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지기
[칼럼] 여행에 대한 생각
‘당신에게 여행이란 무엇입니까?’
  • 수필지기
  • 15.06.04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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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수필하우스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단어는 무엇일까? 많은 의견들이 있겠지만, 나의 리스트 상위권에는 ‘여행’이란 단어가 차지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꿈이 되고, 동경이 되는, 그리고 행복이 되며, 휴식이 되는 여행.

 

‘세상을 향한’ 나의 두드림은 20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학생 반, 사회인 반의 애매한 신분이었을 때, 즉 경제적·시간적 여유도 부족했을 때 나는 떠나기 시작했다.

 

‘궁핍한 여행이 제 맛이지!’라는 지극히 자기합리화적인 철학을 내세우며, 조금의 경비만 모아지면 어디론가 떠나곤 했다. 무거운 배낭, 허름한 숙소 그리고 고생을 동반했지만, 돌아오면 늘 다음 여행을 준비하며 일상에 충실했던 것 같다.

 

그렇게 20대 중반부터 시작된 나의 여행은 결혼과 육아가 시작되기 전까지 15년 동안 계속됐고, 그 사이 30개국과 100여개 도시를 다니며, 다른 세상, 다른 모습, 또 다른 나와 마주했다.

 

적지 않은 곳을 다니면서 이제는 여행이 무엇인지도 알법한데, 여전히 난 여행을 모른다. 한 마디로 정의할 수도 없다. 내 삶의 중요한 에너지임에는 분명하지만, 설렘과 흥분은 매번 다른 느낌으로 찾아온다. 그것이 바로 ‘여행의 중독성’인가도 모르겠다.

 

육아로 자유를 박탈당한 지금은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란 후에 함께 여기저기 떠나는 ‘제2의 여행 전성시대’를 꿈꾸고 있다. 정신없는 육아에 지쳐 나의 영혼마저 상실될 것 같은 그런 날, 이 꿈이 나의 이성을 붙잡아주기도, 인내심을 연장시켜 주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나에게 있어 여행이란 삶을 살아가게 해주는 ‘원동력’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 제주도의 작은 어촌마을 종달리에서 여행객들이 묵어가는 민박집을 운영하고 있다. 어느 날 문득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여행이란 무엇일까?’가 궁금해졌다. 그리하여 ‘당신에게 여행이란 무엇입니까?’라는 제목의 노트를 만들어 카페 테이블 위에 놓아뒀다. 시간은 흐르고 차츰 노트에 적힌 여행기도 늘어갔다. 오늘은 그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여행이란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또 다른 타인으로 인한 삶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것. 또 내 인생을 위한 내일을 살 수 있을 것 같아 행복하게 느껴지는 것”

 

“인생에서 힘들 때 스트레스를 받을 때, ‘멍’ 때릴 때, 춥고 배고프고 다리 아프고 그럴 때 생각나는 것. 다른 기억으로 채워도 다시 리필 되는 것처럼….”

 

“여행은 성장통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고 그 후에 더 성숙해지듯, 여행도 마찬가지로 막상 부딪혀봐야 고통과 즐거움을 알고 한 뼘 더 성숙해질 수 있지 않을까?”

 

“여행은, 특히 모녀가 함께하는 여행은, 어린 시절 엄마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던 철부지 어린이로 돌아가서 서로가 더 친밀해지는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세상 무엇보다 귀중한 시간. 꼭 엄마와 단둘이 여행하는 시간을 가져보길”

 

“여행이란 나를 찾게 되는 시간. 사랑하는 사람과 교감하는 시간.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소중한 것인지를 생각해 보는 시간. 쉬는 시간. 자연과 호흡하는 시간. 익숙한 이들과 떨어지는 시간.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는 시간. 그냥 시간이 이대로 멈춰버렸으면….”

 

“나는 지금 인생의 어느 능선을 넘고 있는 것일까”

 

“20대의 마지막 나날이 너무나 힘들어 떠나오게 된 제주, 좋은 경치와 공기에 에너지까지 받아 내일이면 힘내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여전히 문제는 풀리지 않고 응어리진 채로 남아 있지만, 그래도 여행 전보다 용기 내어 그 문제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여행이란 바람이다. 내 몸 한구석에 바람 들어 날아온 곳, 4월의 제주는 한동안 바람으로 기억 되겠지. 나는 지금 바람 속을 걷는다”

 

“듣기만 해도 설레는 단어 ‘여행’. 나를 찾는 시간, 나와 대화하고 자연과 교감하며 하늘도 바라보고 햇살도 느낀다. 바람도, 기분도 좋은 여행은 나를 사랑하는 한 가지 방법”

 

“많은 고난과 역경이 있었던 지난날, 이번 제주도 여행은 나에게 위안과 희망이다“

 

“여행이란 돌아갈 곳과 떠나온 곳을 그리워하고 소중하게 여기게 해주는 시간과 기회”

 

노트에 어느 하나 공감 가지 않는 ‘여행’이 없다. 난해한 듯 간단한 듯, 슬픈 듯 기쁜 듯 이어지는 것을 보니 여행도 ‘삶’인가 보다.

 

난 여전히 여행을 정의할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 아이들에게도 배낭 메고 운동화 신겨 세상 밖으로 내보낼 것이란 점이다. 직접 발로 걸으며 느낀 그것이야 말로 삶의 가장 진실된 배움이자, 큰 힘이란 것을 나는 확신하고 있기에….

 

 

 

제주 사는 수필지기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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