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새누리당의 ‘정치공작’과 민주당의 ‘무능정치’
“보수는 부패 때문에 싫고, 진보는 무능해서 싫다”
  • 정찬대 기자
  • 13.07.29 12:34
  • facebook twitter 카카오스토리 구글플러스
  • 글자크기
  • 글자크게
  • 글자작게
  • |
  • print
  • |
  • list
  • |
  • copy
1987년 6월 우리는 그렇게 염원하던 민주주의를 실현시켰다. ‘선혈의 대가’로 이 땅에 민주화를 꽃피운 것이다. 실질적·절차적 민주주의는 논외로 치더라도 이후 25년의 시간이 흘렀고, ‘민주주의’는 더 이상 재론의 여지가 없는 시대적 가치로 이 땅에 곤고히 뿌리내렸다.

 

지난 27일 서울시청 앞 광장이 ‘촛불’로 뒤덮혔다. ‘국정원에 납치된 민주주의를 찾습니다’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행사는 굵은 빗줄기가 장마의 끝자락을 적시고 있었지만, ‘민주주의’를 외치는 시민들의 촛불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렇다면 왜 이렇듯 많은 이들이 ‘민주주의가 납치됐다’는 표현을 써가며 광장에 모였을까? 일련의 정치 상황이 이를 잘 말해준다.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의 정치개입 의혹사건이 불거지면서 직접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선거는 ‘혼탁선거’로 얼룩졌다. 이를 정치공작으로 규정한 야권은 새누리당과 국정원 그리고 경찰이 정권연장을 획책했다며 공세를 가하고 있다. 물론 그다지 효과적이진 못했다.

 

새누리당의 발목 잡기에 매번 걸린 민주당은 방어에만 급급했고, 그 사이 본질은 사라졌다. ‘국기문란’ 행위는 제대로 규명조차 안 되고 있으며, 시간만 허비한 채 국정원 국정조사의 데드라인(8월12일)은 가까워지고 있다.

 

국정조사 특위의 경찰청 기관보고가 있던 지난 25일 야당 의원들은 서울경찰청 디지털증거분석실에서 국정원 정치댓글을 삭제하는 분석관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찍힌 CCTV 영상을 공개했다.

 

그러나 이성한 경찰청장은 “분석관이 농담한 것”이라는 황당한 해명을 늘어놓아 국민적 공분을 자아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죠’란 말이 떠오르는 것은 비단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새누리당은 여론을 분산시키기 위해 다양한 정치적 프레임을 짰다. ‘귀태’로 시작된 ‘막말 논란’, ‘대선 불복종 시비’, ‘김현·진선미 의원 제척사유’ 가짓수도 다양하다. 그중 화룡점정은 ‘NLL논란’이다.

 

새누리당이 제기한 ‘NLL 포기 논란’은 대선 전 사전유출 의혹과 함께 ‘대화록 열람’으로 이어졌다. 결국 이것이 ‘사초(史草) 실종 사건’으로 번지면서 정국 주도권은 급속히 새누리당으로 쏠렸다. ‘문재인 책임론’에 빠진 민주당은 집안싸움이 한창이고, 검찰수사를 의뢰한 새누리당은 그제 서야 ‘민생으로 돌아가겠다’며 발을 뺐다.

 

결국 새누리당이 짜놓은 정치적 프레임에 민주당이 그대로 걸린 셈이 됐다. 박지원 의원은 “새누리당 프레임 빠져선 안 된다”고 경고했고, 정세균 의원 역시 “새누리당의 프리임에 들어가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민주당 한 초선의원은 ‘새누리당이 정치를 너무 잘한다’라는 필자의 지적에 “그런 게 정치냐”면서도 “그러게, 참 답답하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물론 여기서 말한 ‘정치(政治)’가 단순히 ‘나라를 잘 다스리는 일’을 의미한 것은 결코 아니다. 본지와 마주한 민주당 의원도 이를 모를 리 없을 것이다.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이철희 소장은 <프레시안>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새누리당을 ‘정치머신’으로 표현한 바 있다. 이 소장의 언급이 필자의 말을 잘 대변해주는 듯하다.

 

지난 28일 국정원 국정조사 특위 여야 간사인 새누리당 권선동, 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26일 이후 중단된 국조 특위를 정상화하기로 합의했다. 국정원에 대한 기관보고는 새누리당의 요구대로 비공개가 결정됐다. 기관보고는 일주일 뒤인 8월5일 실시된다. 시간이 금인 이때 일주일 넘게 공전 상태가 유지된다니 참으로 한심하다.

 

여당의 무조건적인 버티기에 야당은 무기력한 모습만 보여주고 있다. ‘마냥 공전시킬 순 없다’는 민주당의 마음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이러한 모습에서 국민들은 민주당의 ‘무능’을 보고 있다. 그 사이 새누리당은 자신들의 뜻대로 국정조사를 이끌고 있다.

 

미국의 역사학자 토마스 프랭크는 자신의 저서 <실패한 우파가 어떻게 승자가 되었나>에서 우파의 이념공세가 어떻게 효과적으로 대중의 마음속에 파고들었는지를 밝혀내고 있다.

 

그러면서 미국의 좌파(민주당)는 무능했고 그렇기 때문에 실패한 반면, 우파(공화당)는 뻔뻔하고 교활하며 억지로 가득 찼지만 정치적 성공(선거 승리)을 거뒀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유능하다고 평했다.

 

정치에 신물을 느낀 사람들이 흔히 “새누리당은 부패 때문에 싫고, 민주당은 무능해서 싫다”고 말한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과 NLL논란을 대하는 여야 모습에서 많은 이들은 또 다시 이 같은 말을 되새기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정찬대 기자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