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 대통령의 생각이 정의가 되는 나라
강압과 낙인, 강요와 폭력의 시대를 살다
  • 정용해
  • 15.11.29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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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사진=청와대)

 

박근혜 대통령이 연일 독한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리고 쟁점사안에 대한 대통령의 강한 어조는 곧 우리사회 정의로 굳혀졌다. 여당은 대통령의 발언을 절대적 교시로 여기고 이를 행하는데 여념이 없다. 종편을 필두로 한 보수언론은 온갖 호들갑을 떨며 대통령을 옹호하고 나섰고, 보수단체들도 박 대통령 발언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며 팔을 걷어붙였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많고, 정책적으로도 수혜계층과 피해계층이 분명한 사안마저도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모두 정리돼 버렸다. 대표적으로 노동악법, 한·중 FTA, 국정 교과서 문제 등이 그렇다. 여기에 더해서 자신의 맘에 들지 않는 정치인은 ‘배신의 정치인’으로 낙인찍고, 진실하지 못한 정치인으로 몰아세웠다. 심지어 국회의 존재마저도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쏟아냈다.

 

국회가 하는 일이 무엇일까? 정부에서 제출한 법안을 무조건적으로 통과시켜 주는 것이 유능한 국회일까? 그것은 정부의 거수기이자 청와대의 이중대에 다름 아니다.

 

노동정책만 봐도 그렇다. 해고를 더욱 쉽게 하고, 이에 따른 노동자들의 고용이 불안정해지는 상황에서도 박 대통령의 노동개혁 ‘연내 처리’ 지시에 새누리당과 정부, 그리고 경찰까지 동원돼 ‘입법대집행’에 나섰다. 더욱이 노사정 합의 자체가 이뤄지지 않은 기간제법과 파견법을 포함한 ‘노동 5법’을 패키지로 묶어 일괄 처리하겠다는 발상은 노동법을 정부 뜻대로 쓰겠다는 독선에 불과하다.

 

경제 살리기를 위해 시급하다는 한·중 FTA도 마찬가지다. 한중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이익을 보는 계층도 있지만, 피폐해지는 계층도 분명 발생한다. 농민이 그렇고, 중소기업이 그렇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보완 정책 마련 얘기는 듣지 못했다. 정부가 하지 않으면 국회가 나서서 관련 대책을 내놓는 것이 당연한 책무이지만, 그저 ‘허공 속 메아리’처럼 정치적 공방만 격해질 뿐이다.

 

역사 교과서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오직 자신의 생각대로 만들어진 교과서만이 균형 잡힌 ‘올바른 역사교과서’라는 주장은 역사에 대한 여러 해석과 우리 사회 다양성을 무시한 채 정치적 획일성을 강요하는 것과 같다.

 

역사마저도 자신들의 의도대로 기술되지 않으면 올바르지 않다고 규정하고, 이에 반대하는 국민은 순식간에 좌파가 되며, 불온한 생각을 가진 국민이 된다. 대통령 자신만이 정의라며 국민을 양분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강압과 낙인, 강요와 폭력의 시대를 살고 있다. 저항은 IS가 되고, 반대는 좌파가 된다. 생존권을 위한 격렬한 시위는 국가 전복 세력이 되고, 헌법을 이야기하는 정치인은 배신의 정치인으로 낙인찍힌다.

 

각목을 휘두르는 것만이 폭력은 아니다. 권력의 힘으로 강요와 강압 그리고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위협하는 것 또한 폭력이다. 그리고 권력에 의해 행해지는 국가 폭력은 ‘정의’라는 허울 뒤에 감춰진 세상에서 가장 무자비한 폭행이자 테러다.

 

국민의 저항권을 헌법 전문을 통해 보장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 헌법학계의 다수설이다. 또한 국가가 개인을 향해 휘두르는 폭력은 엄격한 통제를 거쳐야 하는 것이기에 저항권이 권리로 인정되고 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국가의 가장 큰 권력을 움직인다. 그리고 이러한 권력은 국민 개개인을 향하고 있다. 이 때문에 대통령의 살벌한 눈빛 하나에도 국민은 움츠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지켜나가는 일은 어렵다. 반대로 독재로 회귀하는 일은 매우 쉽다. 국가 권력이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을 편 가르고, 소수의 목소리를 억압하기 시작할 때 독재의 그림자는 드리워진다. 과거 군사독재 정권 하에서 그랬듯 언제부턴가 대통령의 날선 언어와 분노로 가득한 눈빛이 두려워진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어쩌면 독재와 민주주의의 분기점에 서있는지도 모르겠다.

 

정용해(한결미래정치연구소장·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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