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새정치연합 ‘무공천 덫’에 걸리다
도덕정치에 빠진 새정치…책임정치는 방기하나
  • 정찬대 기자
  • 14.04.07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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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이 ‘기초선거 무공천’ 논란으로 극심한 내홍에 휩싸였다. 공약 번복으로 비판받아야할 새누리당은 오히려 천하태평인 반면, ‘나홀로 약속’을 택한 새정치연합은 이 문제로 심각한 내부 갈등을 빚고 있는 것이다.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의 기초선거 무공천 방침에 신경민 최고위원 등 일부 의원들은 ‘정당 해산론’까지 꺼내들며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를 방문한 안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과의 면담을 신청하는 등 정면 돌파 의지를 분명히 했다.

 

안 대표를 포함한 당 지도부는 ‘무공천=새정치’란 등식을 세워놓고 강경일변도로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그 사이 내홍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오죽하면 새누리당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가 “당내 불화도 해결 못하면서 대통령 탓만 하고 있다”고 일침을 가했을까. 주객이 전도돼도 한참은 전도됐다.

 

새정치연합은 ‘기초선거 무공천’ 공약에 발목 잡혀 한 발짝도 못나가고 있다. 명분을 쥐자니 6·4지방선거의 참패는 불 보듯 뻔하다. 그렇다고 이제와 입장번복도 어렵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새정치연합의 무공천 전략은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졌다.

 

새정치연합의 한 재선의원은 최근 본지와 만나 “기초선거에서 무공천할 경우 새누리당에 참패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거결과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지느냐”고 지도부를 향해 따지듯 물었다.

 

야권통합을 통해 어렵사리 일대일 구도를 만들었지만, 무공천을 택함으로써 소속 정당 후보 간 조직적 연대나 지원도 어렵게 됐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광역단체장 선거도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천 과정에서 기득권을 행사하거나 줄 세우기 관행에 대한 문제점은 분명 개선돼야할 부분이다. 하지만 무공천에 따른 문제점은 고려하지 않은 채 ‘무공천이 곧 새정치’란 인식은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 될 수 있다.

 

기초선거 무공천의 가장 큰 문제점은 후보 난립과 함께 후보자 검증과정이 따로 없다는데 있다. 여기에 공정성이 담보돼야할 선거에서 여야가 서로 다른 규칙을 통해 선거를 치르는 촌극도 문제다.

 

공당의 후보는 공천심사과정을 거쳐 공천을 받지만 무공천은 별도의 제동장치가 없어 선거법에 접촉되지 않는 한 후보등록이 가능하다. 결국, 유권자는 각 후보자가 내세운 공(功)만 알뿐 과(過)는 모른 채 그 사람을 뽑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책임정치의 방기를 의미한다.

 

정당이 후보 검증을 통해 공천하는 것을 나쁘게만 볼 필요가 있을까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많다. 정당정치와 대의민주주의 관점에서면 보면 공천은 지극히 당연한 정치적 행위다. 기득권 행사나 줄 세우기 관행을 타파파기 위해 ‘무공천’이란 극단의 조치를 취하는 것이야말로 매우 위험한 발상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정치학)는 지난 6일 기초선거 무공천 관련 토론회에서 “무공천 제도는 정당정치의 하부구조를 취약하게 함으로써 정당정치의 근간을 훼손한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는 정당의 기본 원리인 대의민주주의에도 어긋난다. 결과적으로 무공천제도가 정치 개악의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새정치연합의 한 쇄신파 의원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정당정치의 기본은 정당이 후보를 내고 이를 통해 국민께 심판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마치 공천하는 것이 나쁘게 비치는 것 자체가 정당정치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독일의 사상가 막스 베버(Max Weber)는 정치인의 도덕을 ‘신념의 도덕’과 ‘책임의 도덕’으로 나눠 분석했다. 그는 정치에 있어 무엇보다 신념이 중요하지만, 이것만 갖고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즉, 책임정치(결과)를 방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결국, 이 같은 관점에서 볼 때 김한길·안철수 두 공동대표가 ‘기초선거 무공천’이란 도덕적 신념을 과도하게 내세움으로써 책임정치를 등한시 한 것은 아닌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두 사람이 ‘무공천 난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돼 있다.

 

정찬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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