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아전인수’식 정치권…선진화는 멀었다
국회선진화법 논쟁에서 정치 철학의 실종을 보다
  • 정찬대 기자
  • 13.09.27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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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내 몸싸움 방지와 날치기 법안 통과를 막기 위해 지난해 5월 마련된 국회선진화법(이하 선진화법)이 최근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새누리당은 현재 선진화법의 위헌 여부 등을 검토하기 위한 TF팀을 구성, 법리 검토까지 착수하는 등 법안 개정에 팔을 걷어 붙인 상태다.

 

선진화법을 둘러싼 정치권의 아전인수(我田引水)격 해석이 도를 넘어서면서 여야 간 공방은 더욱더 격화되고 있다. 자신들이 처한 상황과 이해에 따라 법안이 정쟁의 도구로 활용되면서 현재로선 국회 선진화는 요연한 먼일 같이 느껴진다.

 

민주당은 9월 정기국회 복귀를 선언하면서 선진화법을 통한 고강도 대여투쟁을 예고했다. 이에 새누리당은 법안이 악용될 소지가 있다며 위헌 여부 등을 검토, 갈등의 골은 깊어졌다. 급기야 여권 내에서조차 “손보자” “안 된다”가 맞서면서 자중지란 양상을 보이고 있다.

 

선진화법은 여야 간 물리적 충돌을 방지하고,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엄격히 제한하며, 미합의 법안의 본회의 상정의 경우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이 찬성해야만 통과될 수 있도록 합의 요건을 강화한 법안이다.

 

지난 2008년 11월 국회 외통위에서 한미FTA 비준동의안이 상정되면서 전기톱과 해머가 등장했고, 예산안 단독통과를 막기 위해 야당 의원들은 몸에 로프를 동여맨 채 본회의장을 점거했다. 또한 사상 초유의 본회의장 최루탄 투척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당시 취재기자로 현장을 지킨 필자는 회의장 문을 걸어 잠그고 3분도 채 되지 않아 법안이 통과되는 모습을 보면서 의회주의의 폭거와 정치의 실종을 목격했다. 국회는 그야말로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이에 볼썽사나운 촌극을 제발 좀 없애자며 여야가 모처럼만에 머리를 맞대 합의한 법안이 바로 선진화법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어떠한가. 법안 마련 1년 반 만에 한 쪽은 개정하겠다고 난리고, 다른 한쪽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결국 현 상황을 풀어쓰면 새누리당은 ‘필요시 다시 날치기를 해야겠다’는 것이고, 민주당은 ‘야당 없인 법안통과도 없으니 우리를 자극하지 말라’는 의미다. 양당 모두 참으로 놀라운 자가당착(自家撞着)적 태도다.

 

선진화법은 새누리당이 주도적으로 추진해 이뤄진 측면이 강하다. 19대 총선을 앞두고 중앙선관위에 대한 디도스 공격과 한나라당 돈봉투 전당대회 사건 등이 겹치면서 여론이 악화됐고, 19대 총선에서 여소야대가 될 것을 우려한 새누리당은 총선 공약으로 선진화법을 내걸면서 법안 추진을 강력히 밀어붙였다.

 

하지만 새누리당이 과반석을 얻는데 성공하면서 분위기는 달라졌고, 이후 법안 통과가 지연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새누리당 소장파인 남경필 의원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맞는 지적”이라고 꼬집은바 있다.

 

‘민심’을 앞세운 정치인들의 아전인수식 태도는 참으로 놀랍다. 때로는 자기모순에 빠져 본질을 외면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당파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정쟁을 일삼는 일은 지금껏 숱하게 봐왔다.

 

‘인의(仁義)’에 입각한 정치를 설파한 맹자는 ‘이루’ 하편에서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바로 오늘날의 역지사지를 의미하는 말이다.

 

‘선진화법’ 논쟁을 보면서 지금의 ‘아전인수’식 당쟁에서 벗어나, 상생의 정치가 필요한 ‘역지사지’의 정신이 필요함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정치 지도자들에게 가장 절실한 덕목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 정치의 선진화는 아직 멀고도 험해 보인다.

 

정찬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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