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 팬택 사태로 본 독과점과 정치서비스 시장
팬택의 좌절과 진보정치…카르텔 정당의 ‘나쁜 경쟁’
  • 송종민 시민기자
  • 15.06.24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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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경쟁’이 있고, ‘나쁜 경쟁’이 있다. 좋은 경쟁은 국가공동체를 이롭게 한다. 또한 경쟁 기업을 누르기 위해 소비자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탄력적으로 대응하여 소비자를 만족시킨다. 부단한 자기개발과 공정한 내부경쟁은 내부 혁신을 불러와 기업 경쟁력을 강화시키고, 건강한 기업들의 건전한 경쟁은 국가의 경쟁력을 배가시키며, 민생의 안전을 도모하기도 한다.

 

반면, 나쁜 경쟁은 국가공동체를 해롭게 한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상대 기업을 각종 꼼수를 동원해 공격하고 소비자를 기만한다. 만성적 나태함과 보신주의는 방만한 경영을 불러와 해당 기업은 물론 국가 경제를 좀먹고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의 몫으로 되돌아온다.

 

가장 나쁜 경쟁의 형태 중 하나가 독과점 시장이다. 독점은 해당 재화의 공급과 수요를 특정 세력의 지배구조에 놓이게 만들어 효율적인 분배를 불가능하게 하고, 소비자의 선택 권리를 앗아가 종국적으로 국가경제를 파멸시킨다. 교통을 위시한 일종의 ‘망’산업이나 의료·공교육과 같은 시장을 제외하면 독점은 그 자체로 악이다.

 

과점 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독점이 주는 폭압적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 경쟁이라는 분칠을 하고 있으나, 그 악랄한 수법과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는 독점시장 병폐의 맨얼굴을 그대로 보여준다.

 

△서울 상암동 팬택 사옥(사진=YTN뉴스 캡처)

팬택의 좌절과 독과점, 그리고 국가의 책임 방기

 

벤처기업 신화의 전설로 남게 될 팬택을 봐보자. 며칠 전까지만 해도 기업청산의 위기를 맞던 팬택은 결국 새 주인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16일 서울중앙지법은 옵티스 컨소시엄과 팬택의 인수합병양해각서(MOU)를 인정했다. 지난달 26일 팬택이 신청한 법정관리 절차를 두고 고민 끝에 옵티스를 팬택의 구세주로 인정한 것이다. 한 달여의 실사과정을 거쳐야 실체적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이지만, 일단 기존의 팬택 임직원들과 추이를 걱정스레 지켜보던 국민들은 한숨을 놓게 됐다.

 

1991년 창업자 박병엽 부회장이 단돈 4천만원으로 세운 무선호출기(속칭 ‘삐삐’) 제조업체가 굴지의 대기업 틈새를 공략하며 자리매김하는 모습은 90년대와 2000년대 초를 관통하는 ‘벤처신드롬’의 한가운데에서 더욱 빛났다. 내로라하는 대기업이 나자빠진 IMF 대환란 속에서도 오히려 단말기 시장으로의 진출과 모토로라와의 제휴, SK텔레텍과의 합병 같은 과감한 공세적 전략으로 위기를 성공으로 전환시킨 업적 또한 크다.

 

그렇다면 팬택은 왜 몰락했을까? 사주인 박병엽 부회장을 위시한 경영진에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과연 그게 전부일까? 20년 넘는 시간동안 견고한 대기업들 사이의 카르텔 안에서 팬택이 어떻게 생존했고, 또 어떻게 질식했는지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아울러 국가 책임은 없는지도 돌아봐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이동통신 시장은 전형적인 독과점 형태를 띠고 있다. 소비자에게 투명한 정보제공 없이 그럴듯한 사탕발림과 현란한 과장광고로 눈속임하면서 시장의 효과적 개선 또한 이뤄지지 않고 있다.

 

3년 전 구매한 스마트폰을 현재 별 문제없이 사용하고 있는 필자는 기기 값이 천차만별인 이유를 모른다. 지역에 따라, 또는 불과 며칠 사이에 가격이 몇 십만 원 넘게 차이가 나는 이유 역시 알지 못한다. 보조금이 어떤 명목으로 책정되는지 이해하지 못하며, 매달 명목을 바꿔가며 교묘히 부풀려진 통신요금 또한 머리를 아프게 한다.

 

두 개의 거대한 기업이 담합 하에 책정한 가격과 서비스의 질을 기계적으로 수용해야 함에도 국가는 뾰족한 수를 내놓지 못한다. 혹여 제2, 제3의 팬택이 출현한다 해도 거대 자본으로 압사될 개연성이 농후하지만 별다른 대책이 없다. 시장자본과 밀접히 유착되어온 역대 정권을 찬찬히 복기해보면 못한 게 아니라 의지부족이 더 정확한 진단일 듯하다.

 

△국회의사당(사진=국회)

정치서비스의 독과점 형태…거대 양당의 카르텔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간 지 오래다. 하지만 정치서비스 시장의 독과점화는 그 역사가 유구하고 문제 또한 심각하다. 직업으로서의 정당정치는 이미 산업화된 지 오래다. ‘쇄신’을 강조하며 그때그때 간판만 바꿔 달았을 뿐 두 개의 거대 기회주의 정당은 각자의 지역기반을 홈그라운드로 안정적인 점유율을 유지한 채 양당이 공생하는 ‘상생’의 정치를 하고 있다.

 

거대 양당은 정치서비스 시장에서의 소비자인 국민이 원하는 혁신을 외면하고 있다. 굳이 그런 귀찮은 일을 하지 않아도 그들은 여전히 안전하기 때문이다. 정권을 잡으면 ‘전권’을 쥐고, 정권창출에 실패해도 제1야당으로서의 체면과 권위는 유지된다. 더욱이 국회의원 지위 또한 그대로 유지되므로 국민을 위한 경쟁과 혁신은 이들에게 무의미하다. 결국, 개인의 입신과 영달을 위한 공천 전쟁만 남을 뿐이다. 마치 기업에서 개인의 보신만 일삼는 ‘나쁜 경쟁’처럼.

 

정치권 스스로의 건전한 정책적 경쟁이나 내부혁신은 구조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독과점은 스스로 규칙을 바꾸지 않기 때문이다.

 

선거제도 변화가 불가능할 경우 정치권을 긴장시키고 국민에게 다른 선택이 있음을 인지시킬 실력 있는 제3의 세력을 키우면 된다. 제3정당의 출현은 기존의 거대 카르텔정당을 자극시키고 정책적·문화적으로 영향을 끼치며 궁극적으로 국민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준다. 미국의 녹색당이나 유럽의 좌파정당은 설사 집권하지 못하더라도 거대정당들이 친환경정책을 적극 수용하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했다.

 

과거 진보당이 있었고, 민주노동당이 있었으며, 국민참여당과 통합진보당을 거쳐 현재의 정의당이나 여타 진보정당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들 역시 결국은 규칙의 변화를 이끌어 내거나 국민들에게 그들의 존재 의의를 효과적으로 증명하지 못한 채 팬택의 길을 걷고 있다.

 

허나 그렇다 해도 제3정당 내부에 모든 책임을 물어선 곤란하다. 힘이 약한 정당의 경우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제도적·문화적 제약이 분명 존재하고, 진보정당들을 무력과 비민주적으로 탄압해온 역대 정권과 현재의 권력 역시 제3세력의 결속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제3의 세력과 합리적 조정자로서의 국가적 책임, 그리고 무엇보다 소비자와 국민의 문제의식이 결합되어야 독과점시장은 효과적인 균열이 생길 수 있게 된다.

 

독과점하에서 힘이 약한 세력이 살아남는 방법은 매우 힘들고 비루하다. 옵티스는 고용승계 과정에서 전체 1,200명의 직원 중 특허와 연구 인력을 포함한 400여명 정도만 끌어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값싼 노동력을 위해 생산거점도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로 이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의당과 노동당, 국민모임, 노동정치연대 등은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선언했다. ‘어차피 또 분열하겠지’와 같은 체념적 비아냥에 앞서 옛 통합진보당 세력들도 함께 할 방법은 없는지 고민해본다. 일부 특정 세력이 갖고 있는 비상식적인 조직문화와 시대착오적인 사상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는 진보는 누군가를 내리게 하는 정치가 아니라 꾸역꾸역 함께 가는 정치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진보라고 자칭하는 모든 세력들은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에 참여하지 못한 옛 진보세력들의 미래에 대해서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낙오자를 만들지 않는 문화적 토양과 문제의식만이 거대자본과 권력으로 사회를 쥐락펴락 하는 한줌의 세력에게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이기 때문이다.

 

커버리지 송종민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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