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문재인은 왜 ‘내려놓는’ 정치를 못할까
친노의 조바심, 그리고 말의 진정성
  • 정찬대 기자
  • 15.12.02 16:46
  • facebook twitter 카카오스토리 구글플러스
  • 글자크기
  • 글자크게
  • 글자작게
  • |
  • print
  • |
  • list
  • |
  • copy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사진=새정치민주연합)

 

중국 사상가 장자(莊子)의 철학을 얘기할라치면 무위(無爲)가 떠오른다. 그는 어렵게 얻어낸 것을 다시 비우고 내려놓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깨우침이라고 설파했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1987년 군사정권의 종말을 고하고 민주정부가 들어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에 양김(김영삼-김대중)은 후보 단일화에 실패했다. 장자의 얘기처럼 내려놓는 정치가 부족했던 탓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훗날 회고록에서 “죄스럽고 또한 천추의 한”이라며 통탄했다.

 

‘혁신 전대’를 놓고 새정치민주연합이 점입가경이다.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 간 핑퐁게임이 결국 치킨게임 양상으로 치달았다. 퇴로는 없고, 전진만 있다. 허나 앞에 놓인 것은 ‘공멸’이다.

 

문 대표는 당내 해결책을 늘 외부에서 찾고자 했다. 4·29재보선 완패 후 혁신위원회를 출범시켰고, 이를 통해 당 체질을 개선코자 했다. 혁신위원장에 안철수 의원을 지목했다가 그의 거부로 구상만 구겼다. 당 안팎에선 “스스로 답을 찾으라” “능력이 없으면 내려와라” 등의 비아냥이 쏟아졌다. 하지만 문 대표는 백년하청, 요지부동이다.

 

생각해보니 문 대표는 그간 ‘내려놓는’ 정치를 해본 적이 별로 없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이해찬-박지원-문재인’ 담합 논란이 불거졌을 때도 문재인 의원은 ‘강 건너 불구경’이었다. 그사이 친노계 좌장 이해찬 대표가 철저한 방패막이가 됐다.

 

대선 정국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후보는 ‘큰형님론’과 ‘통 큰 양보론’을 내세우며 대권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후 단일화 방식을 놓고 끝까지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고, 안 후보는 중도 사퇴했다.

 

당 혁신안이 비주류의 비토에 가로막히자 이번에는 ‘재신임 카드’를 꺼내들었다. 일선 후퇴가 아닌 정면 돌파다. 이에 대해 한 당직자는 “사퇴면 사퇴지, 재신임은 또 뭐냐”며 볼멘소리를 내기도 했다. 중진의원을 비롯해 곳곳에서 ‘재신임 철회’ 요구가 이어지자 문 대표는 그제야 “모두의 충정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며 이를 거둬들였다.

 

야당 대표의 숙명이 그러하듯 비주류의 ‘부박한 행태’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특히, 10·28재보선에서 22대 2라는 참담한 성적표는 문 대표 사퇴론에 또 한 번 기름을 끼얹었다. 더욱이 혁신위 활동에 대한 평가란 점에서 재보선 결과는 그 의미도 남달랐다.

 

이런 가운데 한국갤럽 11월 둘째 주 여론조사에서 문 대표의 호남 지지율이 5%로 나타나 적잖은 충격을 줬다. 이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9%) 보다도 낮은 지지율이었다. 여기에 내년 총선에서 새정치연합이 73석을 차지할 것이란 가상 시뮬레이션까지 공개되면서 ‘문재인 체제’에 대한 회의적 시각은 더욱더 짙어졌다.

 

당 밖 상황도 좋지 않았다. 박주선 의원과 박준영 전 전남지사가 탈당한데 이어 ‘천정배 신당’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천정배 의원은 “새정치연합과 경쟁할 수 있는 구도를 만들겠다”며 제1야당을 흔들어댔다.

 

문 대표는 이번에도 사퇴가 아닌 정면 돌파 카드를 제시했다. 바로 ‘文·安·朴 공동 지도체제’다. 하지만 전임 대표였던 안 의원이 2014년 6월 지방선거와 7월 재보선 패배에 대한 책임으로 물러났던 점을 감안할 때 그와의 ‘공동 지도체제’는 비주류를 달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비춰졌다.

 

결국 안 의원은 거부했고, 대신 ‘혁신 전당대회’를 역제안했다. 이른바 ‘새판짜기’다. 허나 문 대표는 그런 안 의원에게 “진정성이 없다”고 날선 공격을 가했다.

 

‘혁신 전당대회’ 거부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는 가운데 당내 일각에선 문 대표가 또 한 번 정면 돌파 의지를 내비칠 수 있다는 관측이 조심스레 고개를 들고 있다. 더 이상 혼란을 막기 위해 통합 전대를 수용하되, 대표직을 유지한 채(또는 공동선대위 체제를 꾸려) 경선 세부규칙을 마련하거나 또 다른 조건을 제시함으로써 ‘안전장치’를 마련할 수 있다는 얘기다.

 

모른 척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다, “던져놓고 나몰라 한다”는 당 안팎의 시선도 문 대표의 이 같은 결단을 거들고 있다. 실제 한 당직자는 <커버리지>와 만난 자리에서 “일만 벌려놓고 수습은 못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당내 이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지도부 핵심 관계자도 2일 기자에게 “문 대표가 결국 용단을 내릴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이 상황이 오래가진 않을 것”이라며 “사퇴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그러나 “친노 측에서 어떤 안전장치를 마련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혀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문 대표는 앞서 지난 대선 때 안 의원과의 후보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악마는 디테일(세부적인 것)에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사소한 조항 하나로 판 전체가 바뀔 수 있다는 얘기다. ‘민심이 반영된 혁신’을 내세우며 국민완전경선제나 모바일투표의 대폭적인 반영도 한 방법이다. 이를 통해 친노 지지세력을 결집하겠다는 복안이다. ‘안철수 바람’이 잦아진 것도 이를 가능케 한다.

 

다만, 총선 후보 공천과 관련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제안한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를 애당초 반대한 문 대표이기에 당내 경선에서 이를 광범위하게 허용할 경우 자기모순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진다.

 

그간 친노의 권력은 늘 한시적이었다. 열린우리당이 그랬고, 참여정부가 그랬다. 배제는 또 다른 배제를 불러오는 악순환이 반복됐고, 결국 이는 친노의 조바심으로 이어졌다.

 

당권을 쥘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친노 진영의 태도는 확연히 달라진다. 김한길·안철수 전 공동대표와 박영선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사퇴도 ‘문재인 사단’의 노영민, 진성준 의원 등이 중심이 된 친노의 힘으로 일궈냈다. 그래서일까. 입장이 뒤바뀐 지금, 안 의원과 비주류에게 마냥 “힘을 합칠 때”라고 주창하는 그들 역시 누구의 말처럼 ‘진정성’이 없어 보이긴 매한가지다.

 

커버리지 정찬대 기자(press@coverage.kr)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