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 역사
‘마침표’ 찍은 한일협정…대(代) 이은 충성도
韓-日 정부 “위안부 문제, 최종적이며 불가역적 해결” 선언
  • 정찬대 기자
  • 15.12.29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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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11월2일 정상회담을 갖기 전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사진=청와대)

 

박근혜 정부와 아베 신조 일본 정부가 28일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해결방안을 합의하고, 합의사항 이행을 전제로 관련 사안에 대한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을 선언했다.

 

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한 재단 설립 조건으로 일본은 10억엔(약 97억원)을 출연키로 했으며, 우리 정부는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이전 문제와 국제사회 비난 자제를 약속했다. 일본의 법적 책임은 빠졌고, 이에 따른 배상 문제 역시 다뤄지지 않았다. 국민적 비판이 거센 이유다.

 

아베 총리의 직접적인 사과 발표도 없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윤병세 외교부장관과의 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아베 총리는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으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에 대한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고 대독한 것이 전부다. 일본 정부의 입장인지, 아베 총리 개인의 입장인지도 불명확하다. 더욱이 이를 비웃기나 한 듯 아베 총리의 부인 아키에 씨는 한일협정이 이뤄진 당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한일 양국은 이날 발표문에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고 명시했다. 이를 두고 우리 정부는 고노 담화보다 진일보했고, 사사에 안(案)보다 진전됐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정치적 부담 때문인지 1965년 한일협정과 마찬가지로 공동발표문 없이 양국 장관이 각기 입장을 발표한 것으로 마무리했다.

 

앞서 1993년 일본은 고노 담화에서 ‘일본 정부는 사죄와 반성의 심정을 말씀드린다’고 했으며, 2012년 사사에 안에서는 총리가 사과 서한을 쓰고 정상회담에서 이와 관련한 내용을 표명하는 방식을 제시한 바 있다.

 

△윤병세 외교부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28일 장관회담을 갖고 위안부 문제에 대한 ‘최종적인 해결’을 선언했다.(사진=외교부 홈페이지 캡처)

부친 협정에 마침표 찍은 박근혜식 한일협정

 

이번 회담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일본의 법적 책임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위안부 문제에 대한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을 못 박았다는 점이다. “일본에 면죄부를 준 굴욕협상”이라는 각계의 비난도 이 때문이다.

 

일본 요미우리 신문은 아베 총리가 기시다 외상에게 위안부 문제 협의를 위한 방한을 지시하면서 “합의에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는 문구가 들어가지 않는다면 교섭을 그만두고 돌아오라”고 했다고 전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도 “결말이 나면 역사적인 의의가 있는 회담이 된다”며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이라는 문구를 절대적 조건으로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일본으로선 이번 협상을 통해 1965년 한일협정 논란에 대한 종지부를 확실히 찍겠다는 계산이 섰던 게다.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5년 한일협정 체결 당시 부속협정인 ‘한일청구권협정’을 통해 위안부 문제에 대한 개인 청구권을 인정하지 않는 빌미를 일본에 제공했다. 일본 정부로부터 받은 5억불(무상3억·유상 2억)도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금 형식 아닌 경제 원조를 위한 ‘독립 축하금’ 명목이었다. 이마저도 피해자 개인이 아닌 박정희 정권에 고스란히 유입됐다. 이후 일본은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모든 보상이 끝났다고 주장한 반면, 우리 측은 일제 강점기 당시 자행된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한 청구권은 남아있다고 반박했다.

 

그로부터 50년 뒤 체결된 박근혜 정부의 신(新) 한일협정은 일본 측 주장을 그대로 확인한 셈이 됐다. 재단 설립 명목으로 97억원이 지원될 뿐 개인적 배상 근거는 인정되지 않았다. 1965년 한일협정이 그랬듯 2015년 한일협정 역시 두고두고 논란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기시다 외상은 이번 회담과 관련해 “일본이 잃은 건 10억엔”이라고 했다. 배상 문제에 대해서도 “(1965년 청구권협정으로) 해결이 끝났다는데 변함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최종적이며 불가역적인 이번 해결로 (위안부) 책임 문제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이장희 한국외대 명예교수(국제법)는 29일 커버리지와 통화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65년 한일협정의 재판(再版”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이번 협정이 앞으로도 적잖은 논란거리를 제공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군 위안부 소녀상(사진=YTN뉴스 캡처)

‘헛방’친 한국, 뭐가 그리 급했나

 

이번 협정은 한일국교 정상화 50주년을 사흘 남기고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물밑 협상이 있었다고 해도 너무나 갑작스런 발표였다. 그렇다면 양국 정부가 이처럼 협정을 서두른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12월23일 헌법재판소는 한일청구권협정 위헌법률심판에 대한 각하 결정을 내렸다. 비록 판단은 유보했으나 결정문에서 한국 정부가 유족에게 주는 ‘미수금 지원금’이 보상금이 아닌 시혜적인 금원이라고 판단했다. 결국, 배상 책임은 일본 정부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양국은 그로부터 5일 뒤 협정을 체결했다. 헌재 판결이 회담의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실제 아베 총리는 헌재 판결 이후 비서관을 통해 한일협정의 연내 타결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1년 헌재의 위안부 피해자 배상청구권 문제에 대한 위헌 결정이나, 2012년 대법원의 일본 정부나 기업을 상대로 한 개인 청구권 인정 판결은 일본에 법적 책임을 지우는 근거가 됐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미쓰비시 중공업과 신일본제철 등을 상대로 배상을 요구했고, 일본 정부와 민사 조정을 시도한 위안부 할머니들은 2년 넘게 일본의 무대응이 계속되자 지난 10월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정식 소송에 돌입하기로 결정했다.

 

일본의 전범(戰犯) 기업들은 전시 배상 문제와 관련,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통해 모든 것이 해결됐다며 버티고 있다. 허나 2012년 대법원 판결 이후 미쓰비시중공업·후지코시 등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피해보상을 인정한 판결이 나오면서 분위기는 조금씩 반전되고 있다. 그런 시점에 한국과 일본이 “최종적이며 불가역적 해결”의 협상을 선언한 것이다.

 

일본 재계는 환영 일색이다. 일본 경영자 단체인 게이단렌 측 관계자는 “경제 교류는 양국 간의 외교적 안정이 대전제”라며 “위안부 합의는 긍정적인 결과”라고 반겼으며, 강제징용 피해자들로부터 소송을 당한 신일본제철 등 전범 기업도 이번 합의가 추후 있을 소송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했다.

 

이장희 교수는 이에 대해 “일본 전범 기업의 패소 판결이 나오면서 배상의 근거가 마련되는 시점에 한국 정부가 헛방을 찼다”며 “도대체 누구를 위한 협정인지 모르겠다”고 성토했다. 이어 “‘최종적 해결’이라고 못 박은 것은 결론을 내놓고 이제부터 언급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정부의 졸속 협정을 재차 비판했다.

 

한편, 임성남 외교부 1차관은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쉼터를 찾아 정부 입장을 설명했다. 이 자리에서 이용수(88) 할머니는 임 차관을 향해 “당신 어느 나라 사람이냐. 일본 외교부냐”고 울분을 터뜨리기도 했다.

 

임 차관은 “할머니가 보시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을 것”이라며 “(이번 협정의) 가장 큰 세 가지는 일본 정부의 책임 통감, 아베 총리의 사죄와 반성 언급, 피해자 지원재단 설립”이라고 위안부 할머니들을 거듭 설득했다.

 

커버리지 정찬대 기자(press@coverag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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