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1991년 보사부 파동과 2016년 김영란법
윤리의식 아닌 법으로써 제동…“또 다른 방법 찾아야죠”
  • 정찬대 기자
  • 16.08.30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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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2월 통권 66호 <말>지에 실린 ‘보사부 파동’ 관련 기사의 삽화그림.(사진=커버리지 DB)

1991년 8월 어느 날, 과천 정부종합청사 근처 한 식당에서 보건사회부(보사부·현 보건복지부) 출입기자들이 한데 모였다. 이 자리에서 출입처 간사인 A모 기자가 “보사부 기자단의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히자, 동석한 기자들이 “그래 바람이나 쐬고 오자”며 맞장구쳤다. 그해 겨울 우리사회를 뜨겁게 달군 보사부 기자단 거액촌지 사건의 시작이다.

 

식품·제약·화장품업계 등 산하에 ‘돈 되는’ 업체가 많아 보사부는 당시 기자들 사이에서도 ‘꿀 보직’으로 인식됐다. 오죽하면 ‘여름보사 겨울문교 정치사철’이란 말까지 생겼을까. 추석떡값과 해외여행 명목으로 거둬들인 돈은 무려 8천850만원. 서울시내 일반버스의 ‘토큰’이 170원(현재요금 1300원)에 불과했던 당시 물가를 고려할 때 9천만원 가까운 모금액은 엄청난 거액이다.

 

당시 모금출처를 보면 제약협회 2천만원, 15개 제약업체 1천8백만원, 식품업체 1천만원, 화장품업체가 3백50만원을 내놓았다. 현대 아산재단과 대우 서울언론재단은 ‘선진의료체제 해외시찰’이란 그럴싸한 명분으로 3천만원(각 1천5백만원씩)을 갹출했고, 장관도 3백만원을 출연했다.

 

보사부 기자단 거액촌지 사건은 기자단의 부패상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언론계 민낯이다. 80년대 말 민주화를 거치며 90년대 초 우리사회 곳곳에 치부가 드러나기 시작했고, 정치·경제와 유착관계를 맺어온 언론도 예외일 수 없었다.

 

보사부 파동이 미친 영향은 상당했다. <한겨레신문> 보도 이후 곧바로 각 언론사들이 반성문 쓰듯 사고(社告)를 냈다. 기자윤리강령이 제정되고 기자단을 해체 및 탈퇴하는 등 자정바람이 일기도 했다. 허나 경쟁적으로 써내려간 반성문은 자정의 대의를 상실한 채 위기모면에만 급급했고, 해당 기자들에 대한 징계 역시 견책이나 감봉 등 경징계를 받기 일쑤였다.

 

언론계 관행처럼 이어온 ‘촌지문화’는 보사부 사건 이후 양상을 달리했다. 이른바 ‘변종 촌지’다. 호화외유, 골프접대, 주식로비나 부동산정보 수수, 각종 선물 등은 그 대표적인 예다. 물론 여기에도 약간의 돈봉투는 예삿일이다. ‘출장비’ ‘게임비’ 등 받기 수월하게 명목만 달리했을 뿐이다.

 

보사부 파동 10년 후인 2001년 12월, 한국기자협회 한국방송(KBS) 지회는 결의문을 통해 “촌지로 물들었던 과거 기자사회 윤리가 이젠 골프접대로 물들고 있다”며 접대골프 금지 관련 4가지 내부지침을 발표한 바 있다.

 

또 ‘윤태식 게이트’ 사건으로 언론과 벤처기업 간 유착관계가 드러나면서 2002년 1월 전국언론노조와 한국기자협회,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는 ‘윤태식 게이트 언론인 연루의혹에 대한 언론 3단체 입장’이란 제목의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자기반성문을 통한 일종의 자구책을 내놓은 셈이다.

 

그로부터 또 다시 14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지난 17일 한국기자협회는 창립 52주년 기념식에서 눈에 띄는 행사를 진행했다. 광주전남기자협회 장필수 협회장(광주일보)과 기자협회 여기자특별위원회 신은서 간사(TV조선)가 1만 회원을 대표해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을 낭독한 것이다.

 

앞서 기자협회는 ‘김영란법’ 통과 후 ‘언론활동 위축’을 이유로 관련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물론 합헌결정이 내려졌다. 그러자 이번에는 ‘비판언론 재갈물리기 악용 안된다’는 제목의 반발 성명을 발표했다. 여론은 냉담했고 기자들 사이에서도 ‘도를 넘어섰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급기야 YTN 지회는 ‘한국기자협회의 김영란법 비판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반박문을 내걸었다. 나아가 “헌법소원과 성명발표에 대해 누가, 어떤 과정을 거쳐 결정했는지 자세한 경위 설명을 요구한다”며 협회에 따져 묻기도 했다.

 

김영란법 통과 후 많은 기자들이 (인터넷)지면 등을 통해 그간의 반성문을 쏟아내고 있다. 보사부 파동 직후 주요 매체에서 경쟁하듯 내놓은 고해성사와 비슷한 느낌이다. 이들은 업체로부터 받은 향응이나 접대 형식을 나열한 뒤 김영란법이 왜 필요한지를 역설한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매체 파워를 자랑하기도 한다. 그간 문제의식 없이 이어온 ‘접대 관행’을 이제는 끊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쩐지 이율배반적이다. 윤리의식이 아닌 법에 의존하는 행태를 보면서 과연 어디까지 자정이 가능할까에 대한 의문도 발생한다.

 

최근 대기업 홍보팀 관계자와 마주한 적이 있다. 화두는 단연 ‘김영란법 이후’에 대한 얘기였다. 관계자는 기자의 물음에 “또 다른 방법을 찾아야죠”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수년간 이어온 밀월관계를 하루아침에 끊기란 쉽지 않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커버리지 정찬대 기자(press@coverag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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