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저금리策] ①금리 내리면 기업투자 는다더니….
기업투자↓ 사내유보금↑…1년 새 38조원 ‘껑충’
  • 정찬대 기자
  • 15.07.23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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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부터 시작된 저금리 정책은 지난 3월 사상 최초로 연 1%(1.75%)대 금리시대를 연데 이어, 6월에는 역대 최저인 1.5%까지 인하됐다. 가계부채 인상 등 각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기업투자 유도’ 및 ‘경제활성화’ 명목으로 저금리 기조를 유지했다. 하지만 당초 기대와 달리 정부의 경제정책은 초라한 성적표를 거두고 있다.

 

여기에 저금리 정책에 따른 부작용도 곳곳에서 속출하고 있다. 장기불황에 따른 기업투자는 줄고, 일관되지 않은 부동산 정책으로 서민들의 아우성은 극에 달했다. 더욱이 앞으로 있을 미국발(發) 금리인상에 따른 충격파가 얼마나 클지 가늠조차 어려운 상태다. <편집자 주>

 

△지난달 11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연 1.75%의 현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낮춘 1.50%의 기준금리 인하를 결정한 가운데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금리인하 확정 후 의사봉을 치고 있다.(사진=한국은행 홈페이지)

 

이주열 총재의 웃음, 그러나….

 

한국은행 이주열 총재가 오랜만에 활짝 웃었다. 지난달 11일 연 1.75%의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낮춘 1.50%로 확정하고 나서다. 메르스 여파 등 실물경제가 위축된 상황에서 이 총재는 경기부양의 일환으로 기준금리를 또 다시 인하했다. 사상 초유의 1%대 기준금리시대를 연지 불과 3개월 만에 최저치를 갈아치운 것이다. 의사봉을 내리친 그의 표정은 오랜 만에 ‘내 할 일을 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정부는 즉각 환영의 뜻을 전했다. 특히, 금리인하를 공공연하게 압박했던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결정이 정부가 추진 중인 메르스 대책과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금리인하책으로 기업의 투자가 늘고, 이를 통한 경기부양은 물론 위축된 소비심리도 회복될 것이라고 예단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정부 주장대로 장밋빛 경제 전망만을 가져다주진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결국, 지난 9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4월 예측한 3.1%에서 2.8%로 하향 조정했다. 정부가 올해 성장률로 기대하고 있는 3.1%보다 0.3%포인트나 낮은 수치다. 경제 성장을 자신했던 이 총재의 구상은 일그러졌다.

 

30대 그룹 사내유보금 1년 새 38조원 증가

 

금리인하에 따른 기업의 투자는 늘어날까? 많은 이들은 정부의 이 같은 주장에 의문을 제기한다. 저금리 정책 이후 기업은 조달금리 등의 혜택을 받게 됐다. 이자부담이 줄면서 추가 투자에 대한 기대치도 높아졌다.

 

하지만 어두운 경제전망과 소비심리 위축은 기업이 투자를 미루고 현금을 선호하는 현상을 가져왔다. 막대한 현금보유액을 설비투자나 연구개발(R&D)에 쓰지 않고 유휴자산으로 놀리면서, 기업의 자산은 늘어난 반면, 투자는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금리인하책이 대기업의 ‘곳간’만 채운 셈이 됐다.

 

실제 기업경영평가 기관인 ‘CEO스코어’가 21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30대 그룹 268개 계열사들의 3월 말 기준 사내유보금(자본잉여금+이익잉여금)은 총 710조3002억 원으로 지난해 3월 말 672조624억 원보다 38조2378억 원(5.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룹별로는 재계 순위 5대 그룹(삼성 현대차 SK LG 롯데)의 사내유보금이 같은 기간 465조3311억 원에서 503조9378억 원으로 38조6067억 원(8.3%) 늘었으며, 이는 30대 그룹 전체 증가액(38조2378억 원)보다 많은 규모다.

 

더욱이 재계 1, 2위인 삼성과 현대차그룹의 증가액은 30대 그룹 전체 증가분의 80% 정도를 차지한 30조원에 육박한다. 삼성그룹이 232조6479억원으로 1년 새 17조9310억원(8.4%)이 늘었고, 현대차그룹이 12조4964억원(12.4%) 증가한 113조3599억원을 기록했다.

 

이밖에도 SK그룹은 70조3082억원으로 4조9184억원(7.5%)이 상승했고, LG그룹과 롯데그룹은 각각 43조5910억원, 44조307억원으로 1년 새 1조9660억원(4.7%), 1조2949억원(3.0%)씩 늘었다. 한화도 1조2638억원(11.5%)이 증가한 12조2850억원에 달했다. 여기에 한진그룹은 전년 대비 사내유보금 증가율이 가장 높은 34.0%를 차지했다.

 

정부는 내수활성화를 위해 지난 1월 기업소득환류세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정부의 과세 정책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사내보유금은 이처럼 크게 늘었다. 이는 경기악화에 따른 경영환경 불투명으로 기업이 투자를 꺼린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물론, 사내유보금에는 현금 외에 공장, 설비 등의 유형자산과 재고자산이 포함돼 있어 기업이 마냥 돈을 쌓아뒀다고만은 할 수 없다. 다만, 이 같은 현상이 사내유보금을 쌓아두기만 할뿐 투자에 적극적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30대 그룹 사내유보금 현황(사진=CEO스코어)

 

투자 주춤한데, 회사채 발행은 왜?

 

시중금리가 낮아지면서 기업의 회사채 발행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회사채 발행이 반드시 효율적인 투자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경기불황으로 투자계획을 철회하는 대신 미래를 대비한 현금 확보 수단으로 이를 활용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커버리지>와 통화에서 “금리가 낮아지면 기업이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회사채를 발행하는 경우가 있다”며 “1%대 초저금리시대가 열리면서 기업들의 직접금융 규모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실제 2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업 직접금융 조달 실적은 65조7274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회사채 발행규모는 63조4862억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15% 늘어났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회사채 발행이 대기업 중심으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제철(8600억원)·중부발전(8000억원) 등 대기업 발행액이 23조1040억원(총222건·99.1% 차지)인데 비해, 중소기업 발행액은 2150억원(총4건·0.9% 차지)에 그쳤다. 신용등급별로는 AAA등급 3조6800억원(15.8%) AA등급 14조1200억원(60.7%) A등급 4조8490억원(20.8%) BBB등급 이하 6350억원(2.7%) 순이다.

 

회사채와 달리 상반기 주식발행 실적은 2조2412억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23.9% 줄었다. 이는 경제 불황으로 주식시장이 부진한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재계 관계자는 “채권 발행의 여러 수단이 있는데, 경기가 바닥은 친 상태에서 주식발행 실적은 상대적으로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간 저금리 정책의 실질적 혜택이 대기업에 쏠려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그렇다보니 효과가 제한적이란 말도 나왔다. 결과적으로 낙수효과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가계 빚은 쌓인데 반해, 기업의 사내유보금이나 현금보유액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서민의 주머니를 털어 기업의 배를 채우고 있다는 원성도 자자하다.

 

초저금리에 따른 가계부담은 늘어났다. 더욱이 기업이 현금보유액을 늘리기 위한 수단으로 저금리 정책을 이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결국 또 다른 형태의 기형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경환 경제팀과 이주열 총재는 여전히 금리인하에 따른 ‘(대기업의) 장밋빛 미래’만을 외치고 있다.

 

커버리지 정찬대 기자(press@coverage.kr)

 

<[저금리策] ②편은 ‘빚내서 집 사라더니…서민 등친 정부’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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