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지기
[칼럼] 쪽감나무 ‘기적이’의 사연
‘내 아무렴 기름 발라 불태워진 너만 할까’
  • 수필지기 칼럼
  • 15.05.21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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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하우스’라 명명된 우리 집에는 잔디 깔린 앞마당과 나무 우거진 뒤뜰, 먹을거리 가득한 텃밭이 있다. 이 글만 보면 누구나 ‘우아’하고 감탄할만한, 적어도 도시 사람 모두가 동경하고 꿈꾸는 그런 집일는지 모르겠다.

 

실은 이곳은 단순한 가정집이 아닌 공식명칭 ‘제주 농가형 민박집’. 즉, 나의 영업장이자 우리가족의 보금자리, 내 집인데 내 집이 아닌듯한 그런 곳이다. 그래서 게으름피지 못하고 열심히 관리해야 하는, 덕분에 자타공인 늘 예쁜 마당과 정원을 뽐내고 있다.

 

이곳의 나무는 100년도 넘은 이 집의 역사와 함께 이 터에 긴 세월을 뿌리박고 살아온 녀석들이 대부분이다. 우리보다도 훨씬 주인장의 카리스마를 풍기는…. 어쩜 그들이 진짜 주인인지도 모르겠다.

 

이들 가운데 우리가족뿐만 아니라 온 마을사람들의 애틋함이 된 나무 한 그루가 있다. 애칭 ‘기적이’. 처음 이사 왔을 때 유난히 눈에 거슬렸던 녀석으로 옛 주인은 병들어서 기름 발라 태워버렸다며 뽑아버리라고까지 했다. 단지 땅에 박혀 있을 뿐 군데군데 잘리고 검게 태워진 게 마치 시커먼 장작떼기 같았던 녀석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아주 가느다란 새 가지 몇 가닥이 돋고 있는 것이 아닌가.

 

풀 한 포기, 돌멩이 한 개조차 소중하고 애틋했던 그 시절,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기적’을 기대하며 흙도 다져주고, 주변정리도 해주었다. 그리고 지날 때마다 ‘힘내!’라고 말도 걸어줬다. 그렇게 시간은 걸음마도 못하던 첫째 아이가 뛰어다니다 못해 슈퍼맨이 되어, 온 집과 마당을 날아다닐 만큼 흘렀다.

 

어느 날 문득 쳐다본 쪽감나무에는 적었지만 하얀 감꽃이 예쁘게 피어 있었고, 그해 가을 주홍빛깔의 예쁜 열매도 안겨주었다. ‘아, 살았구나’라고 인식한 순간, 전율이 흐를 만큼 큰 감동이었고, 주홍감들은 내가 해준 노력에 비해 너무나 과분한 대가였다. 지난해에는 가는 가지마다 빈틈이 없을 정도로 빽빽이 감이 열렸다.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딱 맞는 표현일 만큼.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이 된 불태워진 쪽감나무 ‘기적이’. 나는 어느새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압박감이 느껴질 때나 화가 날 때, 그리고 심한 방황이 찾아올 때면 ‘기적이’에게 가는 습관이 생겼다. 마치 ‘포기하지 마! 날 봐, 시간은 흐르고 다시 꽃은 피잖아’라고 말하고 있는 듯한, ‘기적이’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나에게 큰 위로가 되고 힐링이 된다.

 

이곳을 다녀간 적이 있고, 기적이의 스토리를 아는 손님들 중 간혹 기적이의 안부를 묻는 전화가 온다. 어쩌면 그날은 그에게 무척 힘든 날이었거나, 아마 그도 기적이를 생각하며 다시 힘을 냈을지도 모르겠다.

 

한 날, 옆집 어르신이 기적이를 보며 말씀하셨다. “이 동네 사람들 모두가 이 쪽감을 얻어다가 옷을 염색해 입고, 일하러 다녔어. 다시 살아줘서 고맙네”라고. 감물 염색은 옷감을 질기게 하고, 시원하게 해준다고 한다.

 

소문을 듣고 또 다른 어르신이 찾아오셨다. “정말로 살았네! 이 쪽감으로 우리 어망(어머니의 제주방언)이 내 옷 염색해 주셨어”. 그랬다. 기적이는 이 집과 이 마을의 역사이자 마을 사람들의 추억이고 그리움이었다.

 

살아줘서, 그리고 존재해줘서 고마운 ‘기적이’가 있는 한 미안해서라도 삶에서 포기라는 단어는 쓰지 않을 듯싶다. 내 아무리 힘든들 기름 발라 불태워진 너만 할까. 고맙다, 기적아! 앞으로도 오래오래 우리 곁에서 추억이 되고, 용기가 되며, 희망이 되어다오.

 

 

2015년 5월 제주 사는 수필지기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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