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또 다시 ‘철 지난’ 북풍인가
신공안정치 광풍에 정국이슈는 ‘잠식’
  • 정찬대 기자
  • 13.12.10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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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주간의 모든 뉴스는 북한이 잠식했다. 북풍한설에 정국 이슈가 모두 묻히면서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북풍’(北風)에 요동쳤다.

 

‘장성택 실각’의 핵심 골자는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이 최근 실각했고, 이에 따라 북한의 권력투쟁이 본격화되면서 당분간 남북관계 역시 개선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정성택 측근인사의 공개처형’ 사실은 우리의 말초신경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북한의 동향파악은 분단국가인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뉴스임에 분명하다. 특히 온건파의 숙청과 강경파는 득세는 또 다른 남북긴장을 불러올 수 있다는 측면에서 주요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정원이 흘린 ‘장성택 실각설’을 놓고 의견이 분분한 이유는 왜일까.

 

더욱이 국방부에 관련 정부를 전하기도 전에 서둘러 국회에 대면보고를 할 만큼 긴급을 요하는 사안인가에 대해서도 의문점이 든다. 국정원은 한발 나아가 대면보고와 함께 이메일을 통해 언론에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기업 홍보실이냐”는 비아냥도 들린다.

 

국정원이 정보를 흘렸을 당시는 그저 ‘설’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그 진정성을 놓고선 의구심을 자아낸다. 설익은 정보를 여과 없이 언론에 공개했다는 지적이다. 이쯤 되면 ‘철 지난 북풍’이란 세간의 비판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국정원을 비롯한 관계 부처는 대북사안을 놓고 엇박자를 보였다. 이와 관련해 군 장성 출신인 민주당 백군기 의원은 “국민의 안보와 직결된 정보를 발표할 때는 적어도 정부기관이 입이라도 맞춰 혼란을 없애야 한다”며 “정부기관이 안보불안을 조장한 셈”이라고 질타했다.

 

국정원이 ‘장성택 실각 및 측근인사 공개처형’에 대해 국회 긴급대면보고를 한 날을 보면 참으로 공교롭다.

 

당시는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자로 지목된 채모 군의 개인정보가 불법 열람·유출되는 과정에서 청와대 행정관이 직접 관여됐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청와대 배후설’이 제기되는 등 파문이 확산되던 시점이다. 청와대는 해당 행정관을 직위해제했다.

 

전날 청와대는 ‘4자 회담’ 도중 황찬현 감사원장, 김진태 검찰총장,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자에 대한 임명을 강행하면서 꽁꽁 언 정국에 또 다시 찬물을 끼얹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러나 ‘청와대 배후설’도 ‘불도저식 밀어붙이기 인사’도 이내 ‘북풍’에 휩쓸려갔다.

 

여야 지도부는 장성택이 실각됐다는 국정원 보고가 있던 날 막판 진통 끝에 ‘4자 회담’의 최종 합의문을 도출했다. 국정원개혁특위 구성과 관련 위원장은 민주당 몫으로 돌아갔고, 특위는 입법권을 갖게 됐다. 민주당은 국정원의 국내 정보파트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국정원 입장에서 보면 여러모로 뭔가(?) 해야 할 시점인 셈이다.

 

4일자 주요 일간지 일면기사는 ‘장성택 실각’으로 도배됐다. 종합편성채널(종편)을 비롯한 보수언론은 국정원발 보도를 세세히 보도하는데 바빴고, 일부 북한 전문가의 멘트를 통해 ‘안보위기’를 조장했다.

 

국정원에 이어 김관진 국방장관은 북한의 대남도발 가능성을 언급했다. 김 장관은 4일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에서 “(장성택 실각은) 대남 도발로 이어질 수도 있다”며 “국지도발과 전면전에 동시 대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여기에 국정원은 6일 열린 국회 정보위 전체회의에서 여야 간사에게 북한 동향을 보고하면서 “북한이 서해북방한계선(NLL) 인근에 공격형 헬기 60여대를 남하해 배치하고 서북도서에 다련장포 200문을 집중 배치했다”고 분위기를 몰아갔다.

 

하지만 정부기관의 이 같은 호들갑과 일부 보수언론의 ‘안보 의제 설정’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잠잠했다. 장성택 측근인사 2명이 처형된 11월 중하순 이후 지금까지 북한은 특이사항을 보이지 않고 있다.

 

국회 국방위 소속 민주당 이석현 의원은 ‘장성택 실각’과 관련해 “국정원이 서둘러 호들갑을 떨었다”고 비판한 뒤 “온 나라가 깜짝 놀랄 일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장성택 실각과 맞물리면서 안보에 무슨 큰 변수가 있는 것처럼 생각되고 있는데, 장성택은 그간 여러 번 실각 당했던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국정원이 서둘러 언론플레이를 한 것이라는 의심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장성택은 1978년 동평양에 있는 외교부 초대소에서 외교부 간부들과 매주 연회를 베풀다 강선제강소로 쫓겨난 적이 있다. 또한 2002년 1월에는 국가예산을 개인목적으로 사용해 아내 김경희(김정은의 고모)와 함께 강원도로 추방됐다. 권력의 2인자이지만 그만큼 권력의 중심에서 종종 쫓겨난 경험이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신공안정치가 극에 달했다는 지적이 많다. 현 정권이 수세에 몰릴 때면 그간 여지없이 ‘종북’ 이슈를 띄워 위기를 모면하곤 했다. 민주당 문재인 의원이 “종북몰이에 분노를 느낀다”고 지적한 것도 바로 이러한 연유 일게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50%대 중후반을 찍으며 그 인기를 실감케 한다. 과반석 이상의 새누리당 역시 40% 이상의 지지율을 보이며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레드 콤플렉스’를 가진 박정희 대통령에 이어 21세기 박근혜 정권에서도 신공안정치가 통하는 우리사회 단면을 보면서 씁쓸함이 밀려오는 건 비단 필자만의 얘기는 아닐 터이다. 그러나 ‘북풍한설’의 매서움 속에서도 결국 ‘서울의 봄’은 찾아올 것이다.

 

정찬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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