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새정치연합의 ‘규율권력’…막말징계에 담긴 ‘정치적 획일성’
DJ “민주주의는 시끄러운 것”…‘정치적 경직성’ 경계
  • 정찬대 기자
  • 15.06.17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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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좌)와 김상곤 혁신위원장.(사진=새정치연합 홈페이지)

 

“민주주의란 게 원래 시끄러운 것 아닌가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생전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현대 ‘노동문학’의 대표로 꼽히는 박노해 시인도 ‘민주주의는 시끄러운 것’이란 글을 통해 “하나의 꽃만 질서정연한 대지는 인공의 대지”라며 “민주사회는 늘 시끄럽고 부딪치고 소란스러운 것”이라고 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최근 ‘말’ 때문에 시끄럽다. 일부 의원의 발언이 ‘해당행위’로 간주되면서, 당 윤리심판원에 제소되는 등 ‘말 정화작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새롭게 구성된 제2기 윤리심판원도 부적절한 언행에 대해 “엄한 잣대를 적용하겠다”며 엄중 경고했다.

 

앞서 ‘공갈 사퇴’ 발언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킨 정청래 의원은 ‘당직 자격정지 1년’이란 중징계를 받았다. 이를 두고 정치권 안팎에선 ‘과하다’와 ‘본부기를 보여야 한다’는 의견이 맞서기도 했다. 정 의원은 현재 재심을 신청한 상태다.

 

‘정청래 사태’가 봉합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번에는 ‘새누리당 세작’ 발언이 터져 나와 당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친노(친노무현)계 김경협 수석사무부총장은 ‘문재인 지도부’를 흔드는 비노(비노무현) 진영을 향해 “새누리당의 세작(간첩)”이라고 말해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 윤리심판원은 즉각 김 부총장에 대한 징계 절차에 착수했다.

 

당 혁신위원회에 대해 “문재인 대표의 전위부대 같다”고 한 조경태 의원 역시 윤리심판원의 칼날을 비켜가지 못했다. 그간 문 대표 사퇴를 강하게 요구한 조 의원은 일부 당원으로부터 제명 압박까지 받았다. 윤리심판원은 오는 25일 조 의원에 대한 징계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김상곤 혁신위원장은 “막말은 반혁신”이라며 “공천 불이익을 주겠다”고 엄포를 놨다. 이에 조경태 의원은 “혁신위가 공천위원회는 아니다. 당을 위한 쓴소리와 막말을 구분하라”며 맞받았다.

 

과거에도 숱한 막말이 있어왔다. 여야가 치고받는 ‘언쟁’은 차치하더라도, 때론 수준을 의심케 하는 당내 발언도 적지 않았다. 집권여당의 부침도 한몫했겠지만, 정치적 자율성과 다양성이 존중된 참여정부에서 이 같은 비방이 특히 더 많았다.

 

2007년 2월 열린우리당 내 계파갈등이 신당파와 신당반대파로 나뉘면서 극도의 감정싸움이 벌어졌다. 통합신당파 강봉균 정책위의장이 김근태 의장에게 “좌파는 2선으로 물러나라”고 막말을 퍼붓자, 김 의장은 “한나라당으로 가라. 한나라당으로 집결하라”고 맞공세를 폈다.

 

2005년 3월 열린우리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송영길(전 인천시장) 의원이 ‘김근태 연대-정동영 적대’ 견해를 밝힌 유시민 의원에게 “자신이 노빠 주식회사 대표이사인데, 내 앞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팔지 말라고 으름장 놓는 완장 찬 골목대장 같다”고 힐난했다. 또 “‘유빠’들이 하이에나처럼 몰려들어 물어뜯는다”고도 했다.

 

이외에도 2002년 7월 민주당 송영진 의원은 자신보다 무려 12살 많은 5선의 조순형 의원에게 “자기 X꼴리는 대로 하네” 등 입에 담기도 어려운 욕설을 퍼부어 파문이 일었다.

 

물론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발언은 이보다 더했다. 상스러운 욕설과 정치적 색깔 공세는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다.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에게 한 도 넘은 조롱은 지금 들어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어쨌든 우리는 이 같은 발언을 보면서 의회의 수준을 비판하면서도, 소위 ‘정치적 민주주의’가 한 단계 발전한 것으로 여겼다. ‘정치적 성숙’은 둘째치더라도 언로(言路)가 차단된 군사정권에서 목숨 걸고 뺏어온 ‘민주주의’의 또 다른 모습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물론 ‘말에는 품격이 있다’, ‘자기가 뱉은 말에 책임져야 한다’는 지적도 틀리지 않다. 정말 중요하다. ‘정치’를 업으로 하는 이들에게 이러한 덕목은 특히 더 그렇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다양성이 존재하는 우리사회에 상대방에 대한 비판이 ‘막말’로 치부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그것이 의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정파의 이념에 따라야 한다는 발상은 ‘독재’ 또는 ‘공산주의 국가’에서나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민주주의는 시끄럽다”는 말은 민주주의에 대한 아주 명확한 진리이자 정의다.

 

‘일사분란의 효율성’은 우리에게 장기간 독재를 강요했다. 박정희 독재정권이 그랬고, 전두환 군사정권이 그랬다. ‘규율 권력’을 통해 기계적 획일성을 강조하면서 다양성을 말살하고, 창조적 아이디어를 억제했다. ‘운동권’을 훈장처럼 여기는 새정치연합이니 그 부작용과 폐해에 대해선 열거하지 않아도 너무 잘 알 것이다.

 

그런데 새정치연합의 최근 분위기는 ‘막말’이란 이유로 과도한 획일성을 요구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당 지도부, 혁신위, 윤리심판원까지 나서 ‘막말 징계’ 운운하며 엄포를 놓는 것을 보면 마치 군사독재시절의 ‘규율 권력’까지 연상케 한다.

 

얼마 전 <커버리지>와 만난 당 관계자는 “상대 의원에 대한 비방이나 막말은 분명 규제해야 한다”면서도 “지금의 분위기는 조금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최근 불어닥친 ‘막말 엄포’가 당의 경직성을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을 한 것이다.

 

‘이명박근혜’ 정권 들어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고 비판한 새정치연합, 그 안에서도 ‘막말’이란 이유로 당내 민주주의가 조금씩 흔들리는 것은 아닌지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커버리지 정찬대 기자(press@coverag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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