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전북 남원·임실③] 그들이 겪은 것은 ‘진짜 전쟁’이었다
이데올로기 사슬에 순장이 된 사람들
  • 정찬대 기자
  • 18.01.23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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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리지>가 기획 연재를 통해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에 대한 당시 기록을 싣습니다. 국가폭력의 총성이 멎은 지 어느덧 60년의 세월이 더 흘렀지만, 백발의 노인은 여전히 그날의 아픔을 아로 삼켜내고 있습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애써 지우려 했던, 이제는 가물가물하지만 누군가에게 꼭 남겨야할, 그것이 바로 <커버리지>가 ‘민간인 학살’에 주목하는 이유입니다. 민간인 학살은 결코 과거 얘기가 아닙니다. 현재의 얘기며, 또한 미래에도 다뤄져야할 우리 역사의 아픈 한 부분입니다. 좌우 이념대립의 광기 속에서 치러진 숱한 학살, 그 참화(慘禍) 속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수많은 원혼의 넋이 글로나마 위로받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기사는 호남(제주포함), 영남, 충청, 서울·경기, 강원 순으로 연재할 계획이며, 권역별로 총 7~8개 지역이 다뤄질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

 

 

끌려온 가족이 불을 지피다

 

3월 14일 시작된 분화 작전은 16일까지 계속됐다. 이 과정에서 군인들은 동굴 안에 숨어든 이들의 가족에게 직접 불을 지피도록 지시했다. 주민들은 시커먼 연기가 동굴 천장을 타고 한없이 빨려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어떤 이는 발을 동동 구르고, 또 어떤 이는 오열했다.

 

앞서 군인들은 입산자와 부역 혐의자 가족들이 임시 수용된 청웅초등학교(청웅면 구고리)를 찾았다. 그리고는 이들을 폐광굴 입구로 모두 끌고 갔다. 그런 다음 동굴 안에 있을지 모르는 가족을 불러내라고 윽박질렀다. 총부리가 등 뒤에서 주민들을 겨누었다.

 

“○○○야, 언능 나와…….”

“자수하면 살려준단다…….”

 

마을 주민들은 울먹이며 가족의 이름을 불러댔다. 하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군인들을 믿지 못한 데다 동굴이 원체 깊어 그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한 탓이었다. 총부리를 겨눈 군인들은 주민들에게 솔잎을 태우라고 지시했다. 우익 청년단도 함께 이를 거들었다. 안에 가족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불을 지폈다. 그저 내 가족이 저 안에 없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임실 폐광굴 분화작전 당시 임실군 우익청년단 대원이었던 한영철(가명)씨는 동굴 입구에서 불을 피웠던 사람 중 한명이다. 그는 자신의 친인척이 동굴 안에 있는 것을 알면서도 군인들 지시에 불을 피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커버리지(정찬대)

 

불은 두 군데 입구에서 피워졌다. 강진면 백련리와 청운면 남산리가 그곳이다. 폐금광은 위치에 따라 명칭을 달리한다. 국립임실호국원이 있는 백련리 쪽은 구운광산, 반대편 남산리 쪽은 남산광산으로 불린다. 당시 남산광산에서 직접 불을 피운 한영철씨(가명)는 “청웅면 사람들을 다 나오라고 해서 고춧대 걷어다가 불을 피웠다”고 증언했다. 이어 “고춧대가 징허니 맵다. 잔솔가지랑 같이 땠는데, 어찌나 맵던지”라며 고개를 휘저었다. 그는 “굴 밖으로 나온 사람도 있었는데, 군인들이 모조리 총살시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차피 죽을 것 칼로 가슴을 박아 자살한 사람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한국청년단 대원이었던 한 씨는 “군경 지시로 좌익 청년들을 색출하고, 빨치산이 끌려오면 심문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젊은 사람 대다수가 (우익 청년단에) 가입했다. 이념을 알고 그런 것은 아니고, 그저 살기 위해 가입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친척이 동굴 안에 있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 소리 못하고 시키는 대로 불을 지폈다. 우익 청년단임에도 불구하고 동굴에 친인척이 있다고 하면 군인에게 곧바로 총살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뭔 힘이 있가니, 시키니깐 그냥 한 거제. 어디 친척이라고 얘기할 수가 있어야지, 그래 봤자 쫄짜인데…….”

 

고개를 떨군 그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임실 폐광굴 분화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인 박순남씨는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만도 못했다”며 “그때 생각하면 그저 꿈만 같다”고 말했다. ⓒ커버리지(정찬대)

 

유일한 생존자 … “그저 꿈만 같다”

 

불 피운 연기가 모두 빠져나간 뒤 횃불을 든 경찰이 폐광굴 안으로 들어갔다. 한 씨를 비롯한 한국청년단 대원들이 그 뒤를 따랐다. 매캐한 비린내가 동굴 안에 진동했다. 아직 남아 있는 연기에 속이 다 뒤틀렸다. 조금 더 들어가니 널브러진 시신이 눈에 들어왔다. 일그러진 표정 속에 마지막까지 몸부림친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입을 틀어막고 죽은 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죽은 이, 땅바닥을 긁고 손톱이 모두 상한 어떤 이, 아이를 보듬은 채 엎드려 죽은 어떤 이……. 갱도 곳곳에 질식사한 사람이 즐비했다. 정확한 숫자를 셀 순 없지만 정말 많은 이가 폐광굴 안에서 목숨을 잃었다. 주민들은 “700명 정도 죽었다”고 말했다.

 

열네 살 박순남 씨도 당시 폐광굴에 있었다. 소개 작전으로 집이 모두 불탄 상태에서 별수 없이 굴속에 들어갔다. 더욱이 부역자 가족들은 모두 다 죽인다고 해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그의 막내 오빠는 입산한 뒤 행방이 묘연한 상태였다. 큰오빠는 결혼해 분가했고, 어머니와 작은오빠 그리고 만삭의 올케언니와 함께 폐광굴에 들어갔다. 작은오빠와 새언니는 아직 혼인 신고를 하기 전이었다. 그리고 한 달여 후 분화 작전을 만났다.

 

사람들 소리가 여기저기 들리면서 정신이 든 그는 가족부터 찾았다. 오빠와 올케언니는 이미 주검이 됐고, 어머니는 흰 거품을 문채 고통스러운 신음을 삼켜내고 있었다. 어머니를 일으키려는 순간 경찰이 목덜미를 잡아챘다. 어머니와 함께 나오려 했지만 경찰은 완강히 그를 끄집어냈다. 어머니는 그렇게 동굴 속에 버려졌다. 이날 구운광산(임실호국원 쪽)에서 살아나온 이는 박순남을 비롯해 모두 50명. 이들은 전선에 묶여 곧바로 강진지서로 붙들러 갔다.

 

△폐광굴에서 붙잡힌 주민들은 임실 강진면 회진리 멧골 등지에서 모두 총살됐다. 현재 축사가 들어선 가운데 축사 주인 정진열씨는 “80년대 말 축사를 지을 때 유골이 엄청 나왔다”고 말했다. ⓒ커버리지(정찬대)

 

지서에 인계된 지 얼마 안 돼 한 군인이 “니가 왜 여기 있냐”며 박순남을 흔들었다. 전쟁 전 전주의 한 약국집 애기담사리(보모)로 있을 때 거기 큰집 오빠였다. 그는 위관급 장교로 대위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그의 도움으로 풀려난 박순남 씨는 전주에 있는 약국집으로 피신했다. 전주로 가는 차 안에서 “너는 참 운이 좋았다”고 그가 말했다. 다음 날 유치장에 감금된 이들은 모두 군에 신병이 인도된 뒤 강진면 회진리 장동마을과 덕치면 회문리 망월마을 경계인 멧골에서 집단 처형됐다. 군인들은 마을 구장(이장)에게 뒤처리를 지시했다. 하지만 원체 많은 이가 죽어 있었다. 결국 매장할 엄두를 못낸 주민들은 보리타작하고 남은 보릿대로 대충 시신을 덮어 처리했다.

 

현재 이곳은 축사가 들어서 있다. 축사 주인 정진열 씨는 “1980년대 말 처음 축사를 지을 때 유골이 엄청 나와 놀랐다”고 말했다. 동네 사람들이 ‘무서운 계곡’이라며 꺼려했지만 그냥 그런 줄만 알았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직 발굴되지 않은 유골도 많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2015년 10월 임실에서 만난 박순남 씨는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였다”며 “그때는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만도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어머니와 오빠 내외는 현재 선산에 모셔진 상태”라며 “그때 생각하면 진짜 꿈만 같다”고 긴 한숨을 토해냈다.

 

수백의 원혼이 뒤섞인 임실 폐광굴. 그 아래 호국영령을 위한 국립임실호국원이 자리하고 있다. 나라의 부름을 받고 희생된 그들, 그러나 어떤 이는 그 부름에 이유 없이 희생되기도 했다. 국립임실호국원에는 ‘전쟁 영웅’과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또 다른 죽음’이 함께 공존한다.

 

△국립임실호국원 왼편 언덕 위에는 700여명의 원혼이 깃든 폐광굴이 있다. ⓒ커버리지(정찬대)

 

커버리지 정찬대 기자(press@coverage.kr)

  

*본 기사는 <프레시안>에 함께 연재됩니다.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의 기록> 지난 연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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