치에 미친 영향

 

87년 체제에서 3김이 군부 개혁과 권위주의, 비리청산, 선거경쟁의 제도화, 평화적 정권교체 등을 이룬 점은 분명 높이 평가받는다. 하지만 분열적 지역주의, 정당의 사당화, 부정부패의 온존 등 또 다른 악(惡)을 양산한 점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3김이 주도하는 정치와 정당은 △주권 국민을 경시하는 반민주성 △국민통합을 저해하는 지역주의 △공공성을 파괴하는 기득권 집단이기주의 △정당내부 민주주의를 말살하는 사당적 성격을 가져왔다. 특히, 3김에 의한 ‘사당 정치’는 공공성 정치의 발전을 저해했고, 신자유주의가 도입된 이후 이러한 공공성의 정치는 더더욱 실종됐다.

 

3김 정치는 지금까지도 가산주의, 지역주의 정치, 정당 내 특정계파에 의한 비민주적 의사결정, 나눠 먹기식 공천제, 전국적 정책의제보다 지역이익 챙기기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가운데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전근대적인 ‘가산(家産)주의(patrimonialism)’ 정치다.

 

가산주의란 측근을 중심으로 정당과 파벌을 운영하면서 충성에 대한 대가로 복지를 책임지는 정치 행태를 말한다. 김영삼·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은 과거 권위주의 체제와 싸우면서도 조직의 보존을 위해 군사독재자들이 행한 가신주의, 비밀주의, 조직 내부의 권위주의 관행과 행태 등을 그대로 모방했다.

 

민주화 이후에도 이러한 가산주의 행태는 가신정치, 친·인척주의, 연고주의, 지역주의, 인치주의, 공공영역의 사유화 등의 모습으로 한국 정치에 내장됐다. 그 결과 양김 정부는 임기 말기에 가산주의적 부정부패로 지지율이 추락하면서 통치 불능의 식물정부가 됐다. 이 가산주의 정치행태가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음이 새정치연합의 친노 대 비노 대결이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비노 세력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과 서거 후 17대, 18대, 19대 3대 국회에 걸쳐 친노와 486세력이 패권에 충성하면서 당을 장악하고, 공천을 획득했다고 주장한다. 당·대권 주자들이 권력 유지를 위해 측근 가신 그룹을 가동하고 전국적인 공적이익보다 지역적, 개인적 이익을 먼저 챙기는 정치문화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진출처=김대중도서관)

‘3김 시대’ 이후 정당개혁 방향

 

‘3김 정치’의 잔재인 지역주의, 정당의 사당적 지배구조, 제왕적 대통령제 등 낡은 정치의 끝물을 이제 비워낼 때다. 새로운 정치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정당개혁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정당은 시민사회와 국가, 그리고 국가 내의 행정부와 입법부를 연결시켜주는 매개체로서의 기능을 해야 한다. 3김 정치의 유물이라고 할 수 있는 1인 보스 중심의 비민주적 지배구조를 민주화하고, 군부 권위주의 체제 및 민주화 투쟁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대중동원형 정당조직을 시대변화에 맞게 재편성하는 문제, 즉 고비용 정치구조를 청산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새정치연합은 지구당의 부활 등 유럽식 ‘대중 조직형 정당’을 고민하기보다, 미디어나 인터넷 선거운동 시대에 적응하기 위한 미국식 ‘선거전문가 정당’의 실질화를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선거전문가 정당이란 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해 정책 개발에 치중하는 소규모의 경량급 정당을 의미한다. 정당지도자와 원내의원들, 공직진출을 희망하는 예비 엘리트 집단, 각 정책 분야별로 전문적 지식을 갖춘 전문가들, 그 정당을 지지하는 이익집단이나 시민단체의 대표들, 그리고 여론조사 전문가와 대중매체 활용 전문가들이 중심이 되어 당을 운영하는 형태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기득권을 내려놓는 자세가 필요하다.

 

오늘날 같은 탈산업화 시대는 사회계층의 다원화와 대중화·원자화가 급격하게 이뤄진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와 같이 동질적 정치목표를 공유하며 당비를 내는 책임당원을 조직적으로 확보하는 것은 지극히 비현실적이다.

 

국민경선제가 공천의 한 방법으로 자리 잡은 이 시점에 이념적·정책적 정체성을 결여한 채 선거 때만 동원되는 ‘반짝 당원’이 대부분인 ‘대중동원형 정당’으로 회귀해선 안 된다는 지적은 이런 이유에서다. 지역 균열을 약화하고 새로운 균열, 즉 세대 간 문화적 균열을 중심으로 유권자들을 재편성하기 위해서도 지지자 중심의 ‘선거전문가 정당’의 한국식 실제적 적용이 필요하다.

 

우공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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