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 역사
아베는 왜 ‘집단자위권’에 목맬까?
이해관계 맞닿은 美-日…손 놓은 한국 정부
  • 정찬대 기자
  • 15.02.07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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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평화헌법’ 개정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사진=아베 신조 트위터)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또 다시 전쟁과 무력행사 금지를 규정한 헌법 9조 개정에 대한 야욕을 드러냈다.


아베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개헌 초안은 자위권 행사에 대한 제약을 없애는 한편 국방군 창설과 영토보전 등을 명시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일본이 ‘전력(戰力) 보유’를 금지한 헌법 9조를 개정할 경우 군대를 갖는 것은 물론 전쟁을 치르는 것도 가능해진다.

아베 총리는 지난 4일 후나다 하지메(船田元) 자민당 헌법개정추진본부장과 면담한 자리에서 내년 7월로 예정된 참의원 선거 후 개헌 찬반투표를 진행하는 안에 대해 “그것이 상식”이라고 말했다.

그간 개헌 필요성을 언급하면서도 국민적 비판 여론을 의식해 시기 등을 못 박지 않던 이전과 비교하면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일본 언론은 아베 총리의 이번 발언이 개헌 논의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또 이보다 하루 앞선 3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도 “자민당은 헌법 9조의 개정안을 제시했다”고 밝힌 뒤 “왜 개정하려 하느냐고 묻는다면 국민의 재산을 지킬 임무를 다하기 위해서”라고 말해 개헌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고토 겐지’ 이용한 아베…야욕 드러내다

 

아베 총리의 발언은 이슬람 수니파 원리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에 의한 일본인 살해 사건이 발단이 되면서 더욱 강경해졌다. 지난달 25일(현지시각) 유카와 하루나(湯川遙菜)씨가 참수된데 이어 같은 달 31일 일본인 저널리스트 고토 겐지(後藤健二)씨가 살해된 것을 등에 업고 자신의 정치적 야욕을 본격화한 것이다.

집단자위권 행사를 정치적 명운으로 삼고 있는 아베 총리에게 IS의 일본인 참살은 헌법 개정에 결정적 계기를 제공해 줬다. 그간 명분 찾기에 골몰하던 아베 총리로선 더 없는 기회가 된 셈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 2일 고토 겐지 참살 이후 열린 일본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세계 곳곳에서 인도적 지원을 하고 있는 일본 비정부기구(NGO) 요원들이 위험에 빠질 경우 자위대가 무기를 사용해 구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리고 이 갈채를 받기 위해 고토 겐지의 죽음을 끌어왔다. 결국, 개헌의 정당성을 고토 겐지에서 찾은 것이다.

실제로 그간 일본 언론을 비롯해 각계에서는 IS의 일본인 참수사태를 계기로 아베 정부가 해외 자국민 구출을 위한 자위대의 활동범위 확대 등을 꾀할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해왔다. 즉, 일본 국민의 충격과 분노를 지렛대 삼아 아베 정부가 일본을 ‘다시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바꾸는 것 아니냐는 경계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온 것이다.

 

‘격분한’ 아베, IS와의 협상은 손 놓다?

 

아베 총리는 고토 겐지의 참수 소식이 전해진 뒤 “참으로 원통하고 통한의 극치”라고 격분했다. 또 “포악하고도 비열한 테러 행위에 강한 분노를 느낀다”고도 했다. 그는 그러면서 “테러리스트들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한 어조로 분개했다. 하지만 비통해하는 그의 표정과 달리 고토 겐지 참수 전 일본이 취한 IS와의 협상 태도는 여러 의문을 남긴다.

아베 총리는 유카와씨와 고토씨가 IS에 억류된 것을 알면서도 지난달 중동 순방 당시 IS 격퇴 작전에 비군사비용으로 2억 달러(약 2165억 원)의 지원금을 내놓겠다고 했다. 이에 자극받은 IS는 온라인메시지를 통해 72시간 내로 2억 달러의 몸값을 지급하지 않으면 두 사람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했다.

아베 총리는 그러나 IS의 비난과 협박에 굴하지 않은 채 “일본이 내놓은 2억 달러는 식료품과 의료를 제공하기 위한 인도적 지원”이라며 “앞으로도 이 같은 비군사적 지원을 적극적으로 하겠다”고 물러서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총리관저 위기관리센터에 관저대책실을 설치하고, 나카야마 야스히데 외무 부대신을 요르단에 파견하는 등 신속한 움직임을 보였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두 사람의 참살이었다.

이에 대해 일본 내 진보성향의 <마이니치신문>은 “고토의 가족이 지난해부터 (IS로부터) 몸값 지불을 요구받은 사실을 정부가 알고도 (아베 총리는 중동 방문 시) IS와 싸우는 나라들에 (2억 달러) 지원을 표명한 목적이 뭐냐”고 따져 물었다.

<아사히신문> 역시 “지난해 신설된 국가안전보장국(NSC)은 어떻게 작동했느냐”며 정부의 무기력한 대응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슬람 수니파 원리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에 의해 일본인 고토 겐지씨가 참수됐다.(사진=유투브 캡처)


아베가 고집하는 집단자위권은 무엇

 

앞서 언급했듯 일본의 전쟁 책임을 부정해온 아베 총리는 집단자위권 행사를 자신의 정치적 명운으로 삼고 있다. 여기에 부응하듯 일본 내 극우 인사들은 하루나씨와 겐토씨가 살해된 직후 기다렸다는 듯이 자국민 보호를 위해 헌법 9조를 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헌법 9조 개정에 목을 맬까? 일본 헌법 9조는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써 (일본은 이를) 영구히 포기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자국 내 육·해·공군 및 그 이외의 어떠한 전력도 보유하지 않으며, 국가의 교전권 역시 인정치 않는다’고 규정돼 있다.

전쟁에서 패망한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및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데 대한 책임을 지고, 1945년 ‘항복선언’과 함께 미국의 주도 하에 이른바 ‘평화헌법’(헌법 제9조)를 채택했다.

하지만 미국은 1950년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의 안보위기가 고조되자 일본 내 치안유지 목적으로 경찰예비대를 창설토록 했으며, 이것이 1952년 보안대로 개편됐다. 그리고 보안대를 바탕으로 1964년 자위대가 발족했다. 하지만 자위대는 평화헌법 때문에 사실상 군대임에도 그 활동에 제약이 따랐다.

 

아베 정권은 이러한 제약을 없애고 일본의 국방력 강화를 꾀하고자 헌법 9조를 개정하려드는 것이다. 한국을 비롯해 동북아 국가들은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탈 야욕을 규탄하며 강한 우려감을 표했지만, 아베 정부는 이에 굴하지 않은 채 관련법 개정 작업을 진행해왔다.

 

일본의 헌법 개정 뒤에 미국이 있다?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이 오는 5월 양국 간 정상회담을 계기로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일본 방위상이 중국과 동남아 국가 간 영토분쟁 중인 남중국해까지 자위대 활동을 넓힐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혀 주목된다.

즉, 일본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영토에까지 자위대가 개입할 수 있다는 속내를 내비친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미국과 일본의 중국 견제가 본격화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지난 3일 나카타니 겐 일본 방위상은 기자회견을 통해 “현재 일본은 남중국해에서 계속적인 경계·감시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고 전제한 뒤 “이곳 정세가 일본의 안보에 끼치는 영향이 확대·심화되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어떻게 대응해 갈지가 앞으로의 과제로 인식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나카타니 방위상의 발언이) 미국 정부의 기대에 부응해 나온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자위대와 미군의 역할 분담을 정한 미·일 방위협력지침이 개정되는 가운데 관련 협의가 진행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본의 자위권 확대 움직임은 미국의 적극적인 독려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갈수록 강화되는 중국의 국방력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고육지책인 셈이다.

 

더욱이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매년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고, 2016년 미국의 경제력을 따라잡을 것이란 보고서까지 나온 상태다.(국제통화기금 IMF의 2014년도 경제보고서) 이런 상황에서 세계 경제 패권을 향한 미국과 중국 간 신경전도 격화되고 있다. 미국으로선 이런 중국이 여러모로 신경 쓰일 수밖에 없는 상태다.

 

이런 가운데 로버트 토머스 미국 제7함대 사령관은 지난달 29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남중국해에서 자위대의 활동은 장래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미국은 일본 항공자위대 소속 초계기들이 남중국해에서 비행하는 것을 환영할 것”이라며 “이런 순찰활동은 이 지역의 안정에 기여하게 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존 커버 미 국방부 대변인도 다음날 정례브리핑을 통해 “우리는 로버트 토머스 사령관의 의견에 동의한다”고 힘을 실어준 뒤 “중국이나 다른 국가들도 이와 관련해 이의를 제기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역설했다.

 

결과적으로 중국, 나아가 북한과 러시아 견제 등 동북아 안보의 다각적인 목적을 위해 미국은 일본의 집단자위권을 끌어왔고, 일본은 이를 계기로 헌법 9조를 개정하겠다는 것이다. 상호 이해관계가 가져온 결과인 셈이다.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이 미국과 일본의 ‘안보밀착’ 관계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다.

 

집단적 자위권을 통한 일본의 해외파병 및 지원이 본격화될 경우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 등 추가파병에 대한 미국의 부담(세계여론·경제적)도 줄일 수 있다. 그리고 일본은 이를 통해 자국의 국방력 강화를 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양국 간 이해관계가 맞닿는다.

 

한반도 유사시 日 자위대 파병 가능

 

지난해 10월 미국과 일본 양국은 자위대의 미군지원 범위를 ‘평시’ ‘일본 유사시’ ‘주변사태’ 등으로 구분한 규정을 사실상 철폐한데 합의한 바 있다. 이에 우리 정부는 자위대가 우리 영토에서 활동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한반도 안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자위대 활동은 우리의 요청 없이 이뤄질 수 없다”는 입장을 미국 측에 전달했다.

일본 정부는 “한국의 사전 동의 없이는 한반도에서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일본 자위권보고서를 통해 ‘당사국 동의 예외 상황’을 규정함으로써 한반도 유사시 자국민 보호를 이유로 자위대를 파병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뒀다.

 

결국, ‘한반도 유사시’가 남북교전이든, 독도문제든 언제든 자위적 해석이 가능해 자위대 파병을 유연하게 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현재 한반도의 전시작전통제권은 미국에 있다. 이러한 미국은 일본과 안보밀착 관계를 형성하며 집단자위권 행사를 묵인·동조하고 있다. 미국이 우리 정부의 동의 여부와 무관하게(또는 한국을 설득해) 일본 자위대의 한국 영토·영해 진입을 허용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이미 미국은 한국전쟁 당시 일본의 보안대 창설에 동의한 바 있다.

 

미국은 또 일본의 독도 침탈 야욕에 대해 ‘두 나라 간 협의사항’이라며 선을 그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미국이 사실상 일본의 손을 들어준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한국의 대응은 극히 제한적이거나 소극적이다. 그저 미국에 항의서한을 전달하거나, 일본에 대한 강경한 어조의 논평 외에 특별한 제스처가 없다는 점에서 이는 우리 정부의 큰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커버리지 정찬대 기자(press@coverag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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