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1년 중 고작 20일…‘상시국감’ 제도 시급
해결책 없이 국감장만 요란…‘정쟁·호통국감’ 여전
  • 정찬대 기자
  • 13.10.23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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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부터 시작돼 내달 2일까지 20일간 열리는 국정감사에서 여야 간 정쟁과 한건주의식 폭로는 변하지 않았다. 수박 겉핥기식 국감이 진행되고 피상적인 답변이 오가는 등 후진적 행태도 그대로다.

 

여기에 정부 부처의 자료제출 역시 허술하기 그지없고, 국감 증인으로 채택된 핵심 증인은 선서까지 거부하며 국회는 또 한 번 농락당했다.

 

국정감사는 입법부인 국회가 국정 전반에 관해 조사하는 행위다. 입법기능 외에 행정부의 국정계획과 집행내역을 파악하고, 이를 감시·견제하기 위해 마련된 장치로 실로 중차대한 국가 대사 중 하나인 셈이다.

 

지난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개헌되면서 16년 만에 부활한 국정감사권은 올해로 25년째를 맞고 있다. 과거 박정희 정권 시절 폐지되고, 전두환 정권 당시 제한되는 등 적잖은 굴곡도 있었지만, 여전히 입법부가 갖는 막중하고도 고유한 권한이 바로 국회의 국정감사권이다.

 

그러나 국감의 순수 고유기능이 사라진 채 그저 정쟁의 대상이 되면서 여권의 정부 감싸기는 도를 넘어섰고, 야권의 무조건적인 헐뜯기 등이 국감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국감의 구조적 한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우리나라의 국정감사는 원칙적인 한계를 수반하고 있다. 국회의원의 장관 겸직이 가능하고, 여당 의원들은 당 수뇌부나 청와대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또한 국감을 통해 자신을 각인시켜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인지 의원들의 한건주의식 자극적 폭로도 만연하고 있다.

 

의원들의 목소리는 크지만 그 결과는 보잘 것 없고, 여야 간 입장차가 극명한 사안도 적지 않다. 결국 결론은 나지 않은 채 국감장에서 요란만 떨다 국정감사가 끝나는 경우도 허다하다.

 

특히, 600여개에 달하는 전국의 공공기관을 20일 만에 국정감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점에서 애초부터 부실국감이 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일부 의원들은 국감을 위해 일 년을 준비한다는 하소연을 늘어놓기 일쑤다.

 

피감기관의 ‘접대문화’도 여전하다. 지난 17일 오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 현장. 여야 의원들은 건설근로자공제회 감사인 정모씨를 발언대로 불러냈다.

 

그리고 평일 골프장에 드나든 업무추진비 카드 사용내역과 골프장 인근 식당에서 결제한 기록을 들이밀며 추궁했다. 결국 정 감사는 국회의원 전·현직 보좌진들에게 ‘골프접대’를 했다고 실토했다.

 

지난 2005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 7명은 대구에서 열린 국정감사를 마치고, 피감기관인 검찰청 간부들과 술자리를 함께 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이른바 ‘대구의 밤 문화’ ‘대구 술판’ 등으로 잘 알려진 이 사건은 피감기관들의 국회의원 접대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증인들을 세워놓고 면박주기식 국감을 진행하는 방식도 여전하다. 특히, 경제가 핵심 화두가 된 지금 기업인에 대한 증인채택건수는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나고 있다. 올해만 해도 200여명의 기업관련 증인들을 채택했다.

 

하지만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비롯한 핵심 증인들은 여당 의원들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증인채택이 무산됐다. 이 회장은 ‘삼성반도체 암환자 문제’ ‘삼성 무노조 전략문건’ 등으로 야당 의원들이 벼르고 있는 증인 가운데 한명이다. 국감장도 힘과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국정감사 기간 동안 국회는 공무원들로 북적인다. 정부 부처들은 초비상사태로 의원들의 답변서 마련과 자료제출 준비에 여념이 없고, 갖가지 대응전략부터 설득방안까지 각 부처가 마련한 문건도 다양하다.

 

또한 1년 중 20일만 잘 버텨내면 된다는 생각으로 국감을 준비하기 때문에 행정공백 상태도 발생한다. 각 부처의 업무가 국감 위주로 돌아가다 보니 20일간 정부 부처의 셧다운(shutdown) 상태가 된 듯한 느낌마저 든다.

 

20일간, 이마저도 휴일을 제외하면 15일에 불과한 국감기간 중에 600여개의 피감기관을 다뤄야 하는 현재의 운영방식으로는 도저히 좋은 국감을 치를 수 없다.

 

13개 상임위(운영위, 정보위, 여성가족위 등 겸임 상임위 제외) 별로 보면 각 상임위당 50여개에 달하는 피감기관을 맡아야 하고, 하루 평균 3~4개의 기관을 감사해야 한다. 여기에 의원 일인당 질문은 10여분에 불과하다보니 ‘부실국감’이 이뤄지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그간 상시국감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일하는 국회’를 자임한 여야는 어찌된 영문인지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 업무 부담이 커지고 지역구 관리에 소홀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일부 의원들의 경우 상시국감을 채택할 경우 국회가 1년 내내 정쟁에 휘말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이는 국감 자체를 ‘정쟁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의중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상시국감’은 현 제도를 개선해 상임위별로 탄력적으로 상시 국감을 치를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정기국회 기간에는 예산안 심사와 법안 심의에 집중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자는 뜻도 담겨 있다.

 

우리나라와 같은 국정감사 제도는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일례로 미국의 경우 국정감사 대신 의회청문회 제도를 도입해 일 년 내내 필요한 사안에 따라 감사를 진행할 수 있다. 영국 또한 ‘임시수사센터’를 꾸리는 방식으로 국감 기간의 제한이 없다.

 

일본도 필요에 따라 중의원을 열어 국정전반에 대한 감사를 진행하는 ‘연중 국감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이들 모두 정해진 기간 내에 국감을 치르는 방식이 아닌 ‘상시국감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것이다.

 

‘상시국감’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입법부는 법안 제정은 물론 행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기능도 수반한다. 국회 본연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도 국정감사의 제도개선은 시급해 보인다.

 

정찬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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