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봄비 오는 날, 서울구치소로 떠난 그녀
 
  • 임영태
  • 17.04.07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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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왔지만 아직은 아침 저녁으로 쌀쌀하다. 그렇지만 오는 봄을 누가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아침에 나오면서 보니 아파트 단지 화단에 활짝 피었던 매화가 벌써 지려 한다. 한켠에서는 개나리가 피고 진달래도 피기 시작했다. 담장 옆 벚꽃나무들도 꽃망울을 터뜨리기 위해 잔뜩 준비를 하고 있다. 며칠 내로 꽃이 필 것 같다.

 

지난 금요일 봄비가 내리던 날 새벽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울구치소로 떠났다. 강부영 판사는 구속영장 발부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주요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 인멸의 염려가 있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이 인정된다” 박근혜는 전날 오전 10시 20분 서울중앙지법에 도착해, 판사 앞에서 장장 8시간 41분 동안 심리를 받았다. 삼성부회장 이재용의 7시간 30분을 훌쩍 넘는 최장의 기록이다. 박근혜는 판사 앞에서도 여전히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심사 후 서울중앙지검 임시 유치시설에 대기하던 박근혜는 다음날 새벽 구속영장 발부와 함께 의왕의 서울 구치소에 수감됐다.

 

박근혜는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으로 ‘대통령에서 파면’된 뒤 21일만에 구속되었다. 박근혜의 구속은 ‘사필귀정’이다. 범죄를 지었으면 그에 합당하는 처벌을 받는 것은 민주사회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상식에 속한다. 하지만 박근혜는 구속되었지만 그와 더불어 나쁜 짓을 한 많은 인간들이 아직도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당연히 그들도 그들의 행위에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시민들의 ‘촛불항쟁’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최고 권력자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마침내 감방으로 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정말이지 ‘위대한 시민 항쟁’이다. ‘촛불명예혁명’이라 이름 붙일 만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새삼 이런 의문이 든다. 과연 이런 결과들이 우리의 힘만으로 가능했을까? 촛불항쟁 이후 박근혜는 흔히 하는 말로 ‘매를 번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대응으로 계속해서 국민의 분노를 자극했고, 그것이 결국 자멸의 길로 가게 만들었다. 박근혜와 그의 동지들의 잘못된 대응, 패착이 결국 그들을 파멸의 길로 몰아넣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박근혜가 이명박처럼 초기에 자신의 잘못을 조금이라도 인정하고 국민 앞에서 고개 숙이는 자세를 취했다면 새누리의 분열은 힘들었을 수도 있다. 이른바 ‘꼴통 친박’이 ‘비박’에게 빨리 당권을 내주고 물러나 타협의 길을 모색했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악수(惡手)는 또 다른 악수를 낳는 법. 박근혜는 특검 수사와 탄핵 재판에 대해서도 오만방자한 태도로 일관함으로써 가장 보수적인 헌재 재판관들까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게 만들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박근혜는 마지막까지 탄핵이 인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모양이다. 주변에 그런 말을 해주는 인간이 아무도 없었다는 이야긴지, 박근혜가 그런 말을 받아들일 자세가 전혀 안 돼 있었다는 이야긴지, 아니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상황을 판단할 능력이 전혀 없었다는 이야긴지? 알 수가 없다. 박근혜는 탄핵이 인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처럼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믿었던 모양이다. 왜 그렇게 판단했을까?

 

‘공주병’ 때문인가? 아니면 세상물정을 너무도 모르는 ‘철부지’여서 그런 것인가? 그동안 박근혜가 보인 처신과 대응은 우리 같은 상식적 삶을 사는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설명할 방법이 없다. 어떻게 이런 형편없는 판단력과 미숙한 눈을 가진 인간이 대통령에까지 오를 수 있었을까? 정말 그의 주위에는 상식적 판단조차 내릴 수 있는 인간이 하나도 없다는 이야기인가? 아니면 주위에서 아무리 설명해도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것인가?

 

그 어느 쪽이든 우리 국민은 이처럼 형편없는 인물을, 그리고 범죄자를 끝내 대통령 자리에서 끌어내렸다. 그리고 감옥으로 보냈다. 이 나라 국민들은 역사를 다시 썼다. 대단한 시민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박근혜 같이 형편없는 인물을 대통령으로 뽑은 것도 이 나라 국민들이라는 사실을. 앞으로도 그런 일들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보장이 없다.

 

자연의 봄과 더불어 역사의 봄도 오고 있다. 박근혜의 구속과 더불어 새로운 시대의 꽃이 활짝 만개할 수 있을 것인가? 역사에서는 새로운 시대 뒤에 늘 반동이 뒤따랐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뒤에 1799년 나폴레옹의 브뤼메르 18일의 반동이 있었고, 1848년 2월 혁명 뒤에 루이 나폴레옹(나폴레옹 3세)의 왕정복고가 찾아왔다. 우리 역사에서도 그랬다. 1960년 4.19 혁명 후에 박정희의 5.16쿠데타가 있었고, 1979년 부마항쟁과 박정희의 죽음, 그리고 1980년 민주화의 봄 뒤에 전두환의 내란이 뒤따랐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열매는 노태우 정권의 탄생과 3당 합당으로 망가졌다. 이번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또 다시 ‘죽 쒀서 개주는’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박근혜의 구속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새로운 역사를 창조했다. 하지만 이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어야 한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많은 호기를 맞았지만 그 끝이 반드시 좋았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역사에서 진보의 시기는 짧고 순간이지만, 보수와 반동의 시기는 길고 오래간다. 진보와 혁명의 시기 다음에는 반드시 반동이 찾아오게 마련이다. 역사의 주인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그런 일은 피할 수 없다. 지금부터가 중요한 이유다. 봄비 내리는 날 서울구치소로 떠난 그녀를 생각하며 드는 생각이다.

 

임영태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본 칼럼은 <반헌법행위자열전편찬위원회>에 함께 게재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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