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저금리策] ②빚내서 집 사라더니…서민 등친 정부
빚 권하는 대한민국, 가계부채는 ‘나몰라’
  • 정찬대 기자
  • 15.07.26 17:29
  • facebook twitter 카카오스토리 구글플러스
  • 글자크기
  • 글자크게
  • 글자작게
  • |
  • print
  • |
  • list
  • |
  • copy
지난해 8월부터 시작된 저금리 정책은 지난 3월 사상 최초로 연 1%(1.75%)대 금리시대를 연데 이어, 6월에는 역대 최저치인 1.5%까지 인하됐다. 가계부채 인상 등 각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기업투자 유도’ 및 ‘경제활성화’ 명목으로 저금리 기조를 유지했다. 하지만 당초 기대와 달리 정부의 경제정책은 초라한 성적표를 거두고 있다.

 

여기에 저금리 정책에 따른 부작용도 곳곳에서 속출하고 있다. 장기불황에 따른 기업투자는 줄고, 일관되지 않은 부동산 정책으로 서민들의 아우성은 극에 달했다. 더욱이 앞으로 있을 미국발(發) 금리인상에 따른 충격파가 얼마나 클지 가늠조차 어려운 상태다. <편집자 주>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2일 광화문 서울청사에서 열린 ‘제14차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사진=기획재정부)

 

‘돌변한’ 정부, ‘능력 만큼만 빌려라’

 

지난 22일 정부가 가파르게 증가하는 가계부채에 선제 대응하겠다며 이른바 ‘가계부채 종합관리방안’을 내놓았다.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문턱을 높게 함으로써 가계부채 급증에 따른 부작용과 위험을 줄이겠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얼마 전까지 빚내서 집사라던 정부가 갑자기 태도를 달리 한 것이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정부 정책에 따르면 매달 원금을 갚는 분할상환 방식이 적용되고, 이자만 내는 거치 기간을 둘 경우 1년을 넘지 못하도록 규제했다. 또 소득금액증명원과 원천징수영수증 등 실제 소득을 정확하게 증명하는 서류로 대출 자격을 심사함으로써 대출을 까다롭게 했다.

 

변동금리로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사람들의 대출한도도 줄어들 예정이다.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와 별도로 스트레스(Stress) DTI가 추가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스 금리’는 대출 전 3~5년간 금리를 토대로 향후 금리인상 리스크를 반영한 것으로, 현 금리에 스트레스 금리까지 더해져 원리금 예상 상환액을 계산해 최종 금리를 적용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변동금리형 주택대출에 2%p 안팎의 스트레스 금리를 적용할 계획이다.

 

이를 테면 5년 만기 일시상환으로 1억원을 빌린 사람이 3.5%의 금리를 적용받을 경우 연간 이자 상환액은 350만원이지만, 2%p의 ‘스트레스 금리’가 더해지면 이자 상환액은 550만원으로 늘어나는 식이다.

 

현재 대부분의 주택담보대출은 몇 년간 이자만 내다 추후 원금을 갚는 거치식 대출이 일반적이다. 전세난에 허덕이다 높은 월세로 사느니, 꼬박꼬박 은행이자를 내더라도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내 집을 마련한 뒤 원금을 갚겠다는 것이다. 정부도 부동산 경기회복을 이유로 각종 세제혜택과 규제완화를 통해 이를 적절히 유도했다. 금리인하까지 추진해 이율도 함께 낮췄다.

 

그런데 정부가 정책 시행 일 년 만에 이를 봉쇄했다. 이자와 원금을 함께 갚도록 함으로써 빚을 늘리는 구조에서 빚을 갚아나가는 구조로 전환한 것이다. 위험 수위에 도달한 가계부채의 증가속도를 은행으로 하여금 조절하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이자 내기도 빠듯한 상황에서 원금까지 낼 여력이 없다는 것이 맹점이다. 대부분의 주택담보대출자(특히 서민)들의 상황을 전혀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욱이 정부 대책은 대출 규모를 전체적으로 줄이는 ‘총량규제’ 방향과 달리 ‘위험관리’에만 초점을 맞춘 제한적 대응에 그쳤다. 이미 1천100조원대로 늘어난 가계부채에 대한 대책이 전혀 없는 것이다.

 

가계부채 급속히 증가…정부는 ‘나몰라’

 

한국은행에 따르면 3월 말 기준 금융권 전체의 가계부채는 1천99조3천억원으로 집계됐다. 4월 말 예금은행과 비은행 예금취급기관(저축은행, 신용협동조합, 새마을금고, 상호금융)의 전체 가계대출 잔액이 765조2천억원으로, 한 달 전보다 10조1천억원 증가한 점을 감안할 때 가계 대출은 이미 1천10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지난해 6.5%에 이어 올 1분기 7.3%의 증가세를 보이면서 ‘양적 증가 속도’가 가파르다. 가계부채는 매달 7조~8조원씩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주택담보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6월 말 현재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594조5천억원으로 5월 말보다 8조1천억원 증가했다. 8조5천억원이 증가한 지난 4월에 이어 월간 기준 역대 두 번째로 큰 규모다. 주택담보대출은 이 기간 6조8천억원 증가하면서 가계대출 증가분의 80% 이상을 차지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가계부채는 LTV·DTI 규제가 완화되기 전인 지난해 2분기 말의 1천38조3천억원에서 올해 1분기 말에는 1천99조3천억원으로 61조원 늘었다. 또 지난해 8월부터 올 6월 동안의 가계대출 증가액도 79조8천억 원으로 전년동기(35조7천억 원)의 2배 이상 수준으로 급증한 상태다. 결과적으로 부동산 경기를 띄우느라 가계 빚이 잔뜩 늘어난 셈이다.

 

가계대출만 보게 되면 올 1분기 가계대출 증가액은 직전 분기 대비 12조8천억원으로 이전 최고치였던 2011년 12조6천억원을 넘어서며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앞서 2010년 이명박 정부는 8·29부동산대책을 통해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한 바 있다. DTI를 2011년 3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폐지했고,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감면 혜택은 물론 취·등록세 감면도 연장시켰다. 이듬해 3월 내놓은 부동산정책에서도 1억원까지 소액대출에 대한 DTI 심사면제를 유지하고, 취득세는 2011년 말까지 50%를 감면했다. 그리고 정부의 이 같은 정책은 가계부채의 급증으로 돌아왔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사진=기획재정부)

‘최경환 경제팀’, 일 년간 뭐 했나

 

지난해 7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취임했다. 세월호 여파로 경기가 급속히 악화된데 따른 ‘등판’이다. 그는 취임 일성으로 “거시정책을 과감하고 확장적으로 운용하며, 부동산 시장의 낡은 규제들을 조속히 혁파하겠다”고 밝혔다. 과감한 규제완화를 예고한 것이다. 규제를 ‘암 덩어리’로 규정한 박근혜 대통령도 최 부총리에게 힘을 실어줬다.

 

취임 한 달 뒤 부동산 활성화 대책이 나왔다. 각종 세제 혜택은 물론 주택담보대출비율(LTV: Loan to Value)과 총부채상환비율(DTI: Debt to Income)의 규제를 완화함으로써 빚을 내 집사도록 유도했다. 여기에 저금리 정책 기조가 더해지면서 이를 더욱 부추겼다.

 

LTV는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때 집의 자산 가치에 따른 대출 규모를 의미한다. 또 DTI는 매년 갚아야 하는 원리금 총액이 연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다. 즉, 연소득에 맞춰 은행 대출 규모를 제한하는 것이다.

 

이를 테면 LTV가 50%라면 시가 3억원짜리 아파트의 경우 최대 1억5천만원까지 대출이 허용되며, 연 소득이 5천만원이고 DTI가 40%일 경우 총부채의 연간 원리금 상환액은 2천만원을 초과하지 않도록 하는 식이다.

 

그런데 최 부총리는 수도권과 모든 금융권에 50%였던 기존 DTI 한도를 60%까지 완화했다. 또 전국의 모든 지역과 금융권에 서울 50%, 기타지역 60%였던 기존 LTV 한도를 70%까지 완화시켰다. 자연스레 부동산 경기가 살아났지만, 이 모든 것은 ‘빚’이었다.

 

최 부총리가 내세운 ‘초이노믹스’(choinomics·최 부총리 영문 성인 ‘Choi’와 Economics의 ‘nomics’가 결합된 합성어)는 크게 △재정지출 확대 △기준금리 인하 △대출규제 완화 △기업소득 환류 등으로 대변된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경제는 더욱더 비틀거리고 있다. 4%를 낙관했던 경제성장률은 3% 달성도 어려운 상태다. 실제 수출은 6개월째 감소했고, 3분기 연속 2% 성장에 머물러 있다. 정부가 내건 3.1% 성장은 고사하고 한국은행 전망치인 2.8% 달성도 어렵다는 얘기가 나온다.

 

초이노믹스를 통해 빈사상태였던 부동산시장은 살렸지만, 거꾸로 가계부채는 1천100조원을 넘어섰다. 여기에 800조원 규모로 쌓인 부동 자금은 자산시장에 거품을 불어 넣었다. 향후 부동산시장이 침체되거나 시장금리가 오를 시 가계와 기업의 연쇄부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마디로 한국 경제 전반이 ‘시한폭탄’인 셈이다.

 

허나 현재 국회의원 신분이기도 한 최 부총리는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사퇴가 유력하게 점쳐진다. 만약 총선 출마 시 공직선거법상 90일 전인 내년 1월14일 이전에는 사퇴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남은 임기는 5개월 남짓에 불과하다.

 

예금이율 낮춘 은행, 대출이자는 일제히 ‘인상’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대책’은 원금 상환을 빠르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3~5년 동안 이자만 갚는 장기 거치식 주택담보대출은 받기 어려워졌고, 원금 외 이자만 납입할 경우 은행별 가산금리가 붙어 더 많은 이자를 내야 한다.

 

가계부채를 줄이겠다고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원금 상환이 어려운 서민들에게 이자만 더 올려 받는 구조인 셈이다. 더욱이 원금을 빨리 갚도록 한 취지와는 다르게 거치기간이 끝나기 전 대출금을 갚을 경우 중도상환수수료를 물도록 한 현행은 유지된다. 중도상환수수료는 대출 만기일까지 남은 날짜 수를 감안해 계산하는 방식인데, 통상 1~2%의 수수료가 붙는다.

 

현재 일부 은행에서 중도상환수수료에 대한 부담을 줄이기 위해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여전히 상당수 은행과 손해보험사에서는 높은 수수료를 부담시키고 있다. 이 때문에 은행이 서민을 상대로 ‘이자 따먹기’를 하고 있다는 비아냥도 나온다.

 

기준금리가 사상 최저치인 1.5%로 인하된 지난달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의 금리는 일제히 올라갔다. 반면, 금리인하에 따른 예·적금 금리는 꾸준히 낮아지고 있어 이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실제 지난 5월과 6월 각 은행별 분할상환 주택담보대출의 금리변화를 보면 우리은행(2.99%→3.20%), 한국스탠다드차탸드은행(2.90%→3.10%), 외환은행(2.95%→3.10%), 농협(2.94%→3.05%), 하나은행(2.96%→3.05%), 기업은행(3.06%→3.14%), 신한은행(3.00%→3.02%) 순으로 인상됐다. 한국씨티은행(3.02→2.96)과 국민은행(3.10%→2.98%) 만이 대출금리를 낮췄다.

 

 

메르스로 ‘무능’ 보인 정부 가계부채로 ‘무책임’ 증명

 

올 하반기 미국의 금리인상이 예고된 상황에서 1천100조원 넘는 가계부채의 금리가 0.25%만 올라도 이자 부담은 연간 2조원 이상 증가한다. 더욱이 제2금융권이나 고금리 대출을 주로 이용하는 저소득층이 체감하는 가계 부담은 이보다 훨씬 더 클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정부의 ‘가계부채 종합관리방안’을 두고 부동산 시장의 ‘끝물’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한 미국발(發) 금리인상을 앞두고 선제조치의 일환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결과적으로 시기가 임박했다는 얘기다. 일각에선 ‘풀 만큼 풀었으니 이제 규제하느냐’며 ‘등쳐먹고 먹튀한다’는 비아냥까지 들린다. 그만큼 현 정부에 대한 불신이 바닥 깊게 깔려 있는 것이다.

 

상환 능력이 부족한 서민층 가계의 부담은 이중, 삼중고를 치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규제완화와 저금리 정책 등으로 가계부채를 부추긴 정부는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한 채 뒷짐만 지고 있다.

 

각계의 우려에도 정부는 그간 ‘가계부채를 잡을 수 있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책으로 고작 ‘대출제한’을 꺼내들었다. 이마저도 1천100조원 규모의 기존 가계부채에 대한 방안은 외면했다. 결국, 메르스로 ‘무능함’을 증명한 박근혜 정부가 가계부채를 통해 ‘무책임’까지 드러낸 셈이 됐다.


커버리지 정찬대 기자(press@coverage.kr)


 

<[저금리策] ③편은 ‘미국發 금리인상에 따른 후폭풍-서브프라임 사태와 한국의 가계부채’가 이어집니다>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