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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꿈’ 드러낸 반기문, 대망론의 실체
반기문에 쏠린 눈…꼬리표는 ‘친박 대통령’
  • 정유담 기자
  • 16.05.28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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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것이 왔다. 반기문 유엔(UN) 사무총장의 용트림이 시작됐다. 친박계로부터 옹립 가능성이 점쳐졌던 ‘반기문 대통령’ 만들기는 반 총장 스스로 대권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조금씩 현실화되는 분위기다. 설마 했던 야권은 ‘검증을 이겨내겠느냐’며 싸늘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출마가 현실화될 경우 미칠 파장을 우려하며 벌써부터 ‘김 빼기’에 분주하다. 유력 주자들의 셈법 또한 복잡해졌다. 여권에선 친박-비박 간 찬반양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고, 야권에선 ‘충청 대망론’을 경계하며 해법 찾기에 고심이다. 반 총장 시계가 예상보다 빨리 내년 12월로 향하면서 대선구도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편집자 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그의 부인 유순택 여사가 방한한 모습.(사진=제주도청)

 

“내년이면 한국 사람이 된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느냐는 그때 가서 고민하고 결심하겠다”

 

지난 25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제주도 관훈클럽 초청 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올해 말 임기가 종료되는 반 총장은 자신의 거취에 대해 거침이 없었다. “대권후보로 언급되는데 자부심을 느낀다” “역할을 고민하고 필요하다면 자문을 구하겠다” “(대권후보로서 나의) 건강은 문제되지 않는다” 등 ‘반기문 대망론’을 애써 경계하던 그간의 모습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기자와 통화에서 “출마 의지가 강한 것은 확실하다”고 했으며, 신율 명지대 교수도 “그간의 톤과는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반 총장이 ‘변했다’는 것이 정치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친박의 국면전환, 먹혔다!

 

관훈클럽 간담회는 당초 비공개였으나 공개로 전환됐다. 그리고 반 총장은 작심한 듯 자신의 권력 의지를 내보였다. 전에 없던 톤이었다. 정치권은 여기에서 의문점을 제기한다. 너무 이르지 않았냐는 것이다. 유엔 사무총장의 임기가 7개월여 남은 상황에서 “성급했다”는 지적이다.

 

검증은 혹독하게 치러질 것이다. 언론은 물론 각 진영에서의 철저한 검증 작업이 기다리고 있다. 여기에 유엔 결의안을 무시했다는 국제사회의 비판도 피할 수 없게 됐다. 1946년 채택된 유엔 결의안은 “유엔 사무총장은 각국의 비밀을 취득할 수 있는 직위이기 때문에 퇴임 직후에는 회원국의 어떤 정부 직위도 맡아선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반 총장 등장 시기를 최대한 늦춰야 한다는 게 그간의 정설이었다. 대선을 목전에 두고 등판해야만 검증의 내상을 줄일 수 있고, 신비감 또한 유지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조기 등판을 택했다. 반 총장의 강도 높은 발언은 코너에 몰린 친박계 상황과 맞물려 있다. 비상대책위원회와 혁신위원회의 무산, 친박의 전횡, 분당 가능성까지…. 내홍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 지지율이 동반 하락하면서 레임덕의 위기까지 찾아왔다. 친박으로선 극적인 국면 전환이 절실했다. 바로 조기 대선체제로의 변화다.

 

김만흠 원장은 기자와 통화에서 “친박 측이 반 총장에게 대선 출마를 권유한 것 같다”며 “현 시점에서 반 총장이 무리하게 발언할 수 있었던 것은 친박 (지시) 외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친박의 탈출구가 없는 상황에서 반 총장에게 힘이 실리면 지금의 어려움을 돌파할 수 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며 “다만, 반 총장 본인한테는 불리한 상황이 됐다”고 진단했다.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장을 맡고 있는 민병두 의원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반 총장은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친박계 대통령 후보로 ‘내정’돼 있다”며 “킹메이커인 당권은 (친박 핵심) 최경환, 대통령은 반기문 구도”라고 확언했다. 그러면서 “지난 (4월) 미국 방문 때 박근혜 대통령이 반 총장에게 (대선 출마를) 권유했을 거라는 추측도 있고, 믿음도 전파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반 총장 뒤에 박 대통령과 친박이 있음을 지적했다.

 

‘친박’이 민다…‘충청+TK’ 연합론

 

반기문 대망론은 ‘충청+TK(대구·경북) 연합론’과 맞물리면서 여권 내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대구·경북은 친박의 정치적 텃밭이다. 일 년여 만에 방한한 반 총장이 한국에 닷새 머무는 동안 경북 안동과 경주에서 이틀을 보내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더욱이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와 이원종 신임 청와대 비서실장 모두 반 총장과 동향(同鄕)인 충청 출신이란 점에서 향후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당·청 유력인사가 반 총장을 지지한다는 얘기다.

 

중원을 제패한 자가 천하를 얻는다고 했다. 동서(東西) 구도가 확실한 선거지형에서 충청권은 늘 대선의 승부처였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권을 잡은 것도 DJP(김대중-김종필)연합을 통한 중원 잡기에 성공함으로써 가능했다. 그런 점에서 충청이 고향인 반 총장은 출발선부터 남다르다. 특히 영남과 호남 중심의 인물 구도에서 탈피했다는 것만으로도 여론은 신선하다는 반응이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나라가 어려울 때는 충청 출신들이 먼저 떨치고 일어난 사례가 많다”고 했으며, 충청 출신인 홍문표 사무총장 권한대행은 “(반기문 대망론이 언급된 뒤) 야당 움직임을 보면 상당히 두렵거나 겁을 먹은 것 같다”며 반 총장 경쟁력을 치켜세웠다.

 

‘충청포럼’ 주목… ‘潘 띄우기’ 주력

 

반 총장은 그간 외교관으로 지내온 탓에 두드러진 정치세력이 없다는 약점을 지녔다. 하지만 그 약점을 친박이 메우고 있다. ‘친박 대통령’이란 딱지에도 불구하고 그가 친박을 등에 업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율 교수는 기자와 통화에서 “친박이란 세를 얻고 영입된다는 점에서 그간의 외부 유력인사와는 차이를 보인다”고 ‘반기문 대망론’을 평가했다. 이어 “‘친박 대통령’이란 약점이 있지만, 충청이란 차별성과 당 세를 안고 간다는 점에서 결코 나쁘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반 총장을 지원하는 외곽그룹으로 현재 ‘충청포럼’이 가장 주목된다. ‘반기문 대통령’ 만들기에 공헌한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충청포럼 초대 회장을 맡은 바 있으며, 지금은 박 대통령을 ‘누나’라고 부르는 친박 핵심 윤상현 무소속 의원이 2대 회장을 맡고 있다. 윤 의원의 고향은 충남 청양이다. 그의 복당 가능성이 유력한 상황에서 반기문 띄우기에 적잖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밖에 ‘반사모(반기문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와 충청 출향 인사들의 모임인 ‘백소회’도 예사롭지 않다. 논산 출신인 임덕규 월간 디플로머시 회장이 두 모임을 주도하고 있는 가운데 임 회장은 과거 반 총장에게 대선 출마를 강하게 권유하기도 했다.

 

또 최근 서울 여의도에서 20대 국회의원 당선자 환영회를 개최한 ‘충청중앙향우회’도 반 총장을 측면 지원할 것으로 보인다. 충청중앙향우회는 정진석 원내대표와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을 배출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 외교관 출신의 전문가 그룹까지 더해지면서 충청 출신 1호 대통령(내각제인 장면정부 제외) 만들기를 위한 움직임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커버리지 정유담 기자(media@coverag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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