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걸
[NGO 칼럼] 더 이상 죽이지도, 죽지도 말아요
‘슈퍼甲’ 횡포에 맞서 ‘멀티乙’로 연대해야죠!
  • 안진걸
  • 15.11.1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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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GS25의 한 편의점주가 가맹본부의 횡포와 생활고를 겪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실이 뒤늦게 <경향신문> 보도(11월2일자 단독보도)를 통해 알려졌습니다. 많은 편의점주와 가맹점주들이 이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고 빈곤과 격무에 시달리다 과로사하는 현실에 깊은 슬픔과 분노를 감출 수 없습니다.

 

2012년 편의점을 오픈해 24시간을 꼬박 운영해온 해당 점주는 월 최저임금 수준으로 관리비용과 생계를 책임져오다, 최근에는 GS25 가맹본부에 1일 매출조차 송금 못하는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가맹본부는 송금이 지연될 경우 보통 10%의 이자를 물리곤 합니다. 여기에 큰 규모의 편의점까지 인근에 들어서면서 생활은 더욱 어려워졌고, 이에 폐업을 추진하고자 했지만 가맹본부 본사가 요구한 과다한 위약금 때문에 폐점조차 못하고 고뇌하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버리고 만 것입니다.

 

고인의 유서에도 GS25의 가맹본부인 GS리테일 측에 대한 울분이 고스란히 담겨있었습니다. 부부가 함께 운영한 편의점의 한 달 수익은 4인 가구 최저생계비(166만8329원) 수준이었습니다. 큰 부자는 아니더라도 남들에게 손 안 벌리고, 식구들 건사할 정도는 될 것이라 믿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가맹본부의 ‘고수익 보장’ 약속을 철석같이 믿고 모든 것을 투자했기에 이에 대한 원망과 상실감도 컸을 것입니다.

 

편의점의 모든 매출은 하루 단위로 본사에 송금하고, 가맹본부에서 공급하는 모든 물품 값을 제한 뒤 한 달 총 매출의 35%를 본사가 수수료로 떼어가는 구조로 운영됩니다. 이 때문에 65%의 매출이익에서 임대료와 인건비 등 각종 비용을 제하고 나면 편의점주가 쥐는 수익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상황이 이러니 편의점주의 손해나 낮은 수익에도 불구하고 가맹본부는 늘어난 점포만큼 이득을 보는 ‘고약한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법안 개정됐지만…또 한명의 안타까운 죽음

 

사실 편의점주들의 열악한 상황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지난 2013년 3월, 경남 거제시에서 CU편의점을 운영하던 청년 편의점주가 자신의 점포에서 번개탄을 피워 자살했고, 같은 달 부산 수영구의 CU편의점주도 광안대교에서 투신해 자살했습니다. 경기 용인시 기흥구에서는 세븐일레븐 편의점주가 자택에서 번개탄을 피운 채 자살했으며, 같은 해 5월 또 다시 같은 지역에서 CU편의점주가 수천만 원의 폐점 위약금 문제로 본사 직원과 언쟁을 벌인 뒤 수면유도제 40알을 삼켜 고인이 됐습니다.

 

그간 많은 편의점주들이 위태로운 삶의 위기를 겪고 버티면서, 또한 투쟁하면서 2013년 7월 가맹사업법 일부가 개정됐고, 가맹본부의 횡포도 일부 개선됐습니다. 편의점주가 가맹본부와 직접 교섭할 수 있는 단체교섭권도 법안개정 이후 보장됐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가 많다는 것이 이번 사건을 통해 확인되었습니다. 가맹점주들의 열악한 환경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면서 법안까지 개정됐지만, 문제 해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입니다.

 

이번 사건은 재벌‧대기업의 탐욕과 독식이 비호되는 우리 사회 모순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즉, 대기업의 불공정한 행위와 유통구조 자체의 개선 없이는 편의점주의 권리보장도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한 편의점주의 안타까운 죽음이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불공정위원회로 전락한 공정위

 

전국의 편의점들은 갈수록 늘어나 3만개를 육박하고 있고, 프랜차이즈 가맹점 모두를 합하면 가맹본부는 3천800여개, 가맹점은 50만개에 달하며, 프랜차이즈 가맹점 상시 근무자는 14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2013년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집계) 가장 많은 편의점을 보유하고 있는 GS그룹의 GS25의 경우 가맹점만 8천200여개에 달하며, 매출액은 4조9천583억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기업 편의점의 총 매출은 무려 12조에 이른다고 합니다.(2014년 기준)

 

허나 재벌·대기업 가맹본부의 불공정행위와 횡포는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으며, 가맹본부만 수익을 독차지하는 근본적인 구조 역시 개선되지 않아 비극적인 사태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공정위는 지난 10월, 참여연대가 2012년 신고한 훼미리마트(현 CU), 세븐일레븐(롯데그룹)에 대한 불공정행위 고발 건에 대해 무려 3년의 시간을 끈 뒤 무혐의 결정을 내렸습니다. 상황이 이러니 공정위가 공정거래위원회가 아닌 불공정거래위원회, 재벌대기업비호위원회라는 세간의 조롱과 비판을 받는 것입니다.

 

편의점주들이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의 최저임금도 미지급할 정도로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고(편의점주 본인도 최저임금 안팎의 수익에 머물고 있음), 슈퍼(Super) 갑들의 다종다양한 횡포에 매일처럼 시달리고 있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공정위가 재벌‧대기업에 면죄부를 준 것은 현 정부의 경제 정책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박근혜 정권은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을 완전히 폐기하고, 오로지 이들에게 특혜와 편향으로 경제기조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갑을병’ 모두가 상생하는 길 열어야

 

이제 방법이 없습니다. ‘재벌 천국, 노동-중소상공인 지옥’을 만들고 있는 박근혜 정권과 ‘슈퍼 갑’들의 횡포에 맞서 ‘을’들이 뭉치고 연대해야 합니다. 바로 ‘멀티(Multi) 을’이 되자는 것입니다. 전국의 민초들이, ‘을’들이 한목소리로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 더 구체적으로 재벌‧대기업의 탐욕과 독식체제를 거부하고, ‘함께 사는 대한민국’을 외치고 투쟁한다면 더디지만 분명 변화는 찾아올 것입니다.

 

여러 시민사회단체와 경제민주화운동단체, 그리고 뜻있는 야당이 힘을 합쳐 대기업 가맹본부의 횡포와 불법·불공정행위를 신고하고, 가맹점주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투쟁한 결과 일부 제도개선이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허위과장 정보를 통한 가맹본부의 편의점주 유치, 과도한 가맹금 수취, 편의점의 경우 35%나 되는 수수료(로열티) 폭리, 중도 해지 위약금 등의 문제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은 채 그 심각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가맹금은 하향 조정하고, 위약금은 원칙적으로 금지하며, 가맹본부의 수수료율은 대폭 낮춰야 합니다. 수수료가 낮춰지면 편의점주의 이익도 늘어나고, 편의점 노동자들의 임금 역시 올라갈 수 있습니다. ‘갑-을’ 뿐만 아니라 ‘갑-을-병’ 모두가 살 수 있는 길이며, 이것이 바로 경제민주화와 상생 정책이 가져오는 중요한 변화입니다.

 

이제는 전국의 ‘을’들이 더욱 ‘멀티 을’이 되어 연대하고 단결해나가야 합니다. 또한 국회는 전국의 편의점주‧가맹점주들을 위한 가맹사업법 추가 개정에 적극 나서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공정위의 거듭된 직무유기를 개선하고, 견제할 수 있도록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반드시 처리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촉구하고 호소합니다. 더 이상 죽이지도 말되, 또한 죽지도 말자고…. 비참하게 죽임을 당해서도, 스스로 생을 포기해서도 안 됩니다. 한 평생 행복하게 살 권리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경제민주화전국네트워크 공동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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