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 ‘종박’도 ‘종북’ 못지않게 위험하다
유교시대 선비들의 대쪽 같은 기개는 어디 갔나!
  • 하석태 칼럼
  • 15.06.29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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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주변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박 대통령과 가까운 ‘친박’과 대통령과 거리를 둔 ‘비박’ 또는 ‘멀박’이다.

 

그 중 친박은 여러 부류로 분류된다. 대통령과 오래전 인연을 맺은 ‘구박’, 최근에 가까워진 ‘신박’, 장관으로 발탁된 ‘왕당파’, 조건을 달지 않고 대통령의 교시를 떠받들고 대통령을 보위하는 행동파인 ‘종박’이 있다. 현재 국가적 차원과 국정 성패의 관점에서 볼 때 이들 ‘종박’은 ‘종북’ 못지않은 위험요소들을 안고 있다.

 

영어표현에 악마의 주장(devil's advocate)이란 말이 있다. ‘사장님 의견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의 주장’이란 뜻이다. 그러한 주장이 어느 정도 용납되느냐에 따라 그 회사, 그 나라의 건강성을 측정할 수 있다. 현재 박대통령 주변의 ‘종박’들에게서는 악마를 자처하는 충신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MB정권 하에 4대강 운하 개발을 반대한 각료가 임기 5년간 단 한 명도 없었다. 제1야당의 끈질긴 반대투쟁도 전무하다. 결국, 4대강 사업으로 국토는 피폐해졌고,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녹조 현상으로 물은 썩어가고 있다. 또 식수원 확충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10억여 톤의 수량을 댐에 가둬놓았지만, 운하만 염두에 둔 채 농수로는 마련돼 있지 않아 가뭄 시 농토는 타들어가고 있다.

 

어떤 생산성도 찾아 볼 수 없는 사업에 전국 대학생들의 4년 치 등록금에 해당되는 25조의 예산이 낭비됐고, 해마다 유지 보수비로 전국 초중등 학생들 급식비의 2배인 700억원이 낭비되고 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MB는 물론이거니와 이 사업에 동조하고 공식문서에 서명한 각료들은 전원 법적·물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아울러 4대강 사업에 협조하고, ‘명박어천가’를 불렀던 학자들 역시 학계에서 물러나야 하며, 수혜자들이 받았던 연구 용역비 또한 100% 배상해야 한다.

 

MB정권과 박근혜 정부 모두 악마를 자처한 이들의 용기는 전무하고, 부당한 주군의 횡포에 맞서 싸웠던 유교시대 선비와 같은 기개 또한 찾을 수 없다.

 

수십 년에 걸친 전쟁을 통하여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진나라도 망하기까지는 16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위록지마의 간신 ‘조고’와 소신 없는 승상 ‘이사’ 대신에 진정으로 진시황과 조국 ‘진나라’를 걱정했던 충신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진나라의 역사는 그렇게 허망하게 종식되지 않았을 것이다.

 

참여정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반대 입장표명’에 반대해 “‘계급장’ 떼고 토론하자”고 제의했던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과 같은 인물은 8년 보수정권 기간 동안 단 한명도 찾아볼 수 없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MERS)로 인해 누적된 사망자 수는 32명(6월28일 오전 현재)이나 되고, 제3, 4차 감염자가 속출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박 대통령은 자신이 입은 자존심의 상처를 국민 전체의 생명과 건강보다 중요시하게 생각하는 듯하다.

 

대통령이 입은 상처에 대한 측근들과 일부 친박 의원들의 배려와 위로는 상상을 초월한다. 다함께 국회법 개정에 찬동했던 기억은 사라진 채 자신들이 뽑은 원내대표에게 대표직 사퇴를 외치더니 이제는 정계은퇴까지 요구하고 있다.

 

대통령이 서슬 퍼렇게 톤을 높여 교시를 내린 지난 25일 국무회의 풍경은 70년대 유신시대 긴급조치를 발표하던 박정희 대통령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그 자리에서 한 마디 반론도 제기하지 못하는 장관들이 초라해 못해 불쌍해 보였다.

 

박근혜 정부 성공에 필요한 인물은 국회의원 본분을 망각한 일부 친박 아첨꾼도, 대통령 앞에서 주군의 귀나 즐겁게 하고, 세상 민심을 차단하는 차지철 유형도 아니다. 오히려 대통령 의견에 반하여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끔 충언할 수 있는 악마를 자처한 인물들이다.

 

일부 보도에 의하면 비박계 몇몇 의원들은 대통령이 잘못하고 있다고 항변한다고 한다. 이름을 안 밝히거나 ‘오프 더 레코드(off the record : 비보도 전제)’로 할 것이 아니라 용기 있게 당당히 국민들을 대변해 줄 것을 요구한다.

 

현재 박 대통령에게 가장 효과 있게 직접적으로 간언하고, 국정을 올바른 방향으로 가게끔 이끌 수 있는 자들은 야당 인사들보다 새누리당 의원들 당신이다.

 

역사는 이 어려운 시대에 당신들이 어떤 처신을 했는지 기억할 것이며, 그 행동의 결과에 따라 십상시(十常侍), 간신배, 국민 배신자, 민주주의 옹호가 등으로 나누어 기록하고 증언할 것이다.

 

 

하석태 전 경희대 교수

원문: 서울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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