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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서울 보건소, 메르스 의심환자 ‘방치’…구급차 ‘미지원’ 논란
‘사각지대’ 놓인 소방대원, 메르스 관리대상자 이송 뒤 ‘자가격리’
  • 정찬대 기자
  • 15.06.11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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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역 한 보건소에서 구급차량을 지원하지 않은 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증상을 보인 의심환자(최초 양성반응·이후 음성판정)를 한 시간 가까이 방치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특히, 이 과정에서 최초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대원 두 명은 보건소 구급차량이 지원되지 않자, 119구급차를 통해 환자를 이송하다 결국 자가 격리까지 됐던 것으로 밝혀졌다. 메르스를 포함해 전염병 의심환자의 경우 보건소 구급차량을 이용하게끔 되어있지만, 보건소의 안일한 대처로 관련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더욱이 상황이 이러함에도 국가안전처와 서울시는 해당 사안을 제대로 파악조차 못하고 있었다. 안전처 관계자는 “아직 파악된 내용이 없다. 확인 후 다시 연락을 주겠다”는 답변이 돌아왔고, 서울시의 경우 ‘메르시 상황팀’을 비롯해 관련 부서인 보건정책팀도 이에 대해 알지 못했다. 서울시 보건담당 한 주무관은 “강서구보건소나 강서소방서에 문의해 봐야 알 것 같다”고 답했다.

 

△서울 강서소방서 산하 한 119안전센터 구급대원들이 메르스 의심환자를 이송한 뒤 자가 격리된 것으로 확인됐다.(사진=정찬대 기자)

암환자 후송, 알고 보니 ‘메르스 관리대상자’

 

사건은 지난 2일 발생했다. 이날 17시25분께 서울 강서소방서 산하 한 119안전센터는 암 환자 이송에 대한 지령을 수보받고 현장에 출동했다. 말기 암 환자였던 김모씨(강서구 화곡동·31)는 현재 내원 중인 삼성서울병원에 이송해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문진과정에서 고열 등 메르스 의심 증세를 보인데다, 삼성병원의 경우 메르스 확진 환자가 진료 받은 곳이란 점에서 소방대원은 관련 내용을 설명해줬다. 김모씨는 그제야 자신이 메르스 관리대상자임을 털어놨다. 암 환자 이송 신고를 받고 출동했기에 대원들은 방호복 등 개인보호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상태였다.

 

현장에 출동한 이모 구급대원은 10일 <커버리지>와 통화에서 “문진과정에서 메르스 관리대상자란 사실을 알게 됐다”며 “환자분이 ‘얼마 전 삼성병원 응급실에서 메르스 확진자와 함께 있었는데, 이 때문에 관리대상에 포함됐다’고 말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어 “‘예약 환자고, 격리병동으로 가기 때문에 (괜찮다)’라는 말도 했다”고 덧붙였다.

 

뒤늦게 사실을 확인한 대원들은 마스크와 장갑을 끼고, 매뉴얼에 따라 강서구보건소에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보건소 측은 김씨 보호자와 통화한 뒤 구급차량을 지원하지 않았다. 암 치료에 대한 부작용이 고열 등 메르스 증상과 비슷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보호자의 얘기를 건네 들은 뒤 단순히 ‘암 치료 부작용’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여기에 메르스 감염 의심자 명단 및 치료병원 현황 등을 정부에서 아직 공개하지 않은 터라 보건소 측에서도 김씨가 메르스 관리대상자란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정부는 지난 7일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거나, 경유한 병원 24곳을 공개했다. 첫 확진자가 나온 지 18일만에 이뤄진 조치다.

 

보건소, “‘암 부작용’으로 판단”…의심환자 ‘방치’

 

강서구보건소 한 관계자는 <커버리지>와 만난 자리에서 “한 시간까지는 아니었고, 30분 정도 지체된 것은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김씨와 직접 통화했더라면 바로 조치를 취할 수 있었는데, 그 부분이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또 “명단만 있었더라도 바로 캐치하고 조치가 이뤄졌을 텐데, 그런 것들이 우리로선 답답하다”고 호소했다.

 

관계자는 ‘병원 외 장소에서 감열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일단 증상만으로도 구급차를 보내는 것이 맞지 않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암 부작용을 전해들은 데다, 단순히 증상이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구급차를 보낼 수도 없었다”고 해명했다. 결과적으로 새로운 감염 경로 가능성을 배제한 답변이 돌아온 것이다.

 

실제로 정부는 병원 외의 새로운 감염 경로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방역당국이 운영하는 공식 메르스 포털 사이트에도 문제가 된 병원을 방문하지 않는다면 메르스 감염 위험이 낮다는 설명만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주장에도 불구하고 메르스 확정판정을 받은 평택경찰서 A경사의 경우 감염 경로가 모호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방역당국이 역학조사를 실시하는 등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 2일 서울 강서구보건서에서 메르스 의심환자에 대한 연락을  받았지만, 암 치료 부작용인 것으로 판단하고 구급차를 보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사진=정찬대 기자) 

소방대원, ‘메스르 의심환자’ 이송 뒤 자가격리

 

보건소의 늑장과 안일한 대처로 시간을 지체한 사이 김모씨는 극심한 고통을 호소했다. 그리고 구급차량이 지원되지 않자 대중교통 등 개인적 수단을 통해 병원까지 가겠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소방대원은 차마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판단, 김씨를 119응급차량에 태워 병원으로 이송했다.

 

강서소방서 소속 한 소방대원은 <커버리지>와 만난 자리에서 ‘보건소에서 왜 구급차를 안 보낸 것이냐’는 물음에 “그것까지는 알 수 없다”고 전한 뒤 “다만, 환자분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든지 알아서 하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하시라고 하겠느냐”며 “그래서 (메르스 의심환자임에도) 119구급차를 이용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날 곧바로 출동대원 두 명을 공가(公暇) 처리하고, 자가격리 조치를 취했다”고 덧붙였다.

 

당시 현장에 출동한 소방대원도 “개인적으로 병원에 가겠다는데, 차마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며 “장갑과 마스크를 건네 착용토록 한 뒤 병원까지 이송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5일간 자가 격리된 뒤 지난 8일 정상 출근했다.

 

삼성병원, 환자정보 요구에 “우리가 왜”

 

삼성병원 측 대응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소방서 측은 대원들의 안전을 위해 삼성병원에 김씨에 대한 내역 등을 요구했지만,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소방대원 두 명이 방호복 등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메르스 의심환자와 접촉했다는 점에서 소방서 측은 김씨의 진료내역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당초 양성판정까지 받은 상태에서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삼성병원 측은 소방서 측의 이 같은 요구를 무시했다.

 

한 소방대원은 “처음 삼성병원에 문의했는데, ‘우리가 왜 알려줘야 하느냐, 개인정보라 말해줄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며 씁쓸한 표정을 내보였다.

 

실제 취재진이 삼성병원 측에 문의한 결과 “정보공개가 모든 분께 이뤄지진 않고 있다. 환자분 본인과 보건소에만 알려주고 있다”고 답했다. 병원은 또 ‘소방서에서 요청할 경우 어떻게 조치하느냐’는 물음에 “아직까지 그에 대한 공지를 받은 것은 없다”며 “소방서의 요청이 있더라도 개인정보를 알려줄 순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삼성병원에 입원한 김모씨는 다음날인 3일 메르스 양성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질병관리본부의 2차 검진을 통해 음성판정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병세가 위중했던 김씨는 현재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10일 보건 당국에 따르면 삼성서울병원의 메르스 감염자는 47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최초 감염자가 발생한 평택성모병원(36명 감염)보다 더 많은 수치다.(사진=삼성서울병원 홈페이지 사진 캡처)

‘메르스 사각지대’ 놓인 소방대원

 

메르스 확진자가 전국적으로 발생하면서 현재 소방당국도 비상이 걸린 상태다. 앞서 소개했듯 119구급대원들이 최일선에서 메르스 의심환자와 접촉하는 상황이 발생하다보니 ‘메르스 사각지대’에 놓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메르스 의심환자로 분류돼 자가격리 중인 구급대원도 속출하고 있다.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은 지난 1일 “구급대원이 감염되면 국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119구급대원들의 메르스 전염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한 바 있다.

 

박 장관은 그러나 “전국에 구급차 운영 횟수가 하루 4만5000건에 이르는데 발열 환자가 있다고 구급대원 모두를 검진하거나 격리할 수 없는 것 또한 현실”이라며 “현재는 ‘주의’ 발령 단계이지만 매일 메르스 환자의 확산 현황을 보고받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안전처는 일선 소방서에 ‘메르스 의심환자 이송대책’을 내려 보내 메르스 의심환자 신고·접수시 1차적으로 보건소 구급차로 이송하고, 급박한 경우 개인보호장비를 갖추도록 권고했다. 하지만 소방서에 하달된 개인보호장비는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여기에 각 지역 보건소에 배치된 구급차량과 환자 이송 시 동승하도록 되어있는 보건소 역학조사관이나 간호사 등 인력부족도 심각하다. 관내 119구급차량을 전진배치 하는 등 방법을 강구하고 있지만, 여전히 제반시설은 태부족이며, 여건 또한 나아지지 않고 있다.

 

커버리지 정찬대 기자(press@coverag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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