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세계 인권의 날] ‘의도된’ 안보, 인권 위에 서다
국가안보와 인간안보 사이에 멈춰선 ‘인권’
  • 정찬대 기자
  • 17.12.07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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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안보와 인권은 배타적이며 상충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좀 더 엄밀히 말하면 안보가 개인의 인권, 그 우위에 있다고 판단되어졌다. 국가와 민족의 엄중함 앞에 개인은 늘 부속품으로 취급돼 희생을 강요당했다. 어쩌면 그것을 당연시하게 여겼는지도 모른다. 국가 이익을 위해 개인은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다분히 국가주의적 사고가 내재화된 결과였다. 그것은 다시 애국심으로 발현돼 폭력을 정당화했다.

 

수단이 되어버린 ‘애국’은 탐욕이 돼 개인의 인권을 짓밟곤 한다. 부정하려 해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자 우리가 처한 현 상황이다. 거대 담론 앞에 개인의 인권은 쉽게 또는 가볍게 다뤄질 수밖에 없었다.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인류애를 말하지만 국가 이익 앞에선 그저 한시적인 가치로 축소됐다. 국제 관계나 국가 내에서 흔하게 마주하는 현상이지만 우리는 이에 둔감했다. 앞서 언급했듯 ‘그럴 수 있다’고 쉽게 판단했기 때문이다.

 

1994년 국제연합개발계획(UNDP)은 새로운 안보 개념을 제시했다. 이른바 ‘인간안보’다. 군사적 위협을 제거하고 국가를 지키는 전통적인 형태의 안보 관념에서 벗어나 인간 그 자체의 안정과 행복에 무게를 둔 이론이다. 군사 감축이나 군비 축소 외에 개인의 인권, 환경, 사회·경제적 안정, 민주주의 등이 기본적으로 보장돼야만 진정한 세계평화가 가능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개념이다. 국가 이익에 앞서 개인과 인류를 우선시 하자는 것이 ‘인간안보’의 기본 철학이다. 여기에서는 인간을 위협하는 모든 것이 안보 위협으로 간주된다.

 

1980년대 산업·정보화 시대 이후 정치·경제적 문제가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면서 인간안보의 개념이 나왔다. 하지만 인권과 복지도 돈으로 환산하려는 물질주의는 세계를 지배하는 자본주의 기본 인식이다. 과거와 같은 군사적 냉전시대는 끝났지만, 경제 블록 형성을 통한 신(新) 냉전체제는 인권을 또 다시 가벼이 여기도록 내몰고 있다. 인권을 이유로 무수히 반복되는 ‘폭력의 위험성’에 대해 우리는 여전히 무감각하다.

 

탈북과 인권, 그리고 국가 안보

 

북한식당(류경식당) 종업원 기획 탈북 의혹 사건에 대한 조사 경과가 제72차 유엔(UN) 총회(9월~12월)에 정식 보고서로 제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 총회 보고서 제출은 공론화 과정을 거쳐 각국 논의가 시작되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은 「북한 인권상황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북한식당 탈북자와 권철남·김련희씨 사례를 ‘납치와 이산가족’ 항목에 분류해 포함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권철남씨는 2014년 11월 한국에 들어왔으나 2년 뒤 노동착취 등을 겪고 월북을 시도하다 체포됐다. 김련희씨는 2011년 중국 여행 중 탈북 브로커에 의해 한국 땅을 밟은 뒤 국정원 합동심문센터에서 송환을 요구했던 인물이다. 통일부는 권씨가 자의로 탈북 했고, 김씨 또한 탈북 후 조사과정에서 본인의 자유의사가 확인됐다며 이들의 송환 요구를 거부했다.

 

지난해 4월 중국 내 북한식당 종업원 13명(남성 지배인 1명, 여성 종업원 12명)의 집단탈북 사태는 적잖은 파장을 불러왔다. 4.13총선을 6일 앞두고 이뤄진 집단 탈북에 ‘선거용 북풍’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으나 국정원은 세간의 의혹을 일축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의 대외선전매체 <민족통신>은 북한식당 여종업원 12명이 금식하다 1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탈북 여성의 긴급 접견을 여섯 차례나 요청했으나 국정원은 끝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소송까지 제기했지만 2017년 2월 법원은 관련 건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렸다. 민변은 앞서 유엔 국제기구에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접견 긴급청원’을 진행하기도 했다.

 

민변이 요구한 것은 개인의 기본 권리인 변호인 접견권이었다. 아울러 자의적 구금에 따른 권리 침해를 지적했다.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앞서 2015년 11월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에 구금된 탈북자들의 변호인 접견권 침해와 관련, △구금기간의 최소화 △구금기간 및 신문 시 변호인 접견권 허용 △신문 기간과 방식의 국제인권기준 준수 등을 한국 정부에 권고한 바 있다. 하지만 지켜지지 않았고, 이를 강제할 근거나 조항도 없다.

 

국정원은 ‘국가 안보’라는 마법의 지팡이를 이번에도 사용했다. 전례가 없고, 안보를 저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민변의 요구를 사실상 거절한 것이다. 물론 ‘탈북자 본인이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도 함께 들었다. 법치국가에서 당연히 이뤄져야할 변론권이 박탈당한 순간이다.

 

인권의 바이블로 통하는 「세계인권선언」에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어떤 나라(자국을 포함한)에서든지 떠날 수 있으며, 또한 자국으로 돌아올 권리를 가진다’(13조 2항)고 했다. 또한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에서도 ‘모든 사람은 자국을 포함해서 어떠한 나라로부터도 자유로이 퇴거할 수 있으며(12조 2항), 어느 누구도 자국에 돌아올 자유를 자의적으로 박탈당하지 않는다’(12조 4항)고 규정돼 있다. 하지만 탈북민들에게는 이러한 선언이 무의미하다. 앞서 소개한 권철남, 김현희씨는 탈북자란 이유로 인간의 기본권인 퇴거권마저 인정되지 않고 있다.

 

도구화 된 인권, 강대국의 사유화

 

국제 정세 속에서 인권은 수단화되고 때론 도구화된다. 국제 인권법이 악용되고 이것이 전쟁을 일으키는 주요인이 되기도 한다. 강대국 중심의 세계 질서는 국제적 긴장 관계를 불러오고, 다자간 국가 안보 속에서 인권은 또 다시 뒷전으로 밀려났다.

 

최근 미국과 중국이 인권 보고서를 두고 일진일퇴를 가했다. 카운터는 미국이 먼저 시작했다. 미국은 중국을 ‘최악의 인신매매 국가’로 규정하며 북한과 같은 3등급을 배정했다. 미 국무부가 발표한 ‘2017 인신매매 보고서’에는 인권 사각지대로써 중국을 신랄하게 꼬집었다. 여기에 신장위구르자치구 등 중국 입장에서 꺼려하는 소수민족에 대한 인권 침해 사례까지 지목했다. 미 국무장관 렉스 틸러슨은 “인신매매 문제가 국가 안보와 연결될 수 있다”며 대북 제재에 미온적인 중국을 거듭 압박했다.

 

중국도 맞공세를 가했다. 중국 국무원은 ‘2016년 미국의 인권 기록 보고서’를 발표하며 “미국이야 말로 최후의 인권 후퇴 국가”라고 되받았다. 중국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인구 10만 명당 693명이 수감돼 이 분야 세계 2위를 차지했고, 지난해 동안 총기 난사 385건을 포함해 총 5만8125건의 총기 사고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1만5039명이 죽고 3만589명이 다쳤다. 중국은 또 2016년 대선을 언급하며 “금전정치가 거짓과 웃음거리로 가득했던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장악했다”고 조롱했다.

 

앞서 2013년에도 G2 양국은 날선 공방을 주고받은 바 있다. 미국은 ‘최악의 인신매매 국가’로 중국을 선정했다. 당시 중국 공산당은 ‘18기 3중 전회’를 앞두고 시진핑 국가 주석의 영향력이 집중되던 때였다. 여기에 북한은 핵보유를 공식 선언하며 동북아 안보를 위협했다. 이러한 국제 정세 속에서 미국은 중국과 북한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인권 문제를 끌어왔다. 더욱이 북한에 대해선 선제타격 가능성까지 내비친 상태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 팔레스타인 분쟁, 시리아 내전 등 2000년대 이후 벌어진 모든 전쟁이 인권과 세계평화를 전면에 내건 채 공습이 시작됐다. 인권 보호가 타국을 침략할 구실로 사용되면서 이른바 ‘패권적 담론’이 되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그런 점에서 미국은 ‘기소되지 않는 전쟁 범죄국’이란 오명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개인의 인권과 권리, 자유는 강대국의 정치·경제적 이득 앞에 너무나 미약하고 취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의도된’ 안보는 그렇게 인권 위에 존재하고 있다.

 

커버리지 정찬대 기자(press@coverag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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