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증거조작’ 통해 또 다시 ‘간첩’ 만드나
21세기 新용공조작 사건…공안당국의 추악함 드러내다
  • 정찬대 기자
  • 14.02.18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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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부산지역 최대 공안사건인 ‘부림 사건’의 재심 청구인 5명이 무죄선고를 받았다. 불법 감금과 자백 강요 등으로 죄 없는 이들을 간첩으로 내몰았던 공안조작 사건은 군사정권의 추악한 민낯을 드러내며 33년 만에 ‘진실’이 가려졌다.

 

과거 군사정권의 여러 죄악 가운데 하나인 공안조작 사건은 애먼 사람을 잡아다 이처럼 모진 고문과 강요로 간첩을 만들어놓고, 이를 정권연장 내지는 내부 단속의 수단으로 활용해왔다.

 

진보당 사건, 인혁당 사건, 민청학련 사건, 납북어부 사건,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든 온갖 용공조작 사건으로 수많은 이들은 자신이 죽어야 하는 진짜 이유도 모른 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런데 최근 검찰과 국정원이 ‘증거조작’으로 한 개인을 간첩으로 내몬 사건이 드러나면서 충격을 주고 있다. 이른바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에 대한 증거조작이 그것이다. 군사정권의 악행을 그대로 답습한 21세기 신(新) 용공조작 사건은 또 한 번 공안당국의 추악함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국민을 경악케 하고 있다.

 

사건의 경위를 보면 지난해 2월 검찰은 탈북자들의 신원정보를 북한에 빼돌렸다며 탈북자 출신 유모씨(서울시 공무원)를 간첩 혐의로 구속기소했고, 그 핵심 증거로 유씨가 중국과 북한을 오간 ‘출입경기록 조회결과’를 중국 당국으로부터 받았다며 이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그러나 간첩 혐의를 입증할 결정적 증거인 유씨의 ‘출입경기록 조회 결과’는 최근 위조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파문은 일파만파로 확산됐다. 유씨의 변호인단은 이와 함께 유씨가 중국에서 찍은 사진도 검찰이 북한에서 찍은 것으로 둔갑시켰다고 폭로했다.

 

중국 정부는 “검찰이 항소심에서 유죄를 입증하기 위해 제출한 자료는 조작된 것”이라는 공식 답변을 보내왔고, 여기에 중국 역시 자국의 공문서가 위조된 경위를 조사하겠다고 밝히면서 사건은 외교문제로 비화되는 등 국제적 망신을 사고 있다.

 

전방위적인 증거 위조에 검찰은 세 가지 기록 가운데 2개는 국정원으로부터, 나머지 1개 서류는 외교부로부터 받았다고 설명했고, 국정원의 협조를 얻어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검찰과 국정원 모두 수사대상인 상황에서 이들이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하니 이 또한 기가 막힐 노릇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은 검찰을 적극 비호하고 나섰다. 최경환 원내대표는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민주당을 향해 “외교적 마찰까지 초래할 수 있는 이번 사건에 대해 ‘딴 나라 정당’이 아니라면 더 신중한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고 충고했으며,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는 “검찰이 왜 증거자료를 위조했겠느냐”며 “위조는 있을 수 없다”고 강변했다.

 

지난 17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서 여야 간 난타전이 벌어졌고, 새누리당 법사위원들은 검찰을 적극 엄호하며 집단 퇴장했다. 결국 사건이 정치 공세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국정원과 검찰의 공신력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심각한 치명상을 입게 됐다. 더욱이 국정원이 공문서를 고의로 위조했거나 검찰이 위조문서임을 알고도 이를 재판부에 제출한 것으로 드러날 경우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면서 두 기관의 존립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올 초 국정 과제로 ‘비정상의 정상화’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리고 작금의 사태는 검찰과 국정원이야말로 박 대통령의 그토록 강조한 ‘비정상의 정상화’의 최우선 대상임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고 있다.

 

하지만 희대의 사건에 대한 청와대의 태도는 이상하리만큼 차분하고 조용하다. 이쯤 되면 박 대통령이 말하는 ‘비정상의 정상화’는 도대체 어떤 것인지 사뭇 궁금해진다.

 

정찬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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