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노무현은 ‘NLL포기’ 아닌 ‘평화협력지대’ 꿈꿨다
좌절된 노무현의 꿈, 정쟁에 밀려 ‘NLL포기’만 남다
  • 정찬대 기자
  • 13.07.0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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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공개됐다. 그런데 새누리당이 그렇게 자신하며 확인했다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포기’나 ‘주권포기’ 등의 발언은 찾아볼 수 없었다. 새누리당은 그제 서야 ‘문맥상 NLL포기’라며 한발 물러섰다.

 

새누리당이 코너에 몰릴 때면 국면 전환용으로 활용했던 ‘조커’가 공개되면서 정국은 벌집을 쑤셔놓은 듯 어지럽다. 급기야 남북정상회담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으로서 회담 전반을 총괄했던 민주당 문재인 의원은 국회의원직까지 내걸며 원문 공개를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마친 노 전 대통령은 NLL문제와 관련해 “평화와 경제협력 차원에서 발상을 전환해 접근했다”고 밝힌바 있다. 이에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는 절묘하고 뛰어난 아이디어”라고 높이 평가했다.

 

그렇다면 두 전직 대통령이 이렇듯 극찬한 이유는 무엇일까? 해답은 이번에 공개된 노 전 대통령의 NLL대화록에서 찾을 수 있다. NLL대화록의 핵심은 ‘NLL포기’가 아닌 ‘서해평화협력지대’에 있다. 노 전 대통령도 대화록에서 “안보군사 지도 위에다 평화경제 지도를 크게 덮자”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군사 분쟁지역인 NLL을 남북 경제협력 지대로 묶어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물론 그 중심에는 평화와 경제가 공존하는 가치가 담겨 있다.

 

공동 어로도 만들고 한강하구를 남북이 함께 개발하며 나아가 인천·해주 전체를 엮어서 공동 경제구역을 구성해 마음대로 통항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노 전 대통령의 NLL에 대한 구상이었다.

 

서해북방한계선인 NLL은 ‘서해안의 화약고’로 불린다. 그만큼 남북 간 충돌 위험이 내재된 곳이다. 1953년 정전협정 직후 마크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에 의해 일방적으로 그어진 NLL은 군사분계선의 의미보다는 이 이상 넘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로 그어진 경계선이다. 이런 태생적 한계 때문에 그간 분쟁이 끊이질 않았다.

 

지난 1999년 발생한 연평해전으로 우리 해군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당했다. 또 2002년 서해교전 때도 우리군 6명이 사망하고 19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특히 2010년 3월 발발한 천안함 침몰사태로 우리군 40여명이 사망, 실종 당하기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절묘하고 뛰어난 아이디어”라고 치켜세울 만큼 혁신적인 안이었지만 5년이 지난 지금 노 전 대통령은 ‘이적행위를 한 대통령’으로 낙인찍혔다.

 

김정일 위원장의 생각에 동의한다는 발언이나 미국에 대한 패권주의적 언급은 NLL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적 수사에 불과했지만 이는 중요치 않았다. 결국 ‘평화협력지대’는 사라지고 ‘NLL포기’만 남은 것이다.

 

‘프레임 이론’을 정립한 미국의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자신의 저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상대방의 프레임을 공격하는 순간, 그들의 생각이 바로 공론의 중심이 돼 버린다”고 말했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는 순간 사람들은 이미 코끼리를 생각하게 된다. ‘NLL포기 발언’도 이와 마찬가지다. NLL포기라는 발언은 없었지만 새누리당은 그간 “NLL 포기 발언을 확인했다”, “노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 “사실상 주권을 포기한 대통령”이라고 몰아세웠다.

 

결국 대화록이 공개됐고, ‘NLL포기’ 발언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여전히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을 둘러싼 논쟁과 해석은 분분하다. ‘NLL대화록’에서 사람들은 이미 ‘NLL포기’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씁쓸한 생각마저 든다.

 

정찬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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