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위기의 삼성] ④‘미래전략’ 없는 미래전략실
경영권 승계에만 집중하며 성장방안 마련은 소홀
  • 김기성·최병호 기자
  • 15.12.09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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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의 와병이 길어지고 있다. 경영 복귀는 요원하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삼성을 상징하는 절대 카리스마의 부재 속에 공교롭게도 삼성전자를 비롯한 각 계열사의 실적마저 하향 추세다. 삼성이 경영권 승계라는 절대과제와 함께 체제 재정비를 서두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건에서 보듯, 일부 예기치 못한 돌발변수가 있었으나 지금까지는 계획된 수순을 밟고 있다는 평가다. 문제는 실적 부진이 깊어질수록 이 회장의 공백이 커 보이고, 이는 후계자인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시장의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데 있다. 동시에 부진·서현 자매의 역할 조정도 고민해야 한다. 자연스레 그룹의 컨트롤타워로 불리는 미래전략실의 역할이 주목된다.
 
미래전략실은 이 회장의 직속 조직으로, 계열사 경영진과 함께 그룹의 주요 현안들을 다룬다. 사장단 인사도 미래전략실이 주도할 정도로 그룹 내 위상이 절대적이다. 회장 비서실에서 출발, 구조조정본부, 전략기획실 등으로 이름을 바꿔달았지만 총수의 직속 참모조직이라는 본질은 변함이 없다.
 
송태용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에 따르면, 미래전략실은 총수의 의사결정을 돕고 계열사 간 시너지 창출을 지원한다. 현재 미래전략실은 8팀(전략 1·2팀, 경영진단팀, 기획팀, 인사지원팀, 커뮤니케이션팀, 준법경영팀, 금융지원팀) 체제로, 150여명 정도로 조직돼 있다. 구성원들은 각 계열사로부터 파견형태로 근무 중이며, 대부분 삼성전자에 원적을 두고 있다.
 
비서실의 특성상 미래전략실은 실적 악화를 메울 장기적 성장방안 마련 대신 경영권 승계에 치중하는 모습이다. 모든 초점은 총수 일가와 지배구조 강화에 맞춰져 있다. 여론의 부담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대관과 홍보에 힘을 실을 수밖에 없다. 특히 그룹 과도기를 맞아 미래전략실의 역할이 커지면서 특유의 수직적 위계구조도 한층 강화됐다.
 
‘포스트 삼성’의 저자인 윤덕균 한양대 산업공학과 명예교수는 “미래전략실 주요 인사 연봉이 100억원에 육박하면서 이제 절박하게 먹거리를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며 “교수들 강연이나 들으면서 공자 왈 맹자 왈 하는 게 미래 먹거리 찾기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미 미래전략실은 대 언론 조직, 경영권 승계만 고민하는 조직으로 변질됐다”고 말했다.
 
2012년 6월 김순택 전 실장을 대신해 부임한 최지성 실장(부회장)이 임원 출근 시간을 오전 6시로 앞당긴 뒤, 3년 넘게 유지하면서 조직의 피로도도 크게 높아진 상황이다. 이는 조직의 창의성을 저해, 지시와 이행이라는 전근대적 조직문화만 강화했다는 지적이다. 또 최지성 친정체제가 강화되는 과정에서 몇몇 인사를 놓고 잡음도 일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영 현안에 집중할 동력이 좀처럼 모아지지 않는 요인으로 꼽힌다.
 
한 전직 삼성 고위 관계자는 “삼성의 간판인 삼성전자는 구글·애플과 싸우는 글로벌 IT회사인데 조직문화는 지극히 전근대적”이라며 “미래전략실이 그 중심에 있다. 이런 조직문화를 깨지 않고는 다양성과 창의성이 발휘될 수 없다. 단기성과 집착, 혁신 부재 등 폐해도 모두 폐쇄적인 조직문화에 기인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위기의식을 강조할수록 움츠러들게 되고, 책임 회피에만 급급하게 된다”며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것도 좋지만 방법은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삼성전자는 ‘혁신 부재’라는 꼬리표를 좀처럼 떼어내지 못하고 있다.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에서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의 이동이 좀처럼 쉽지 않다는 얘기다. 이는 애플의 ‘카피캣’(모방자) 비난 속에 삼성을 시장을 선도하는 혁신기업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요인이 됐다.
 
사실, 패스트 팔로워에 대한 환상은 삼성이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간의 성공경험에 대한 기대심리가 여전히 삼성을 옥죄고 있는 것이다. 한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솔직히 실리콘밸리만 바라보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구체적 언급은 피했지만 실리콘밸리에서 스마트폰을 대체할, 또는 그에 필적할 새롭고 혁신적인 디바이스 출현을 고대한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외국계 한 IT 전문가는 “삼성이 스마트폰 시장을 집어삼킬 수 있었던 데는 역설적이게도 애플의 공이 컸다”며 “모방을 통한 기술 이해와 응용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것이 생산력과 마케팅, 유통망과 결합하면서 단번에 시장을 빨아들이는 힘이 된다”고 분석했다. 이조차 “애플을 대신할 구글의 생태계(OS)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삼성 출신으로 ‘삼성의 몰락’을 쓴 심정택 비컨갤러리 대표는 “삼성의 미래는 경쟁사인 애플과 구글이 쥐고 있다”고 단언했다. 삼성의 자문단 중 한 명인 모 교수는 삼성전자가 대안으로 내놓은 IoT(사물인터넷) 관련해 “삼성과는 생리가 맞지 않다”며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도 안 하는 임원들이 수두룩한데 IoT 하겠다고 덤벼든다. 애플이나 구글에 게임이 안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삼성 사장단과의 일화 하나를 소개했다. 삼성 사장단과의 회의에서 “스마트카를 눈여겨 봐야 한다. 스마트카가 도입되면 자동차 사고가 획기적으로 줄어들어 소비자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했더니, 사장단 중 한 명이 “그러면 삼성화재는 앞으로 뭘 먹고 사냐”고 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IoT에 대한 삼성의 인식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라고 말했다.
 
한편 삼성은 중장기적으로 미래전략실을 축소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현 조직 체계가 보좌 중심의 경영을 해왔던 이건희 회장에 맞춰진 터라, 대외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이재용 체제 공식출범 뒤에는 방향이 일정 부분 수정될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삼성 관계자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미래전략실 촉소는 예견돼 왔다”며 “(현 체제는)이재용 부회장의 방침인 현장 중심, 조직 슬림화를 통한 효율화에도 맞지 않다”고 설명했다.
 
사진/뉴스토마토
 

 

원문: 뉴스토마토

 

김기성·최병호 기자

kisung0123@etom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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