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생활
①역사를 열다 : “가서 네 나라를 세워라”
[박성현의 ‘만인보’로 읽는 한국사]
  • 박성현 고은재단 아카이브 책임연구원
  • 16.01.19 09:56
  • facebook twitter 카카오스토리 구글플러스
  • 글자크기
  • 글자크게
  • 글자작게
  • |
  • print
  • |
  • list
  • |
  • copy

병신년(丙申年) 새해를 맞아 박성현의 '만인보로 읽는 한국사' 연재를 시작합니다. 이 연재는 박성현 고은재단 아카이브 책임연구원의 기고로 진행됩니다. 박성현 연구원은 최근까지 프랑스에서 고은 시인의 시세계를 연구하고 전파하다 한국에 이제 막 돌아온 ‘고은 전문가’입니다. 1989년 연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한 뒤, 1997년 모스크바 대학에서 미학박사를 받았으며, 이후 프랑스로 건너가 지난해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고은, 한국의 시와 역사: 만인보의 세계>라는 주제의 논문으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했습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되는 이 글을 통해 고은 시인의 연작시 '만인보'에 담겨 있는 민중의 모습과 함께 근현대 한국사를 좀더 세밀하게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첫 회를 맞아 연재 글과 연재자 인터뷰를 함께 소개합니다. <편집자>

 

△고은 시인(사진=고은재단)

 

1평짜리 특별감방에서 잉태된 ‘만인보’

 

고은 시인이 25년 간(1986~2010)에 걸쳐 총 30권, 4001편의 시로 그려낸 한국사 벽화 대작인 <만인보>는 그 탄생부터가 역사적이다. 한국문학사뿐만 아니라 세계문학사에서 기념비적이라 할 만한 이 작품은, 시인이 1980년 신군부가 조작한 ‘김대중내란음모사건’에 연루되어 죽음과 같은 어둠의 시간을 겪을 때 구상되었다. 그가 수감된 육군교도소 특별감방 7호는 박정희를 암살한 김재규가 처형되기 전까지 있었던 곳으로, 창살도 없이 30촉짜리 불빛에만 의존해야하는 1평의 공간이었다. 관과 같은 그 암흑의 공간에서 현재를 빼앗긴 시인에게 어느 날 그의 과거가 불현듯 그를 찾아온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한평생 직·간접적으로 만났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시인은 자신이 살아서 그 곳을 나가 다시 시를 쓸 수 있게 된다면 “우리 민족 구성원 하나하나의 삶에 대한 한없는 사랑을 그들의 선악을 막론하고 그려 내겠다”(고은, <우주의 사투리>, 82면)고 결심하게 된다.

 

만인보는 권별로 특성이 있어서, 1~9권은 일제강점기 당시 시인의 고향마을 사람들, 10~15권은 1970년대 민주화운동의 인물들, 16~20권은 한국전쟁, 21~23권은 4.19 혁명, 24~26권은 여러 시대의 불교승려들, 27~30권은 광주민중항쟁을 주로 다루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고대, 중세, 근대를 다 포함하며 한국사 전반을 아우르고 있다. 그래서 만인보를 여는 첫 시는 “부여땅 몇천리 / 마한 쉰네 고을마다 변한 진한 마을마다 / 나와 너 사이 만남이 있”음을 강조하고, 만인보가 “이 오랜 땅에서” 일어난 “어느 누구도 저 혼자일 수 없는 / 삶의 날들”을 그려갈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만인보가 너와 나의 만남을 중시하는 것은 “사람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기어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서시’, 1권)

 

새해 벽두에 읽어보는 1권 ‘고주몽’ 편

 

2016년 오늘, 우리는 새해 벽두에서 아마도 저마다 새로운 시작을 꿈꾸거나 새로운 각오를 다질 것이다. 만인보 1권에는 새로운 나라를 시작하는 주몽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한밤중 아들을 떠나보내며 어머니는 말한다: “가라 / 가서 네 나라를 세워라 // … // 이 땅의 아들이거든 / 아들이여 / 가서 네 나라의 말로 말하라 / 아버지를 버려라 / 아버지를 버려라 / 아버지의 성을 버리고 네 성을 칭하라”(‘고주몽’, 1권). 그 결과 “졸본땅 비류수 기슭에 나라가 태어”나게 된다.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의 이야기를 전하는 역사기록은 크게 셋으로 나뉘는데, 첫째, 고구려 금석문인 광개토왕비와, 광개토왕때 북부여 수사로 재직한 것으로 알려진 모두루의 묘지 기록, 둘째, 중국의 기록인 <위서> 고구려전과 <주서>·<수서> 고려전, 셋째, 국내 전승 자료로서 <동명왕편>에 인용된 <구삼국사>(삼국사기 이전의 사서로 현전하지 않음)의 내용과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삼국유사> 등이 그것이다. 414년에 건립된 광개토왕비는 “옛적 시조 추모왕이 나라를 세웠는데 (왕은) 북부여 출신으로, 천제의 아들이었고 어머니는 하백의 따님”이라고 알리고 있다. 모두루묘지는 추모성왕을 천제의 아들 대신 일월의 아들로 묘사하고 있으나 나머지는 동일하다.

 

추모 또는 주몽(<위서>에 의하면, ‘활을 잘 쏜다’는 뜻의 부여말)은 우리에게 동명성왕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이는 추모왕 사후에 붙여진 이름이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의 ‘동명왕 조’나, 이규보의 <동명왕편>이 <구삼국사>를 인용해 주몽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도 주몽과 동명왕이 동일시되기 때문이다. 대체로 우리에게 친숙한 주몽의 이야기는 <삼국사기>의 것인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부여왕 해부루가 금빛 개구리 모양의 아기를 돌 밑에서 발견해 태자로 삼고 동부여로 옮겨 간 후 이 금와가 해부루를 이어 왕이 된다. 금와왕은 천제의 아들인 해모수의 아이를 잉태한 하백의 딸 유화를 만나 그녀를 거두는데, 유화가 알을 낳자 그 알을 짐승에게 버리지만 짐승들의 보호로 주몽이 태어난다. 뛰어난 주몽의 능력을 두려워 한 금와왕의 자식들과 신하들이 주몽을 죽이려하자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멀리 보내게 되고, 주몽은 결국 졸본의 비류수 가에 고구려를 세우고 ‘고’로써 성을 삼는다는 줄거리이다. 이렇듯 훨씬 후대의 사서인 <삼국사기>(1145)나 <동명왕편>(1193)은 고구려 당대의 기록인 광개토왕비나 모두루묘지에서 주몽을 하백녀가 낳은 천제의 아들 혹은 일월의 아들로 묘사하는 것, 또한 <위서>(554)에서 하백녀가 일광의 감응에 의해 주몽을 낳았다고 한 것과는 달리, 해모수, 유화, 해부루, 금와왕 등에 관한 설화가 첨가되어 있다.

 

주몽신화 원형은 부여 시조 동명신화

 

그런데 사실 주몽신화의 원형은 알려진 바와 같이 부여의 시조인 동명신화이다. <삼국사기>고구려본기에 쓰인 ‘동명성왕’이라는 시호가 후대에 나타났다는 점과, 중국의 사서들이 동명과 주몽을 각각 부여의 시조와 고구려의 시조로 구분하고 있다는 점 등 여러 연구자료들을 바탕으로 역사학계에서는 대체로 그 둘을 다른 인물로 보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고구려가 자신을 부여의 정통적인 계승자로 간주해 부여의 시조인 동명왕의 이름을 추모왕에게 왕호로 붙인 것이라 추측하기도 한다. 백제 역시 자신을 부여의 계승자로 표명했고 건국신화에 동명신화가 포함되어 전승된다는 점을 볼 때, 부여의 위상이 갖는 중요성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는 한편, 다양한 건국신화들을 통해 당시 부족들의 역사를 추적하거나 고대국가를 형성해가는 정치세력들 간의 관계를 주목하게 된다. (만인보 28권의 “유리왕”이 계루부 고씨와 소노부 해씨의 세력다툼을 언급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부여의 동명신화는 후한 대에 왕충이 지은 <논형> 길험 편, 진 대에 씌어진 <삼국지> 부여전에 인용된 <위략>, 그리고 <후한서>의 부여전이 있는데, <논형>에 실린 내용이 1세기에 채록된 것으로 추정되는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논형>에 따르면, 탁리국 왕의 시녀가 하늘로부터 내려온 달걀같은 기운으로 인해 동명을 낳게 되고 자신을 죽이려는 왕을 피해 달아난 동명은 부여를 건국하게 된다. (탁리국이 <삼국지>부여전에는 ‘고리국’으로, <후한서> 부여전은 ‘색리국’으로 기술되지만 동일한 나라를 뜻한다)

 

시적 상상력을 발휘해 들려주는 해모수·해부루 신화

 

만인보는 사서들의 여러 변형본에 기반하면서 시적 상상력을 발휘해 해모수, 해부루 등의 설화를 들려준다. “신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그 미분의 태고 존재 / 해모수의 아들 해부루 / 동부여땅 / 그 해부루 / 바위 밑 금빛 개구리를 아들로 삼고 나서 / 죽었다”(‘해부루’, 14권). 시가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해부루의 사체는 6개월이 지난 후 무덤에 묻히게 되는데 이 때 살아 있는 사람인 신하들과 무덤을 만든 인부들 3백명도 함께 묻히게 된다. “해와 불을 섬기는 족속의 시작이 / 이렇게 산 사람을 함께 묻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 해모수 / 해부루 / 금빛 개구리 따위 / 만들고 만들어진 상고시대의 전설 / 그러나 거기서부터 차츰 / 고대 대륙국가 고구려의 모습이 움터나오고 있었다 / 역사는 / 그 이전의 역사를 힘없는 신화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앞의 시).

 

마지막으로, 부여의 건국신화를 묘사한 다음의 시는 역사를 시로 읽을 때만 맛볼 수 있는 재미를 줌과 동시에, 상고사가 2000년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현재로 연결되는 의미를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임금이 그 알을 돼지우리에 던져버리라 해서 버렸더니 / 돼지 내외가 감싸안고 / 이번에는 / 마구간에 던져버렸더니 / 말도 / 쿠르르쿠르르쿠르르 / 애지중지 보살피기에 / 에라잇 내비둬라 / … / 송화강 / 늙은 거북 타고 속 타며 달아나 / 후유 한숨 뒤 / 열일곱살로 / 새 세상을 여니 / 부여국이라 // 세상의 닭알들이여 새알들이여 / 어서 태어나 애비 없는 자식이여 / 나라 잃은 땅에 / 나라 세워라 / 빼앗긴 나라 찾아라 // 때는 1926년 북풍한설의 어느날”(‘부여의 시작’, 27권).

 

마찬가지로,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대한민국에서, “가서 네 나라를 세워라”, “가서 네 나라의 말로 말하라”, “아버지의 성을 버리고 네 성을 칭하라”라고 외치는 시 ‘고주몽’은 사뭇 의미심장하다.

 

※ 필자 주: 모든 시는 창비출판사의 2010년 완간개정판으로부터 인용합니다.

 

 

박성현

고은재단 아카이브 책임연구원

원문: 뉴스토마토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