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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정동영 전 의원 공식 홈페이지 |
진보정치가 뒤숭숭하다. 일각에선 ‘진보의 설 자리가 사라지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이명박 정부 이어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면서 우리 사회는 더욱 우경화됐고, 최근 불어 닥친 ‘진보=종북’이라는 이데올로기적 프레임은 진보정치의 후퇴 및 축소를 가져왔다.
이런 가운데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을 지낸 정동영 전 의원이 ‘합리적 진보’를 표방하며 탈당을 선언, ‘국민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새로운 정치세력의 건설을 촉구하는 국민모임’(국민모임)의 신당 창당 작업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혀 눈길을 모은다.
그는 지난 11일 탈당 기자회견에서 “모든 걸 내려놓고 백의종군 자세로 정권교체의 밀알이 되겠다”며 정치 인생을 건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 스스로도 “정치 인생의 마지막 봉사를 이 길에서 찾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정 전 의원은 또 “지금의 새정치연합은 제가 실현하고자 했던 합리적 진보를 지향하는 당이 아니다. 합리적 진보와 야당성마저 사라진 새정치연합에서는 국민의 기대와 정권교체의 희망을 발견하기 어렵다”며 ‘친정’에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정 전 의원은 그간 당 안팎에서 적잖이 마음고생 했다. ‘호남 물갈이론’이 제기된 지난 19대 총선 때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야권의 불모지 ‘강남을’을 택해 쓴맛을 보기도 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18대 비례초선인 전현희 전 의원과 당내 경선을 치르면서 자존심도 상했다.
당의 대선후보까지 지낸 그였기에 지지자들의 상실감과 충격은 컸다. 그리고 3년여 가까운 시간동안 정치적 낭인으로 지내왔다. 직책만 당 상임고문일 뿐이었다.
그런 그가 돌연 ‘진보정치’를 내세우며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민주당’을 떠났다. 과거 열린우리당 창당 때와는 전혀 다른 상황 속에서 ‘개혁’이 아닌 ‘진보’라는 정치적 노선을 명확히 한 것이다.
다시 시간을 돌려 2008년 1월16일.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이 대통합민주신당을 박차고 나왔다. 그는 “민주신당에는 ‘좋은 정당’을 만들겠다는 꿈을 펼칠 공간이 남아있지 않다. 제가 꿈꾸었던 ‘진보적 가치’가 숨 쉴 공간이 너무나 좁아 보인다”며 ‘유연한 진보정치 구현’을 기치로 탈당을 선언했다.
우상호 당시 민주신당 대변인은 “자기가 몸담고 있던 당에서 대통령 후보까지 하겠다고 나선 분이 갑자기 진보의 가치를 실현하기 어렵다는 얘기를 할 수 있느냐”고 그를 비꼬았다.
유 전 장관은 당내 대선후보 경선에 적극 참여하는 등 정치 전면에 나서고자 했지만, 신당 내에서 이미 그는 ‘미운 오리새끼’였다. 열린우리당과의 당대당 통합에 앞서 민주신당 안팎에선 ‘친노 배제’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고, 골수 친노였던 유 전 장관의 입지는 처음부터 좁을 수밖에 없었다.
유 전 장관은 결국 탈당했고, 이후 친노 정당인 국민참여당에 합류함으로써 그의 길을 갔다. 하지만 국참당은 과거 개혁국민정당이 그러했듯 아직까지 진보정당이기보다 친노색이 짙은 정치집단에 가까웠다. 진보보다는 개혁세력인 셈이었다.
국참당이 진보적 정치노선을 적극 취한 것은 2010년 치러진 6·2지방선거 이후부터다. 당시 유 전 장관은 야권단일후보를 통해 경기지사에 도전했지만 낙선했고, 그 결과 국참당의 독자생존 여부에 먹구름이 끼었다. 당내에선 민주당으로 돌아갈 것인가, 진보정당과의 합작을 시도함으로써 제2의 길을 모색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했고, 민주당으로 돌아갈 수 없던 이들은 결국 후자를 택했다.
진보진영은 국참당에 대해 여전히 의구심을 보냈다. 민주노동당, 국참당, 진보신당이 합당을 추진할 당시 진보신당이 국참당 배제를 들고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 기득권을 행사하던 이들이 언제부턴가 스스로 ‘진보’임을 내세운 것이 못미더웠던 것이다.
국참당은 이후 진보신당 탈당파인 통합연대와 민노당과의 합당으로 어색하지만 ‘진보’라는 옷을 온전히 입게 됐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지금의 정의당으로 발전했다.
유 전 장관은 진보보다는 개혁론자에 가까웠다. 정 전 의원 역시 동교동계가 득세한 민주당 내 개혁파에 속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진보’로 정치노선을 갈아탔다.
유 전 장관이 민주당을 떠나 진보의 길을 나선지 7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정치에 큰 관심 없는 이들은 여전히 그에게서 ‘진보’보다는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 그리고 민주당을 찾는다. 이는 진보정치에 대한 그의 진정성과 별개로 유 전 장관에 대한 과거 잔상이 그만큼 깊고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 전 의원 역시 마찬가지다. 그가 현장을 중시하며 진보적 정치노선을 취했지만, 여전히 그는 과거 기득권을 쥐었던 민주당 사람으로 분류된다. 유 전 장관에게 그랬듯 많은 이들이 그의 ‘진보정치’에 의구심을 갖는 것도 이 때문이다.
두 사람 모두 탈당의 명분은 진보정치 구현이었다. 당의 보수화를 비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정 전 의원을 지지하는 사람과 진보정치의 부활을 꾀하는 이들 모두 그의 야심이 진보정치에 새로운 변수가 되길 희망한다. 하지만 정동영이란 인물에서 진보를 떠올리는 것이 여전히 어색하다. 그런 면에서 그가 앞으로 넘어야할 가장 큰 산은 진보진영을 비롯한 많은 이들의 ‘의구심 어린 시선’일 것이다.
커버리지 정찬대 기자(press@coverag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