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독자칼럼] 고리1호기 폐쇄의 ‘숨은 의도’
고리원전 내주고 핵산업 육성하는 정부 시나리오
  • 박상은 반핵활동가
  • 15.06.22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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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가 고리원전1호기의 폐쇄를 촉구하는 해상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사진출처=환경운동연합)

고리1호기 영구 가동정지. 즉, 폐쇄가 확정됐다. 6월12일 국가에너지위원회 권고를, 16일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수용한 것이다. 1978년 국내 최초로 상업운전을 시작한 고리1호기는 이로써 가동 40년 만인 오는 2017년 6월18일 완전 정지된다.

 

고리1호기는 한국 최초의 상업용 핵발전소다. 고리원전 가동으로 인해 관련법과 제도가 만들어졌고, 반핵운동을 비롯한 시민사회운동도 시작됐다. 그만큼 고리1호기는 여러 면에서 특별할 수밖에 없다.

 

37년 된 노후 원전은 그간 적잖은 문제와 위험을 야기했다. 130여 차례 사고고장(국내원전 사고고장의 20%)은 물론 전원상실 사고에 대한 은폐, 부품 비리사건 등 대한민국 핵산업의 흑역사로 지목됐다. 위험천만한 불안덩어리를 폐쇄해야 한다는 당연한 요구를 관철시키는데, 지역주민들은 37년이라는 긴 시간을 싸워야만 했다. 반핵부산시민대책위 등 부산 시민사회와 전국 탈핵진영이 함께해 일궈낸 작은 승리가 바로 고리1호기 폐쇄인 것이다.

 

그런데 잔치를 벌이고 축하할 일임에 분명하지만, 승리의 축배를 들고 이 상황을 즐기기엔 고리1호기 폐쇄 결정의 뒷맛이 개운치 않다. 마치 주말 예능프로그램인 ‘1박2일’ 복불복의 까메리카노(까나리액젓+아메리카노)를 마신듯 씁쓸하면서도 비릿하다.

 

정부는 왜, ‘고리1호기의 안정성과 경제성이 타당하다’고 결정하다가 불현듯 폐쇄 권고를 했을까? 한수원은 왜, 수명연장 여론몰이에 한창이다가 갑자기 폐쇄 권고를 받아들였을까?

 

이 같은 의문에 산업부도, 한수원도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혹, ‘숨은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다. 그간의 정부 행태를 볼 때 여러 면에서 미심쩍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 앞에서 펼쳐진 노후원전폐쇄 액션퍼포먼스.(사진출처=환경운동연합)

◇총선 앞두고 입장 선회한 與…‘표심’ 자극 말라?

 

고리1호기 폐쇄 결정은 총선이 10개월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여론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정치적 계산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민심(표심)은 고리1호기가 안전하지 않다는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실제 부산지역 신문인 <국제신문>이 지난달 5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부산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원전안전 및 에너지분권의식 조사’를 실시한 결과 시민 10명 중 7명은 고리1호기 수명 재연장에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고리원전 안전성에 대해서도 응답자의 70%가 불안하다고 답변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후 원전안전과 방사능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안전성 확보 요구가 높아진 가운데 설계수명을 넘겨 수명연장 운영을 하고 있는 고리1호기에 대한 불안과 불신 역시 커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 같은 분위기를 의식한 듯 올 초 원전 재가동에 찬성한 새누리당은 이후 고리1호기 폐쇄로 입장을 선회했다.

 

정부는 고리1호기 폐쇄 과정이 노후 원전 폐쇄라는 국민적 요구(여론)를 수용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민주적 절차를 밟아 진행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논의 진행과정이나 결정과정에 있어 과학적 근거의 제시나 공개적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은 큰 문제로 지적된다.

 

◇3000 숨기고 587 내세운 정부…의도는 ‘추가 원전’

 

정부의 숨은 의도는 간단한 산수문제에서도 찾을 수 있다. 587메가와트(MW)를 버리면 3000메가와트(MW)의 명분을 쌓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정부는 고리1호기의 설비용량인 587메가와트(MW)만을 강조한다. 추가 원전건설로 발생하는 3000메가와트(MW)는 숨기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3000메가와트(MW)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587메가와트(MW)를 적극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587을 강조하면서 ‘위험하고 오래된 원전을 대체해 안전한 원전을 만드는 것’이라는 이미지를 덧씌우고 있다는 의미다.

 

지금까지의 결과로 보면 나름 성공적이다. 현재 진행 중인 7차 전력수급계획은 동부하슬라1·2호기(2,000MW)와 영흥7·8호기(1,740MW), 석탄화력 4기(3740MW)를 제외한 대신, 삼척이나 영덕에 원전 2기를 추가하겠다는 계획을 담고 있다.

 

특히, 석탄 화력의 원전 대체 근거는 어처구니없게도 ‘원전은 친환경’이라는 주장이다. 정부의 요구대로 원전 2기에 대한 추가계획이 반영되면, 2029년 대한민국 원전은 36기로 지금보다 13기 늘어난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산수 계산을 해보면, 경우의 수가 늘어나면 확률 또한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 확률이 원전사고의 확률이라면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원전부품 비리로 가동이 중단된 바 있는 신고리 1·2호기.(사진출처=환경운동연합)

◇핵산업 육성 시나리오…‘전주기적 핵산업체계 구축’

 

고리1호기 폐쇄는 안전이 아닌 핵산업 육성과 확장을 위한 시나리오에 따르고 있다는데 더 큰 심각성이 있다.

 

정부는 준비되지 않는 폐쇄 발표를 수습하기 위해 2021년까지 ‘해체기술개발 1500억원 투입’, ‘해체 규제와 제도 기준마련’ 등 원전폐쇄를 위한 산업육성에 대규모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아울러 그간 민감한 사안으로 논의가 정체돼있던 사용후 핵연료, 원전해체센터 등 관련 문제 또한 고리1호기 폐쇄와 연계해 진척시키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원전 폐쇄 패키지’로 묶어 일괄적으로 타결하는 것이 효과적이며 명분도 있다는 계산이다.

 

정부의 이번 조치는 새로운 핵산업을 육성하고 확장하는 방향의 후속조치들만 가득하다. 결과적으로 고리1호기 폐쇄 결정이 원전 건설-운영-폐쇄-핵폐기물 관리의 ‘전(全)주기적 핵 산업체계 구축’으로 핵산업의 육성과 확장을 위한 계기로 삼겠다는 시나리오를 완성해가고 있는 것이다.

 

이밖에도 고리1호기 폐쇄 결정은 월성1호기 수명연장에 대한 정부의 부담을 줄이는 계기로 작용되고 있다. 즉, 한차례(10년) 수명연장은 안전하다는 공식을 내세움으로써 월성1호기 역시 한 차례 수면연장이 가능하다는 논리다.

 

실제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는 지난 10일 월성1호기의 재가동 여부를 최종 승인했다. 이로써 설계수명 30년을 마치고 가동이 중단됐던 월성1호기는 2년 반 만에 재가동됐다. 정부는 고리1호기 수명 연장 때와 마찬가지로 ‘안전하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갈 길 먼 원전폐쇄, 지금부터 시작

 

큰 문제를 해결했다는 승리와 기쁨에 도취해 있을 시간이 없다. 정부의 태도는 고리1호기 폐쇄가 원전안전의 시작점, 에너지정책의 전환점이길 바랐던 것이 역시나 바람에 그칠 수밖에 없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숨은 의도’가 고리1호기 폐쇄의 의미를 퇴색시켜선 안 될 것이다. 앞으로 폐쇄해야할 핵발전소가 현재까지만 해도 23기다. 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대로라면 41기까지 예상된다.

 

원전 폐쇄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준비해야할 법, 기술, 예산, 인력 등 갈 길이 멀다. 그 길에서 원칙과 의도는 ‘생명과 안전’이 우선이어야 한다. 원전 폐쇄가 많은 이의 바람임은 분명하지만, 모두가 원하는 것은 ‘빨리’가 아닌 ‘안전하게’임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박상은 반핵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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