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위기의 LG] ⑤구본준호 5년, 성공과 실패의 경계
“시장이 아닌 삼성전자에 대응, 패착의 원인”
  • 김기성·김영택 기자
  • 15.12.15 11:48
  • facebook twitter 카카오스토리 구글플러스
  • 글자크기
  • 글자크게
  • 글자작게
  • |
  • print
  • |
  • list
  • |
  • copy
구본준호가 뚜렷한 족적 없이 항구로 되돌아왔다. 2010년 9월17일 위기에 빠진 LG전자의 구원투수로 등판한 지 5년 만으로, LG전자의 위기는 변함없는 진행형이다. 특히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친동생이자, 구광모 상무로의 경영권 승계를 이을 징검다리로까지 주목받던 그였기에 5년의 성적표는 기대에 못 미쳤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LG는 지난달 26일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이 그룹 지주사인 ㈜LG 신성장사업추진단장으로 이동하는 것과 관련해 “그룹 차원의 미래성장사업 및 신성장동력 발굴을 집중 지원하고, 관련 사업의 포트폴리오를 고도화하는데 주력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지만, 재계에서는 실적 부진에 따른 책임을 묻는 차원으로 해석했다. 분명한 성과도 있었지만, 전사적 차원의 책임을 짊어질 수밖에 없는 위치도 감안된 것으로 보인다. 

 

△구본준 LG전자 부회장

야심찬 출발…지나친 삼성 혐오증

 
출발은 야심찼다. 취임과 동시에 ‘독한 LG’를 강조하면서 조직문화 개선에 공을 들였다. 구본준식 경영혁신의 시작이었다. 특히 모든 회의석상에서 ‘1등’이라는 말을 빼놓지 않을 정도로, 조직 내 만연한 패배주의를 털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는 곧 구본무 회장의 ‘시장선도’ 경영철학과 함께 성과 중심의 신상필벌 원칙을 낳았다. 
 
힘 있는 오너 일가로서 연구개발(R&D)에도 큰 힘을 쏟았다. 2010년 2조7000억원 수준이던 R&D 투자비용은 2014년 3조6600억원까지 늘었다. 매출액 대비 R&D 비중 역시 이 시기 4.6%에서 6.2%로 높아졌다.
 
삼성조차 난제였던 OLED TV를 강한 추진력으로 세계 처음으로 선보이며 조직의 사기를 끌어올렸고, 각 계열사에 흩어져 있던 자동차 부품 관련 조직을 통합해 VC사업본부를 출범시키는 등 미래 먹거리 발굴에도 매진했다. 이 과정에서 LG디스플레이, LG CNS 등 계열사들과의 협력을 원만하게 이끈 점은 그였기에 가능했다는 평가다. VC사업본부는 부진에 빠진 LG전자의 대안으로 꼽힌다. 또 세계 최고 효율(19.5%)의 태양광 패널 모듈을 상용화하고, 국내 최대 ESS(에너지저장장치) 통합시험 설비도 구축했다.
 
부작용도 뒤따랐다. 특히 삼성전자에 대한 혐오증에 가까운 경계의식은 LG전자를 시장이 아닌, 삼성전자에 대응하는 기업으로 전락시켰다는 평가다. 반면 삼성을 넘지 않고는 만년 2등의 꼬리표를 떼지 못하기에 최고경영자로서는 당연한 라이벌 의식이었다는 반론도 있다. 사돈가였던 삼성이 LG의 주력인 전자산업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갈등도 은원의 한 축이 됐다.
 
LG전자에 몸 담았던 한 고위 관계자는 “삼성만 이기면 된다는 BJ(구본준 부회장)의 열등감이 시장 흐름을 제대로 못 읽는 패착을 낳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직 고위 관계자는 “그러다보니 대응도 자연스레 삼성 위주로 했다”면서 “이미 사이즈(규모)는 달라졌는데, 이런 현실과는 무관하게 조직이 흘렀다”고 말했다. 실제 LG전자는 구 부회장 재임기간 내내 삼성전자와 크고 작은 소송전으로 동력을 낭비했다.
 
이는 결국 부진한 실적으로 이어졌다. 그가 LG전자를 진두지휘한 1년 뒤 영업이익이 1조원 이상 가파르게 오르면서 ‘역시 구본준’이라는 말이 나왔지만, 이마저도 잠시였다. 다시 실적이 정체되더니 이내 하향세를 타기 시작했다. 올 들어서는 시장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실적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구본준 효과의 마침표를 찍어야만 했다. 특히 ‘G’로 프리미엄 시장에 안착한 듯 보였던 스마트폰 사업이 다시 적자로 돌아서며 한계를 절감했다는 평가다.
 
경직된 조직문화, 눈치보기와 단기성과 집착으로 이어져
 
일각에서는 LG전자의 경직된 조직문화에 대한 불만도 터져 나왔다. 2011년 4월에는 연구원 출신의 한 퇴사자가 구 부회장에게 보내는 이메일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LG전자 내에서는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지지 않는다"며 말 뿐인 혁신을 문제 삼았다. 특히 “삼성이 어떻게 한다더라 하면, 이 역시 비판적인 토론 없이 의사결정이 나버린다”는 지적은 내부를 들여다보는 결정적인 증언이 됐다.
 
LG의 가풍이기도 한 ‘유교문화’가 지극히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조직문화를 낳았다는 지적도 있다. 물론 이는 국내 재벌그룹 가운데 사실상 유일하게 오너 리스크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긍정적 효과도 낳았지만, 급변하는 글로벌 시장이 요구하는 다양성과 창의성에는 일정 부분 저해가 됐다는 평가다. 외국계 기업 출신의 한 LG전자 관계자는 "일종의 고지식함이 있다“면서 ”이는 지시와 이행의 다른 말"이라고 말했다. 돌출성을 동반하는 혁신적 사고는 실종되고, 눈치보기와 단기성과 집착, 패배주의로 이어지는 근원이기도 하다.
 
학력 위주의 스펙 인사도 문제점으로 거론됐다. 퇴직한 한 LG전자 임원은 "LG는 여전히 스펙인사가 강하다. 임원의 30% 정도가 서울대 출신“이라며 ”한때 서울대 출신이 아니면 사장이 되기 힘들다는 말까지 공공연히 나돌았다"고 말했다. 조성진 LG전자 H&A사업본부장처럼 극히 예외적인 경우(공고 출신)를 제외하고는 여전히 고학력의 스펙이 요구된다는 주장이다.
 
정선섭 재벌닷컴 대표는 “LG전자의 조직문화는 온정주의로 대표된다. 급변하는 시장환경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하는 기업, 특히 LG전자처럼 실적이 악화된 위기상황이라면 더더욱 맞지 않다"면서 “시장 변화에 즉각적으로 대응하지 못할 뿐 아니라, 조직원들 역시 느슨해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원문: 뉴스토마토

 

김기성·김영택 기자 

kisung0123@etomato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구글플러스