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위기의 삼성] ②이재용의 선택과 집중, 엇갈린 평가
“업의 개념 실종…이재용 직속화와 삼성의 전자화만 심화”
  • 김기성·최병호 기자
  • 15.12.09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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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에 올랐다. 부친인 이건희 회장이 건강 악화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지 1년 만에 이 회장의 공식 직함 3개 중 회장직을 빼고 모두 물려받았다. 7월에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합병, 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삼성물산 최대 주주가 됐다. 공식 승계만 없을 뿐 사실상 이재용 시대다.

 

순탄한 경영권 승계 행보와는 달리 이 부회장을 보는 시장의 시선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경영 능력에 대한 의문이 끊이지 않는 데다, 삼성의 미래 먹거리에 대한 대안도 아직은 없다. 이재용의 색깔로 비쳐지는 ‘선택과 집중’에 대해서는 ‘위험한 질주’라는 경고까지 나온다. 매출 수백조원대의 공룡을 이끌어 갈 그에게 제기된 자질론은 삼성 위기론을 불러오는 원인 중 하나다.

 

이에 대해 삼성은 이 부회장이 20여년간 착실히 경영수업을 받았고, 큰 틀에서 그룹 현안을 결정, 조율하기 때문에 경영능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 부회장은 1991년 삼성전자에 입사, 2001년 3월 삼성전자 경영기획팀 상무보로 승진한 데 이어 2013년에는 삼성전자 부회장이 됐다. 입사 22년 만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YTN뉴스 캡처)

 

전무로 승진한 2007년부터는 삼성경제연구소에서 그의 주재로 경영전략을 짰으며, 굵직한 인수합병 등 글로벌 협력체계 구축과 함께 신시장 개척에도 힘을 보탰다. 특히 2010년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 부주석(현 주석)과 두 차례 면담해 중국 시장에서의 입지를 강화했고, 지난해에는 팀 쿡 애플 CEO와 만나 세기의 소송전을 끝낼 전환점도 마련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e삼성의 사례에서처럼 이 부회장이 독자적으로 나서 성공한 사업이 뚜렷히 없는 데다, 그동안의 행보 또한 후계자 프리미엄이 작용했음을 고려하면 경영능력은 여전히 검증을 필요로 한다. e삼성은 이 부회장이 2000년 설립한 인터넷 벤처로, 1년 만에 100억원이 넘는 적자를 내고 사업을 접었다. 또 삼성전자 부회장 자격으로 세계 굴지의 완성차 CEO들을 만나고 다녔지만, 자동차배터리 등 기대됐던 전장 부문에서의 이렇다 할 성과도 없는 실정이다.

 

경영능력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불식시키고, 부친의 부재와 맞물려 표면화된 그룹의 실적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이 부회장은 ‘선택과 집중’이라는 사업구조 개편 카드를 꺼내들었다. 선대 회장이 일궜던 방산과 화학 등을 과감히 정리하면서, 이른바 ‘돈 되는 사업에만 집중한다’는 그의 실용주의는 단숨에 시장의 주목을 끌었다. 이는 경영권 승계라는 과제와도 맞물리면서 일석이조의 포석이 됐다.

 

삼성은 지난해 제일모직 패션부문을 에버랜드에 넘기는 동시에 소재사업은 삼성SDI와 합쳤다.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도 추진했지만 국민연금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지난해 11월에는 삼성테크윈·삼성탈레스·삼성종합화학·삼성토탈을 한화에 넘기는 초강수를 뒀다. 올해 들어서도 고강도 사업구조 재편은 이어졌다. 삼성은 지난 10월 삼성정밀화학과 삼성SDI 케미칼 부문을 롯데에 매각키로 했다. 매각 규모만 3조원대다.

 

삼성 출신으로 ‘삼성의 몰락’ 저자이기도 한 심정택 비컨갤러리 대표는 이 같은 일련의 행보에 대해 “삼성의 모든 의사결정은 이재용 지배체제 구축을 위한 것”이라며 “이재용의 실적을 위한 투자”라고 평가 절하했다. 익명을 요구한 삼성 관계자는 “선택과 집중으로 대변되는 실용주의가 JY(이재용)의 컬러로 비쳐지지만 이는 삼성 본연의 색깔”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 내에서도 이견이 있었다고 귀띔했다. 

 

엎친 데 덮친 겪으로 이 부회장은 제한된 사업참여 경험과 인적 풀의 한계로 문제를 겪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최근 2~3년 사이 임원 인사에서 삼성전자 출신들이 대거 중용, 사장단과 임원진에 전진 배치된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설명이다. 삼성전자라는 자신이 잘 알고, 믿을 만한 사업군만 안고 가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빗대 삼성이 자전거(삼성전자)에서 내리지 못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반도체와 휴대폰을 이을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기는커녕 단기 성과에만 집착한다는 평가, 2010년 5대 신수종 사업으로 발표한 바이오·의료기기·2차전지·태양광·발광다이오드(LED) 가운데 어느 것 하나 뚜렷한 성과가 없다는 점, 이런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지난 5월15조6000억원을 투입해 경기도 평택에 최대 규모의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고 나선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올 초 ‘포스트 삼성’을 쓴 윤덕균 한양대 산업공학과 명예교수는 “이병철 회장이 ‘업의 개념’을 강조하며 해당사업 전문가를 중용한 반면, 지금은 계열사 성격에 관계없이 삼성전자와 미래전략실 출신만 득세하고 있다”며 “이재용으로의 직속화와 삼성그룹의 전자화가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삼성 내부와 언론에서 이 부회장에 대한 예찬론이 지나치다. 비판과 견제는 사라졌다”며 “이재용의 경영 스타일은 환상에 쌓여있고, 선택과 집중이라는 이름으로 위험한 질주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문: 뉴스토마토

 

김기성·최병호 기자

kisung0123@etom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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