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北의 변화, 체제의 몰락인가 변혁인가
마르크스 시선으로 본 ‘北-美 정상회담’
  • 정찬대 기자
  • 18.05.10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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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1월 분단의 상징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이듬해 통일 독일이 선포됐고, 1991년 냉전의 상징이던 소련은 붕괴했다. 공산주의는 실패한 체제로 인식됐고, 사람들은 마르크스 사상의 허구성을 꼬집었다. 


중국 최고지도자 시진핑은 소련이 해체되고 공산당이 붕괴된 이유를 “그들 스스로 신념을 포기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당 쇄신을 주문하며 체제를 강고히 한 그는 결국 지난 2월 ‘일인 장기 독재’에 대한 헌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구소련의 배턴을 이어받은 중국은 기고만장한 미국의 세계질서를 거부했다. G2국가로써의 위상을 누리며 서구식 자유민주주의에 맞섰고, 경제 블록 형성을 통해 신 냉전체제를 부활시켰다. 양국 간 무역전쟁은 이를 잘 방증한다.


 

△지난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이 판문점에서 열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장소를 이동하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사진=청와대)   


北의 변화, 그리고 美와 수교


한반도의 안보 긴장은 70년 체질을 개선하며 급속히 화해무드로 발전하고 있다. 남북 정상이 손을 맞잡은 채 군사분계선을 넘나드는 모습은 종전을 앞둔 통일 국가의 새 역사가 쓰여 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는 것처럼 가슴은 요동쳤고, 유일한 분단국가 한반도에 전 세계가 주목했다. 완전한 비핵화와 종전(終戰), 그리고 평화체제 확립에 방점을 찍은 ‘판문점 선언’은 앞으로 이어질 남북 간 평화협력을 기대케 한다.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정착시키는 발판이 될 것이란 평가다. 


지난해 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설전으로 일촉즉발의 전쟁위기가 고조됐으나 어느새 화해 무드를 조성하면서 북한과 미국은 1953년 7월 정전협정 이후 첫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 이 자리에서 경제협력은 물론 느슨한 형태의 수교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상징인 미국과 실패한 체제로 인식된 공산주의를 고수해온 북한의 만남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세계 패권을 호령해온 미국 입장에서는 “악의 축” 북한과 협상 테이블에 마주하는 것이고, 공화국의 자존심을 지켜온 북한으로서는 시장 개방화를 통해 서구식 자본주의를 수용하겠다는 태도를 내비친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체제 인정’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北의 변화, 체제의 몰락인가


자본주의는 계급갈등을 양상하고 인간 소외를 불러왔다. 사회주의는 국가와 개인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전자는 변질됐고, 후자는 쇠퇴했다. 불확실성은 커져갔고, 체제이념은 퇴보했다.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체제변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개혁개방과 고도성장을 통해 지금과 다른 형태의 경제체제를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다. 다만, ‘체제 인정’이 의미하듯 정치체제는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으로서는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면서 협상(한반도 비핵화 등)에 임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서구식 패권주의의 가장 큰 폐해는 체제나 이념을 강요하는데 있다. 쇠퇴하고 붕괴되면서 필요에 따라 변화, 발전하는 것이 체제이고 시스템이다. 때로는 혁명을 통해, 때로는 수용을 통해 개선이 가능하다. 일인 지도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북한은 후자를 택했을 뿐이다. 냉전은 각자의 체제를 강제하려할 때 폭력의 힘을 받는 법이다.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



마르크스의 ‘재소환’, 그리고 공산주의


마르크스가 주장한 사회주의는 풍요로운 개인의 집합체를 의미했다. 때문에 사회주의는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된 단계이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당 선언』에서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숙명적인 대립상태를 지적했다. 또한 공산주의자와의 관계,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비교 및 대조 등도 함께 언급했다. “공산주의를 특정 짓는 것은 소유 일반의 폐지가 아니라 부르주아적 소유의 폐지”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정치적인 통제, 즉 국유화나 공공재(공개념) 등을 통해 사적 소유의 철폐를 강조한 것이다. 물론 임금과 이윤의 윤리적 통제 또한 가능하다.


보편성의 욕구를 반영한 것이 국가다. 존재가 의식을 결정하는 메커니즘 속에서 의식이 변한다면 사회관계의 변화도 가능하다. 마르크스는 의식이 황폐화된 상태에서 반드시 혁명이 수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로베스피에르의 ‘나를 따르라’는 식의 독재 행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개인에 대한 탄압을 우려한 까닭이다. 이는 볼셰비키 혁명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의 주체사상은 분명 마르크스와 레닌주의의 또 다른 변형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몰락을 점쳤다. 하지만 ‘자본’은 체제 유지를 위해 끊임없이 수정, 발전했다. 분배는 줄고, 부는 집중됐다. 자율경쟁 체제 하에서 자본은 복잡해지고 교활해졌으며, 더욱 강력해졌다.


“공산주의란 조성되어야할 하나의 상태, 현실이 이에 의거하여 배열되는 하나의 이상이 아니다. 우리는 현재의 상태를 지양해 나가는 현실적 운동을 공산주의라고 부른다. 이 운동의 조건들은 현재 존재하고 있는 전제로부터 생겨난다”(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 『독일 이데올로기』 중에서, 1846년)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극복을 통해 사회주의를 실현하고, 이것이 다시 공산주의로 발전해 가는 과정을 꿈꿨다. 북미수교 후 북한의 시장 개방화는 체제 변화를 위한 또 하나의 실험이 될 것이다. 어쩌면 북한은 공산주의 몰락과 체제 극복 사이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커버리지 정찬대 기자(press@coverag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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