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청원 등판론’이 뜨겁다. 새누리당 친박 핵심 최경환 의원이 전당대회 출마를 고사하면서 ‘친박 맏형’ 서청원 의원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최경환 불출마’로 패닉에 빠진 친박은 서 의원 설득에 여념 없고, “허튼 소리”라던 서 의원 측도 “고민 중”이라며 유연한 태도로 돌아섰다. 허나 4·13총선 패배에 대한 원죄가 무겁다. 여기에 2014년 7·14 전당대회 때 ‘상도동 직속 후배’ 김무성 전 대표에게 고배를 마신 점도 못내 걸린다. 연패할 경우 데미지는 상당하다. 친박은 물론 서 의원 본인에게도 타격이 만만찮다. 그럼에도 친박은 대안이 없다. ‘맏형’이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다. <편집자 주>
친박계 좌장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이 전당대회 불출마를 선언했다. 최 의원은 지난 6일 기자회견을 통해 “제가 죽어야 정권 재창출이 이뤄진다면 골백번이라도 고쳐 죽겠다”며 “8월9일 전당대회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할 말은 많지만 가슴깊이 묻어두고 가겠다”며 “저의 불출마를 계기로 앞으로는 계파라는 이름으로 서로 손가락질하고 반목하는 일이 없도록 해 달라”고 당부했다.
최 의원은 총선 과정에서 진박(眞朴·진실한 친박) 마케팅으로 계파 갈등을 키워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결국 4·13 총선 패배의 책임론이 잇달아 제기되면서 당권 도전에 심적 부담을 느낀 것으로 풀이된다.
유력 당권주자인 최 의원의 고사로 친박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친박계 한 인사는 “우리도 멘붕’이라고 말했다. 친박의 시선은 금세 ‘맏형’으로 쏠렸다. 집권 말기 여권의 기강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사람은 ‘서청원뿐’이라는 주장도 탄력을 받았다. 더욱이 친박 일각에서 ‘서청원 추대론’까지 언급, 무혈입성을 압박하고 있다.
서청원 출마 “추대한다면 뭐…”
서 의원은 자신의 등판론이 제기되는 것과 관련, “이 나이에 무슨 전대냐”며 극구 사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는 ‘추대론’과 함께 급속히 달라졌다. 친박 핵심 관계자는 <커버리지>와 통화에서 “10, 20년 후배들과 어떻게 경선을 치르겠느냐”며 “추대는 가능하다. 추대한다면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서 의원 입장을 전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가 얼마 안 남은 상황에서 성공한 대통령을 만드는데 도움이 된다면 역할에 나서겠다는 것이 서 의원 생각”이라며 그러나 “대전제는 합의추대 내지는 옹립”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서 의원 측은 친박-비박 간 계파갈등을 떠나 대선을 앞두고 새롭게 당을 정비하는 차원에서도 ‘추대론이 옳다’는 반응이다. 서청원계 한 인사는 “8선 경륜의 정치적 역할이 무엇보다 필요한 때 아니냐”며 “서 의원을 추대해야 친박, 비박, 그리고 당이 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승적 정치가 가능하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그래야 통합의 정치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비박계는 ‘후안무치’라며 강력 반발했다. 정병국 의원은 친박의 ‘서청원 추대론’에 “비겁하고 천박하다”고 직격탄을 날렸으며, 이혜훈 의원도 “‘닭 대신 꿩’이란 식으로 내세워 당권을 잡겠다는 것”이라고 맹공을 가했다. 당권 도전을 선언한 김용태 의원은 “서 의원이 당대표 경선에 나서 국민과 당원에게 심판받길 바란다”고 엄포했다. ‘서청원 추대론’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의지를 내비친 셈이다.
이에 대해 처음헌법연구소 조유진 소장은 7일 <커버리지>와 만난 자리에서 “친박 내 고개를 들고 있는 ‘서청원 추대론’에 비박계가 정면 승부를 내건 상태”라며 “서청원 무혈입성을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는 정치적 의미”라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맏형 출격’, 청와대 교감 있었나?
서 의원 등판이 청와대와 교감 속에 이뤄진 것 아니냐는 관측도 힘을 받고 있다. 난립하고 있는 친박 후보들의 교통정리도 자연스레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다. 조유진 소장은 이와 관련해 “친박계 구심점인 서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 재가 없이 당권에 나설 수 있겠느냐”며 “뚜렷한 징후가 있는 것은 아니나 주변 상황을 볼 때 박심(朴心)이 서 의원에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최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하고, 서 의원이 미묘하게 입장 변화를 보이는 일련의 흐름이 이를 방증한다”고 설명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서청원-청와대’ 교감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신 교수는 기자와 통화에서 “이정현, 홍문종, 한선교 의원 등 친박계 인사들이 줄줄이 당권에 나선 걸로 봐선 아직 청와대의 직접적인 개입은 없는 것 같다”고 언급한 뒤 “서 의원이 결단할 시 이는 분명 청와대 의중이 반영됐을 가능성이 크다”며 “친박 후보들의 교통정리도 이후 자연스레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서청원계 핵심 인사는 <커버리지>와 통화에서 “청와대 교감 하에 이뤄지는 것은 없다”면서도 “청와대와 자주 연락하고 있다. 서 의원 같은 사람이 나서주길 바라는 분위기가 청와대에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정치권에선 박 대통령이 8일 새누리당 129명 의원 전원을 청와대에 초청해 오찬을 함께한 것에 주목하고 있다. ‘서청원 등판’을 앞두고 당내 분열을 막고 통합을 주문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여기에 정진석 원내대표와 김재원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이 전날 ‘소주 회동’을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여러 정치적 해석을 낳고 있다. 차기 당 지도부에 대한 의견 교환이 자연스레 있었을 것이란 추정이다.
공교롭게도 새누리당은 이날 당대표 권한 강화를 위한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를 확정키로 의결했으며, 당대표 후보 ‘컷오프’ 도입의 길을 열어뒀다. 컷오프는 친박계가 강하게 요구해온 것으로 이들은 후보 난립에 따른 표 분산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게 됐다. 반면, 비주류 측이 요구한 모바일 투표 도입은 합의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산됐다. 이 때문에 당권 경쟁 룰이 ‘친박 뜻대로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청원-최경환, 기자회견 전 사전에 통화”
한편, 최경환 의원이 전당대회 불출마 기자회견에 앞서 서청원 의원에게 자시의 거취 문제를 사전에 언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청원계 핵심 인사는 7일 본지와 통화에서 “서 의원과 최 의원이 기자회견을 앞두고 서로 통화한 것은 맞다”고 했다. 이어 “(논의 여부는 모르겠으나) 불출마에 대한 얘기가 오갔고, 기자회견 전 서 의원이 이를 사전에 알았던 것은 확실하다”고 귀띔했다. 친박 좌장과 맏형이 관련 내용을 사전에 논의했을 가능성이 점쳐지는 대목이다. 이를 반영하듯 ‘최경환 불출마’ 하루 전 친박계 의원 10여명은 서 의원을 찾아가 당권 도전에 나설 것을 읍소하며 ‘등판론’에 불을 지폈다.
일각에선 당 안팎의 비판론을 의식해 서 의원에게 당권을 넘기는 대신, 최 의원은 대권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돈다. 기자회견 당시 대권 관련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최 의원은 그러나 “아니다. 당의 화합과 내년 정권 재창출에 견마지로를 다 하겠다는 그런 심정”이라고 세간의 시선을 일축했다.
친박계 한 인사는 <커버리지>와 통화에서 “최 의원이 대권을 욕심내서 불출마한 것은 아니다”며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그런 판단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정국 분위기에 따라 상황이 얼마든지 전개가 가능하다”며 “그렇게 되면 대권을 마다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여지를 열어뒀다. 그는 그러면서 “그건 그때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벌써부터 단정 짓지 말라는 주문인 셈이다.
커버리지 정유담 기자(media@coverag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