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광화문은 ‘가짜’ 서울구치소가 진짜 청와대”
전체주의와 파쇼적 대중선동, 그리고 반공 이데올로기 ②
  • 정찬대 기자
  • 18.07.09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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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집회는 무엇으로 이뤄져 있을까? 태극기 집회의 ‘성분’은 무엇으며, 어떤 신념으로 조직됐을까. 그들을 ‘극우 노인’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태극기 집회에 대한 안일한 인식의 단순함이다.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서 그 의미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본 글은 필자가 쓴 <‘변형된 전체주의’ 태극기 집회 - 민주사회를 위협하는 파쇼적 대중선동>이라는 제목의 소논문을 요약한 것이다. 태극기 집회 구성원들의 참여 동기, 그들이 가진 신념, 태극기 집회가 보여주는 특성과 사회적 의미에 대해 취재한 글을 두 편에 나눠 싣는다.<편집자>


반공 이데올로기와 보수 기독교의 결합 

태극기 집회의 시작은 보수 기독교인들의 ‘구국 기도회’가 출발이 됐다. 지난 6월 25일 서울 대한문 앞에서 열린 ‘한국전쟁 기념 태극기 집회’에서도 교회 목사와 신도들이 구국 기도회를 갖는 등 예배를 진행했다. 이른바 ‘아스팔트 교회’였다.  

반공 이데올로기와 한국 교회의 역사는 그 뿌리가 깊다. 일제 강점기에서부터 해방 후, 그리고 한국전쟁과 군사독재 정권에 이르기까지 정권과 보수 기독교의 결탁은 많은 폐해를 가져왔다. 1948년 제주 4.3 당시 민간인들을 무참히 살육한 서북청년단의 악행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극우보수 단체들은 서북청년단 구국결사대까지 결성해 태극기 집회에 동참하고 있다.

극우 기독교는 반공 이념을 신도들에게 지속적으로 주입시켰다. 또 일부 대형교회는 교인들을 보수집회나 보수정당 후보의 지지대열에 동원시키기도 했다. 70대의 한 여성은 2016년 11월 7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두 번째 구국 기도회에 참석한 뒤 지금까지 매주 빠지지 않고 태극기 집회에 나가고 있다. 그는 “서경석 목사가 기도회를 한다는 얘기를 듣고 한번 가봤다. 그런 것이 지금까지 집회에 참석하게 됐다”며 “(집회 참석에) 목사님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무엇이 그를 집회로 이끌게 했을까? 그는 ‘종교적 신념’이라고 했다. “하나님이 선택한 이 나라에서 북한 빨갱이와 같은 사상을 가진 이들이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는 “교회에 애국자가 많다”는 말도 했다. ‘하나님 뜻은 그런 게 아닐 것 같다’는 물음에 “모르는 소리다. 북한이 얼마나 많은 주민을 죽이고, 인권을 침해하는데 그런 소리 하느냐”며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봐야 한다”고 되받았다. 그는 주위 친구들에게도 태극기 집회를 권한다. “태극기 집회에 안 나오는 친구들은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교인들과도 집회에 나오는데, 동참하지 않는 사람들은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고 간주했다. 그러면서 “지방에도 친구가 있는데, 멀어서 그런지 잘 안 온다. 나는 그 친구를 진짜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태극기 집회에는 탈북자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국내 전체 탈북자는 3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데, 이들 중 적잖은 수가 남한 정착에 필요한 직간접적 지원을 교회로부터 받고 있다. 남한에 안착하기 위해, 또는 사상 개조를 보여주기 위해서도 이들은 교회에 다닌다. 극우성향의 목사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기획을 위해 이들을 적극 활용했다. 태극기 집회도 마찬가지다. 개신교 연구자 김진호씨는 자신의 논문에서 “탈북 단체들의 다수는 개신교 교회의 후원을 받고 있다. 그런 점에서 탈북자 시위대들은 찬송이나 기도를 과장하여 드러내는 기독교적 제스처를 적극적으로 취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말했다. 그는 태극기 집회에 이스라엘기가 있는 것도 보수 기독교의 영향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프레시안(최형락)


“미국 없으면 대한민국은 공산화” 

태극기 집회에는 두 국기가 늘 펄럭인다. 태극기와 미국 성조기다. 집회 참가자 대부분은 미국의 원조를 받던 세대다. 한국전쟁 당시 미국이 없었다면 이미 대한민국은 공산화됐다고 굳게 믿는 이들에게 미국은 동맹 그 이상의 국가다.  

집회에 참석한 한 여성은 “미국 때문에 우리가 자본주의를 이뤘다”며 “그 은혜를 모르면 벌 받는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반 중국으로 가야 한다. 미국을 끝까지 붙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에게 미국은 동맹의 수준을 넘어 ‘구원자’로 인식되고 있었다. 미국에 대한 인식은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비슷했다. 이들은 “미국 없으면 안 된다. 그러면 대한민국 공산화된다”고 입을 모았다. 그런 그들에게 북미정상회담에 대해 물은 뒤 곧바로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의견을 구했다. 

80대 한 남성은 북미정상회담과 관련해 “북한을 계도하는 차원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 잘한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는 “문재인 하는 것은 공산당과 회담하는 것”이라며 “문재인 이북사람 아니냐. 그래서 더 신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가자도 “미국이 북한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로 끌어들이려는 것이다. 북한 아사자만 수백 만 명이다. 그런 거 생각하면 트럼프가 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묻자 “돈 퍼주면서 회담한 것”이라고 평가절하 했다. 

태극기 집회 현장에서 만국기를 판매하던 한 여성은 “‘북미’가 아니라 ‘미북’이다. 트럼프가 그렇게 한 것은 장사꾼이기에 가능했다. 미국은 확실하게 이익을 갖고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선 “문재인은 북한 지령에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것”이라며 “평화 어쩌고 하는데, 그건 국제적인 사기”라고 비난했다. 또 다른 여성도 “미국의 계획이 있을 것이다. 북한을 자유민주주의 체제 안으로 끌어오려는 트럼프의 생각이 있을 것”이라며 북미정상회담을 높게 평가했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선 “문재인이 북한의 스파이란 얘기가 있다.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회담 자체에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이렇듯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은 북미정상회담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해서도 북한을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끌어들이기 위한 의도를 갖고 회담을 이끈 것"이라고 호평했다. 반면,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선 ‘혐오’ 일색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지령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가짜 뉴스’도 스스럼없이 밝혔다. 허무맹랑한 얘기지만 이들은 이것을 ‘진짜’로 믿고 있었다. 

"친일? 지금은 한미일 공조할 때" 

2018년 3.1절 기념 태극기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일장기를 들고 나오면서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된 바 있다. 더욱이 그날은 3.1절 99주년이었다. 독립 운동가를 기리고,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는 행사가 곳곳에서 열린 상황에서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은 일장기를 손에 든 채 거리를 활보했다. 이후 집회에서도 일장기는 한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국민적 거부감이 강해 현재는 태극기 집회에서 일장기를 보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은 여전히 일본에 대해 매우 우호적으로 생각했다. 특히, ‘평화의 소녀상’ 건립이 중국 지원으로 세워지고 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그들은 중국을 견제하고 공산화를 막기 위해서도 한미일 공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인식했다. 

태극기 집회에 참석한 한 여성은 "내 롤모델(role model)이 유관순이다. 일제강점기 생각하면 물론 가슴에 맺힌다“면서도 ”지금 국제 정세는 어쨌든 한미일이 공조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여성은 또 ”중국은 한일 관계가 적대적이길 원한다“며 ”위안부 소녀상도 중국한테서 돈 받아서 설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북한 통해서 남한을 먹으려고 한다. 왜 그걸 모르느냐"고 핀잔했다. 

또 다른 참가자도 "일본이나 한국 모두 중국으로부터 위협받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한일 양국이 우호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일장기를 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공산화되느니 차라리 미국의 한 주(州)로 편입되길 더 원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참가자는 ”어쨌든 일본 때문에 중국 속국으로부터 벗어난 계기기 되지 않았느냐“며 ”지금도 중국은 우리를 속국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한미일이 반드시 공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프레시안(최형락)


"광화문은 가짜…박근혜 있는 ‘서청’이 진짜" 

태극기 집회 한 참가자는 이승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승만 박사’라 칭했다. 박정희 역시 ‘박정희 대통령’이라며 존칭했다. 그는 먹고 사는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이승만과 박정희 모두 그러한 측면에서 존경받아야할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문제를 언급하자 "이승만이 얼마나 나라를 사랑하고 국민을 사랑했는데, 무슨 소리냐. 그런 소리 할 거면 인터뷰에 응하지 않겠다"며 호통 쳤다.  

박정희에 대해서도 "5.16쿠데타 때 사람 한 명 안 죽었다. 경제발전 시킨다고 그렇게 고생했는데, 무슨 사람을 죽였느냐. 대한민국 사람들 정말 천벌 받는다“고 분개했다. 그는 ”우리가 그 시대를 살았다. 우리가 산 증인“이라며 ”왜 우리 말을 듣지 않느냐"고 따져 묻기도 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가짜“라고 말했다. 그는 ”청와대가 옮겨갔다. 진짜 대통령은 ‘서청’에 있다“며 ”광화문은 가짜가 있는 가짜 청와대“라고 주장했다. 이들이 말하는 ‘서청(西靑)’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수감돼 있는 서울구치소를 의미한다. 이어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선 ”계엄령을 선포하지 않은 게 가장 큰 잘못“이라며 ”그걸 했으면 나라가 이 꼴이 안 났다"고 분개했다.  

‘변형된’ 전체주의, 파쇼적 대중선동 

1991년 소련의 붕괴로 이데올로기 대결 시대는 종식을 고했다. 하지만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대한민국은 여전히 냉전적 대결구도를 유지한 채 ‘반공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국수주의적이며, 전위적이고, 반공주의적 대중선동은 탈냉전·탈이념 시대에도 여전히 거리 한 켠을 가득 메우고 있다. 

독일 나치의 선전장관 파울 요제프 괴벨스(Paul Joseph Goebbels)는 "거리를 정복할 수 있다면 대중을 정복할 수 있고, 대중을 정복하는 자는 국가를 정복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체주의 선동의 핵심이 대중을 단순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과거 군국주의 전체주의자들은 그렇게 고립된 개인을 조직하고 선전 선동을 통해 이들을 하나로 묶어내는데 성공했다. 이렇게 조직된 개인은 폭민이 되어 전체를 위한 도구가 됐다. 그것이 국가주의 역사이며, 반공 이데올로기를 주입한 전체주의 역사였다.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극우 반공’이 자리하고 있다. 이를 위해선 쿠데타도, 계엄령도 가능하다는 것이 기본 인식이다. 전체주의는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며 여전히 극우세력은 반동을 꾀하고 있다. 방심하고 경계심을 늦추는 순간, 정치적으로 코너에 몰릴 때 전체주의 선동은 반공 이데올로기와 더해져 예상치 못한 힘을 발휘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를 전후한 ‘태극기 집회’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개인은 전체 속에서 비로소 존재가치를 찾는다. 전제주의 체제 하에서 보여주는 대중 선동이 태극기 집회 안에도 그대로 녹아있다. 신념과 현실의 극단적 부조화를 겪는 이들, 변화를 거부하는 퇴행적 외침이 태극기 집회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한다. 

태극기 집회는 그 자체가 우리사회 고질병에 대한 갖가지 함의를 담고 있다. 분단, 반공, 노인, 가정, 세대 등 우리시대 포괄적인 문제가 태극기 집회 안에 고스란히 반영된 까닭이다. 그리고 그 안에 어르신들의 삶의 농도 함께 배어있다. 불운한 과거와 통곡의 역사, 하지만 달라지지 않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태극기 집회를 바라보며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적지 않다. 물론 그 교훈이 ‘귀감’이 되진 못할 것이다. 

커버리지 정찬대 기자(press@coverage.kr)

*본 글은 <프레시안>에 함께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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