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 국민의 정치 참여, 야당이 만들어 간다
정치 혐오증과 한국 민주주의 위기
  • 정용해
  • 15.10.07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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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총선을 앞두고 여야 정치권이 심하게 술렁이고 있다.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당 대표 지위가 흔들리고 있고, 물밑에선 공천 방식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전쟁이 한창이다.

 

정치권의 이 같은 술렁거림은 민주주의 발전과 분명 거리가 있다. 국민 생활과도 이질감이 크다. 각 정당의 이전투구는 정치와 국민 간 간격을 벌리고 있다는 점에서 보는 이로 하여금 한숨이 절로 난다.

 

정치권이 발 앞에 놓인 총선에 골몰하는 사이 삶의 무게에 짓눌린 국민의 아우성은 더욱더 커져갔고, 자신의 문제에 어떤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하는 정치권을 보면서 이를 혐오하기 시작했다.

 

정치가 국민으로부터 멀어진다는 것은 야당의 집권 가능성도 멀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혐오가 깊어질수록 야당의 존재 의미 또한 희매해 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야당이 집권했던 순간들을 돌이켜보자! 국민들은 정권교체 또는 정권 재창출을 통해 삶이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러한 믿음은 정치에 대한 관심과 참여로 나타났고, 이러한 참여는 정권교체와 정권 재창출을 만들어 내는 원동력이 됐다. 허나 그러한 열망과 참여로 만들어낸 정권은 보수정권과 그리 큰 차이를 보이지 못했다. 오히려 더 큰 실망감을 안겨줬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국민들은 10년간 현 야당에게 정권을 맡겨 보았다. 권력형 비리는 그대로였고, 빈부의 격차는 나아지지 않았다. 비정규직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으며, 국민의 삶도 피폐해졌다. 이에 대한 반발로 탄생한 정권이 바로 이명박 정부다. 민주주의는 조금 후퇴되어도 좋다고 여겼다. 삶이 나아질 수만 있다면 조금은 부패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민주주의는 후퇴됐고, 국민의 ‘정치 혐오증’은 더욱 커져만 갔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정치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그러나 야당은 국민이 정치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동기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과거 10년간 권력을 행사했던 자들은 아무런 반성 없이 친노와 비노로 나뉘어 싸움질에 열중이다. 과연 이들에게 어느 국민이 희망을 발견하고 정치에 대한 관심을 기울일 수 있겠는가.

 

지난 과거는 역사다. 비록 전직 대통령이 비극적 삶을 마감했다고 하더라도 그 과거의 역사가 사라지진 않는다. 노 전 대통령 퇴임 직전 지지율이 바닥을 쳤던 이유는 커다란 기대감에 대한 실망도 있었지만, 근본적인 변화를 이루어내지 못한 무능에 대한 질책이 컸다. 그리고 이는 배신감으로 다가왔다.

 

소위 지금 친노라 불리는 집단 속에는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법률 제정에 앞장선 자, 노동 탄압을 서슴지 않았던 이들이 적지 않다. 더욱 한심한 일은 이번 노사정위원회의 국감장에서 벌어졌다.

 

노사정위원회 김대환 위원장은 노사정 협상 결렬을 책임지고 사퇴한 지난 4월부터 협상이 재개된 9월까지 매월 600여만 원에 가까운 업무추진비를 받아온 것이 드러났다. 사퇴한 사람에게 사례금 명목으로 매달 돈을 지급한 것이다. 앞서 노사정위원회는 김 위원장 복귀 후 이른바 ‘쉬운 해고’를 골자로 한 노사정 대타협안을 발표함으로써 적잖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김 위원장은 참여정부에서 노동부장관을 지냈다. 허나 이런 인사를 장관에 앉힌 친노세력 누구도 이 같은 과오에 대한 진정한 반성이 없다. 상황이 이러니 정치 참여에 대한 국민의 열정이 솟아날리 없다. 기존 정치권에서 탈피해 새로운 정치세력을 열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소위 기득권으로 대표되는 기존 정치세력은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을 위해 백의종군하는 것이 지난 역사의 과오에 대한 올바른 반성일 것이다.

 

반성이 없는 역사는 과거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또한 새로운 역사를 만들 수도 없다. 과거 정권에서 일익을 담당했던 이들이 한 켠으로 비켜서서 새로운 인물이 등장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이 바로 국민의 정치 열정을 끌어올리는 일이며, 이는 곧 야당이 다시 사는 길이기 때문이다.

 

정용해(한결미래정치연구소장·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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