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기고] 어버이연합, 대한민국이 만만한가
그들에게 ‘민주주의 유린한 죄’를 물어라
  • 도기천 기자
  • 16.05.04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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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 연세대생 이한열 군이 전투경찰이 쏜 직격 최루탄에 맞아 쓰러지고 있다. 그의 죽음은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수많은 젊은이들의 희생으로 쟁취됐다. (사진=이한열기념관, 정태원)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년들이 골목 어귀에 무리지어 있다. 이 골목 저 골목 젊은이들로 넘친다. 그들의 시선이 쏠린 한 건물. 그곳 옥상에서 플래카드가 펼쳐지자 여기저기서 구호소리가 터져 나온다.

 

시민들 사이에 섞여 있던 청자켓 차림의 건장한 ‘어깨’들이 순간 잽싸게 달려와 그들을 연행한다. 어깨들 손에 들린 곤봉에 맞아 사람 머리가 터지고 비명소리가 광장을 덮는다. 최루탄 연기에 피투성이가 된 어린 학생들의 얼굴이 흐려진다. 그 순간 ‘쿵’하는 소리, 누군가 추락했다. 1989년 어느 봄날, 대구백화점 앞이다.

 

1965년 3월 7일 600여명의 흑인들이 투표권을 달라며 셀마를 출발했다. 앨라배마 주지사가 있는 몽고메리까지의 86km 평화행진이다. 백인 기마경찰은 그들을 말발굽으로 짓밟았다. 이 사건은 ‘피의 일요일’로 불린다. 행진은 계속됐고, 몇달 후 린든 존슨 당시 대통령은 흑인 참정권을 인정하는 내용의 투표권법에 서명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위였던 ‘셀마 대행진’이다. 

 

인류 역사에서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과정은 늘 피를 동반했다. 대한민국에서 집회신고를 하면 장소를 차지할 수 있는 세상이 온 지는 채 30년이 안 된다.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전투경찰이 대학 안에 상주했다. 다섯 명만 모여도 해산시켰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가끔 경찰이 광화문에 차벽을 쌓아 광장 진입을 막긴 하지만, 대부분의 집회·시위는 보장되고 있다. 집시법상 집회·시위가 금지되는 경우는 ‘집단적인 폭행·협박·손괴·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하다고 판단 될 때’뿐이다.

 

수많은 젊음들이 꽃처럼 스러져 간 대가로 오늘 우리는 ‘모여서 외칠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버이 이름으로’ 헌정질서 농단

 

그런데 피로서 쟁취한 기본권을 방해하는 이들이 있다. 대한민국 ‘어버이의 이름으로’ 모인 그들이다.

 

처음엔 그저 나이 드신 분들이 젊은이들이 외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서 그런 줄 알았다.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라서 북한과 뭘 해보려는 사람들을 미워하는 줄만 알았다.

 

그게 아니였다. ‘친박’이 아니면 모두가 공격 대상이었다. 그들 스스로 “대통령을 건드리면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천명했다.

 

야당과 타협했다는 이유로 여당 대표를 화형식 하는가 하면, 새누리당의 공천 과정에 깊숙이 개입해 대통령 눈 밖에 난 인사들을 배신자로 낙인찍어 성토했다.

 

노조가 집회를 계획하면 같은 자리에 먼저 집회신고를 하는 ‘알박기’ 집회를 매년 수십 차례 열었다. 쌍용차 해고 노조원들이 장기농성을 벌이고 있던 대한문 천막농성장을 습격했으며, 세월호 진상규명 촉구 서명장에 난입해 시민단체 회원들을 폭행했다.

 

단식농성 중이던 세월호 유가족들 앞에서 치킨·자장면 먹기 퍼포먼스를 벌인 그들이 ‘대한민국 어버이연합’이다. 새끼 잃은 어미가 밥을 굶고 있던 곳에서 벌인 만행 앞에서 인간의 성선설(性善說)은 무색해진다.

 

우리나라 기업들을 대표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그들에게 뒷돈을 대줬고, 그 돈으로 탈북자들을 알바 집회에 동원했다는 사실 앞에서는 망연자실하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국가다.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인권, 시민권, 사상(양심)의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다.

 

어버이연합의 행동은 자유민주주의의 뿌리를 뒤흔들고 있다. 국민의 신성한 권리인 저항권을 돈을 주고 매수했고, 매수한 이들을 동원해 헌법에 보장된 집회·시위의 자유를 침해했다.

 

공당의 대표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추종자(종북)로 몰아 화형식을 가졌으며,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시민들을 종북 세력 동조자로 몰았다. 헌법에 명시된 노조의 쟁의권도 방해했다.

 

대한민국헌법 제90조는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을 예비, 음모, 선동, 선전한 자를 ‘내란선동죄’로 처벌토록 하고 있다. 비록 이들이 폭동을 준비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대한민국 국헌(헌법)을 문란케 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마침 새로 구성되는 국회가 이 사태에 대해 국정조사를 벌인다고 한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불법자금지원 의혹 규명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한민국 국기(國基)를 뒤흔든 그들에 대한 조사와 처벌은 ‘불법자금’만으로는 부족하다. 일벌백계로 다스려 수많은 희생으로 이룩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결코 만만하지 않다는 걸 세계만방에 천명해주길 바란다.

 

*본 기사는 CNB뉴스와 동시 게재 됐습니다.

 

 

도기천 기자

CNB뉴스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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