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 대통령과 헌법
‘행정부 수반’ 심기에 ‘독립적 헌법기관’ 굴복하다
  • 정용해
  • 15.07.20 13:46
  • facebook twitter 카카오스토리 구글플러스
  • 글자크기
  • 글자크게
  • 글자작게
  • |
  • print
  • |
  • list
  • |
  • copy

 

△사진=커버리지 자료사진

 

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사퇴의 변이 시중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유 전 원내대표는 사퇴 후 여권의 대권후보 지지율 1위 자리까지 거머쥐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이 매우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겠으나, 어찌됐건 국민의 마음속을 흔들어 놓은 것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이러한 파장의 중심에는 어떤 요소가 작동한 것일까? 그것은 바로 민주공화국을 내세운 헌법적 가치의 강조에 있다.

 

유 전 원내대표는 사퇴의 변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고 했다. 바로 이 대목이 국민의 마음속을 파고든 근본적인 요소로 보여 진다.

 

유 전 원내대표가 밝힌 헌법적 가치는 두 가지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첫 번째는 대통령이 국회의 여당의원이 뽑은 원내대표를 직접 거론하며 ‘배신의 정치’라고 규정하고, 원내대표 사퇴를 몰아붙인 것에 대한 비판이다.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독립적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에 대한 찍어내기가 과연 헌법으로 민주공화국을 규정한 국가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일인가?

 

과거 엄혹한 군사독재를 이겨내고 국민의 힘으로 만들어 세운 민주 헌법의 가치가 한순간에 무용지물이 되는 순간이었다. 대통령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음을 확인시켜준 행위이며, 권력의 운용이 과거로 회귀하고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 점을 헌법적 가치를 활용해 유 전 원내대표는 지적한 셈이다.

 

두 번째는 이 사건의 발단이 된 국회법개정안 문제다. 국회법개정안은 국회 상임위원회가 행정입법의 수정 및 변경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요골자다. 이를 대통령은 위헌이라고 규정하고 거부권을 행사했다.

 

국민의 삶을 제어하는 법적 제약은 오직 국민의 대표만이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상식이다. 법령의 본래적 취지를 훼손할 수 있는 행정입법에 대하여 국회가 심의권을 갖는 것 역시 삼권분립의 본래적 의미의 입법권을 바로 세우는 작업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이를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박 대통령의 관점은 과거 유신헌법적 관점에서나 가능하다. 유신헌법은 우리 모두가 인지하듯 행정권 우위의 헌법적 체계였고, 한마디로 독재헌법이었다. 이런 관행으로 만들어진 행정입법의 제도는 마땅히 수정돼야 한다. 그리고 모든 입법권의 본질적 권한은 최종적으로 입법부가 가져야 하는 것이 너무나 상식적인 일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얘기는 민주주의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삼권분립이 제대로 지켜지는 것을 의미한다. 유 전 원내대표 사퇴의 변이 국민의 마음을 울린 것은 바로 이러한 민주주의 원칙인 헌법적 가치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제67주년 제헌절을 맞이해 김무성 대표를 비롯한 새누리당 의원들이 대거 기념식에 참석했다. 박 대통령도 이날 헌정회 임원들과 오찬을 갖는 등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된 날을 기렸다. 불과 며칠 전 헌법의 지엄한 가치를 내버린 이들이 민주공화정의 이념을 되새기기 위한 행사에 참석한 건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헌법적 원칙과 가치는 대통령 의지에 따라 변화하거나 좌우될 수 없다. 만약 그렇다면 이는 민주주의의 기틀을 짓밟는 행위다. 헌법을 수호해야할 의무가 있는 행정부 수반, 그리고 독립적 헌법기관인 입법부 모두 이러한 법과 원칙, 정의의 가치를 한번쯤 되새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용해(한결미래정치연구소장·정치학박사)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