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상식은 비상식을 이기지 못했다
그릇된 신념의 폐해…비상식도 상식이 된다
  • 정찬대 기자
  • 15.07.08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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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은 비상식을 이기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초법적인 여당 원내지도부 찍어내기는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로 마무리됐다. 이를 두고 누군가는 유 원내대표의 ‘백기’라 평하기도, 또 다른 누군가는 새누리당 의원들의 ‘굴복’이라 평하기도 한다.

 

제왕적 리더십에 맞선 유 원내대표는 사퇴의 변에서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언급했다. 원내대표 자리를 끝까지 지킨 것도 법과 원칙, 그리고 정의를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박 대통령을 ‘무법’ ‘무원칙’ ‘무정의’의 대상으로 규정한 셈이다.

 

당초 비박(비박근혜)계 인사들은 유 원내대표를 지지했다. 박 대통령 요구가 삼권분립에 어긋난 지나친 행동이란 지적도 제기됐다. 허나 시간이 지나면서 ‘대통령 뜻을 거스를 순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김무성 대표 역시 “여당 원내대표가 대통령을 이길 수는 없지 않느냐”며 사실상 박 대통령 손을 들어줬다. 여기서 김 대표의 한계를 보는 이도 적지 않았다.

 

‘유승민 사태’는 한국정치의 비루한 현실을 그대로 말해준다. 삼권분립과 의회주의는 어그러졌고, 새누리당 의원들은 그것이 상식이 아님을 알고도(또는 비상식임을 모르거나) 이에 무릎 끓었다. 그리고 자신의 행위를 집단 수준에서 합리화함으로써 행동을 미화했다.

 

유승민 사태는 정파나 이념의 문제가 아니었다. 삼권분립, 나아가 민주주의에 관한 지극히 상식선의 문제였다. 그래서 진영을 떠나 그를 지지하는 여론이 생겨났다. 하지만 헌법 수호자인 행정부 수반과 독립적 헌법기관인 입법부는 결과적으로 민주주의에 반하는 행동을 함으로써 우리사회 기본 가치와 상식을 무너뜨렸다.

 

그런데 문제는 비상식을 전혀 비상식으로 여기지 않는다는데 더 큰 문제가 있다. 박 대통령과 친박 그리고 새누리당 의원들은 비상식을 상식으로 간주했다. 그리고 전체주의라는 명분 하에 이를 강제했다.

 

독일의 사회운동가인 미하엘 슈미트 살로몬은 “어리석은 자에게 권력을 주지마라”(자신의 저서 제목이기도 함)고 했다. 그릇된 신념의 폐해와 광기(그래서 그는 사고의 황폐화를 지닌 인간을 호모 데민스, 즉 광기의 인간이라고 칭함)를 지적한 것이다.

 

상식은 이성적으로 판단한다. 도덕이나 양심, 사회규범이 개입할 여지가 충분하다. 반면 비상식은 자신의 신념에 기인한다. 결국 잘못된 가치관이나 비뚤어진 인생관이 더해진 그릇된 신념이 개입할 경우 비상식은 얼마든지 상식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늘 상식은 비상식을 이기지 못한다. 그것이 결코 잘못된 것임을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죄책감이나 부끄러움도 모른다. 자신의 행동이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유 원내대표는 사퇴문에서 박 대통령을 ‘무법’ ‘무원칙’ ‘무정의’의 대상으로 규정했다. 이를 본 박 대통령이나 친박 진영은 또 한 번 속을 끓일 게다. 그들에겐 이것이 법과 원칙이며, 정의이기 때문이다. 분명 비상식인데, 누군가에겐 이것이 상식이 된다.

 

커버리지 정찬대 기자(press@coverag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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